한석규가 올 한 해 세 편째 영화를 내놓았다. 물론 '음란서생'과 '구타유발자들'은 작년에 찍어 올해 개봉했으니, 올해 작업한 것은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감독 변승욱, 제작 오브젝트필름) 한 편뿐이지만 관객과는 세 번째 만남이다.
모두 다른 색깔이다. 사극 장르에 미스터리와 멜로를 결합했던 '음란서생', 실험적 색채가 농후했던 '구타유발자들'에 이어 멜로 영화 '사랑할 때…'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한석규는 "극과 극의 무대가 주어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면서 "한 이미지만 하면 지겹지 않겠느냐"고 지나가듯 말했다.
영화 '사랑할 때…'은 심은하와 공연해 영화계를 잔잔히 흔들어놓았던 '8월의 크리스마스'와 닮아 있다. 심은하와 서로 말과 행동이 아닌 가슴으로 사랑을 주고받는 한편 아버지 신구와의 이별이 가슴을 후볐던 영화다. 아버지에게 리모컨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은 꽤 세월이 흘렀음에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비슷해요. 그때나 지금이나. 멜로 영화이긴 하지만, 멜로보다는 가족 이야기가 많죠. '접속'에서는 전도연 씨와 영화 속에서 딱 한번 만난 채 멜로 영화를 찍었고,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도 심은하 씨 손 한번 잡는 게 고작이었죠. 그래도 이번에 김지수 씨와는 키스도 했어요. 하하."
그러면서 환하게 웃는다. 8년 만의 멜로 영화 출연. 특별한 감회가 있지 않을까.
"멜로 장르라는 점 때문이라기보다는, 시나리오를 보며 제가 공감했어요. 저 역시 한 관객으로서 감동을 먹은 거죠. 결혼할 때 순탄하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지금 이 사랑을 이해 못하는 관객이라도 10년 뒤, 20년 뒤쯤에는 영화를 보며 공감할 수 있을 테고요."
'사랑할 때…'은 멜로 영화면서 가족 영화이기도 하다. 고교 시절 갑자기 정신질환을 앓게 돼 평생 책임져야 할 형이 있는 인구와 아버지가 남긴 빚 5억 원 때문에 이를 악물고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혜란이 힘겹게 사랑을 일궈간다. 영화는 조용히 사랑마저도 버거운 인구와 혜란의 만남을 좇는다.
도대체 가족이 뭘까. 더욱이 요즘 세상에 드물게 아이를 넷이나 둔 배우 한석규에게 가족은 뭘까.
"소중하고 좋은 것이지만 어떨 땐 지긋지긋할 때도 있죠. 제가 4형제 중 막내이고, 아내가 5남매 중 막내입니다. 두 사람의 가족만 해도 굉장히 많아요. 우리 가족만 해도 별의별 경우 다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보세요. 인구와 혜란에게도 그렇게 지긋지긋할 수 있는 가족인데, 두 사람 역시 가족을 만들려고 하잖아요."
그는 가족이 주제인 영화를 좋아하며(이두용 감독의 '장남'을 명작으로 꼽았다), 꾸준히 그런 영화에 출연해왔다고 말했다. 영화로 보면 '초록 물고기'나 '8월의 크리스마스', '미스터 주부 퀴즈왕' 등이 그렇고, 드라마 '아들과 딸' '서울의 달'이 그렇다고 했다.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이 쉬운 주제를 쉽게 풀어내기가 참 어려워요. 변승욱 감독이 여백의 미를 담아내면서 영화를 풀어나가 좋았어요."
배우로서 그의 연기는 절제미가 느껴진다. 연기가 아닌 그저 한 사람의 삶을 옆에서 보여주는 듯한 느낌.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꾸 뭔가를 덜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창작하는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네요. 배우는 감독이 의도한 이야기를 가장 잘 전달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사람이죠. 어떻게 하면 연기를 안하면서 연기할 수 있을까, 이게 제 평생의 숙제입니다."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그에게 "얼마 전 한 시상식장에서도 그렇고, 제작보고회에서도 그렇고, 요즘 왜 이렇게 웃고만 다니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웃는 게 무슨 죄라고.
딱히 어떤 대답을 바라고 물어본 게 아니었는데 그의 대답에서 세월이 느껴졌다.
"카메라가 언제쯤 날 비춘다는 걸 알게 되니 때맞춰 웃게 된다"며 또 웃음 가득한 얼굴로 하는 말에 이어지는 대답.
"자꾸 웃음으로 표현되네요. 나이가 들게 되니 속상한 일도, 눈물나는 일도 그저 허허 웃게 됩니다. 웃음으로 표현하는 일이 많아져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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