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숙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

배우는 나이가 들수록 더 큰 꿈을 품나 보다. 늘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수 있길 바란다. 중견배우 김해숙에게도 이런 욕심, 아니 이런 꿈이 있다.

김해숙은 영화 '우리 형'에서 강인한 어머니, 자식을 먼저 보낸 상처에 가슴 찢긴 어머니를 연기하며 관객의 시선을 붙들었다. 사실 '어머니' 김해숙은 TV 드라마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부모님 전상서' '별난 여자 별난 남자' '장밋빛 인생, 그리고 지금 방송 중인 '소문난 칠공주' 등등.

23일 개봉하는 영화 '해바라기'에서도 김해숙이 그리는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 김래원이 그가 맞이한 아들 오태식으로 등장한다.

같은 '어머니'이지만 다 다르다. '부모님 전상서'에서는 지독한 음치임에도 노래에 빠져드는 소녀 같은 순수함을 지닌 평범하기 그지없는 엄마, '장밋빛 인생'에서는 딸을 두고 도망나온 인생의 회한에 빠진 채 질박한 삶을 사는 엄마, 그리고 '해바라기'에서는 아들을 죽인 원수를 아들로 받아들인 어머니다.

"'부모님 전상서'를 하기 전, 고두심 선배나 김영애 선배와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내길 바랐죠. 여러 모습을 통해 이제 '어머니'로 누구나 인정해주시니 더할 나위 없이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해바라기' 속 덕자는 애잔하기 그지없는 인물이다. 아들에게 맞고 살았지만 아들은 그의 행복이었고, 그런 아들이 죽고난 뒤 맞이한 새 아들도 행여나 잘못될세라 위태위태하다.

"지금까지 우는 연기를 할 땐 가슴 밑바닥부터 울어야 했어요. 그런데 덕자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 어머니죠. 아들한테 맞고 살고, 그 아들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가 웬만한 일에 눈 하나 깜짝 하겠어요. 슬퍼도 눈물이 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김해숙의 묵직한 존재감을 느끼게 한, 덕자가 모로 누워 딸에게 오태식을 왜 아들로 받아들였는지 설명하는 장면에서 가슴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다.

"관객이 울 수 있도록 관객 몫으로 남겨둬야 하는 장면인데 연기하면서 제가 너무 많이 울었어요. 울음을 참느라 대사를 빨리 했던 게 영화를 보니 두고두고 아쉽네요."

김래원이 처음부터 살갑게 다가와 촬영 전부터 '어머니'와 '아들'로 지낼 수 있었던 게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인 것 같다고 한다.

"이 영화가 태식이가 출소하기 전 숱한 사건은 생략된 채 태식이 출소 후 덕자와 만나는 것부터 시작해요. 관객에게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지만 어떤 감정을 갖고 사는지 알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촬영 들어가기 전에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감독님께 하나만 부탁했죠. 제가 스스로 덕자가 익을 때까지 편한 신부터 촬영하자고. 촬영이 거의 영화 순서대로 이뤄져 다행이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어머니를 연기했던 김해숙의 꿈은 어머니가 아닌, 여자를 연기하는 거다.

"제가 어머니를 연기했을 때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셔서 정말 고맙죠. 그런데 여배우로서 (나이가 든)우리도 배우입니다. 엄마로만 보이고 싶지는 않아요. 이 나이에도 배우로서 열정을 뽑아내고 싶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요. 엄마가 아닌, 뭔가 있지 않겠어요?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와서, 내 도전을 성취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배우로서 김해숙의 새로운 걸 끄집어낼 수 있는 작품과 감독을 만나고 싶네요."

한달음에 말을 쏟아냈다. 그의 눈빛은 여느 청년 배우 못지않다. 아니, 청년 배우보다 더 절실하다.

한 순간에 이미지를 바꾸기는 쉽지 않은 일. 이를 위해 그는 '빚을 갚느라'(방송계에서 그와 함께 했던 PD나 작가에게) 거절하지 못했던 드라마를 당분간 쉴 계획이다. 어쩔 수 없이 한다 해도 매일 얼굴을 보여야 하는 일일극이나 주말극은 아니었으면 싶다.

"일단 몸이 너무 안 좋아졌어요. 쉬면서 몸도 추스르고, 관객에게 새롭게 다가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죠. '매일 TV를 틀면 나온다'는 주위 분들의 말이 좋기도 하지만 배우로서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기에는 극복해야 할 말일 수도 있으니까요."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란 걸 그가 새삼 일깨워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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