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돈? 명예? 권력? 최소한 런던증권가의 펀드 매니저 맥스 스키너(러셀 크로)에겐 돈과 여자가 그 척도가 될 듯 하다. '승리는 모든 게 아닌 유일한 것'이라는 인생 철학은 그를 업계 최고의 실력자로 만들어 놓았다. 그의 말 한마디에 7천700만달러가 좌지우지되고, 치사하고 비열한 수법으로 돈을 긁어모은 만큼 이 바닥에선 정말 '재수없는 놈'이고 '지옥에나 떨어져야 할 매너꽝인 인간'으로 낙인 찍혔다. 하지만 맥스는 그렇게 욕을 먹을 때가 가장 살맛나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는 그를 시기하는 적과 후배들에게 충고하듯 말한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야."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프로방스에 살고 있던 삼촌 헨리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온다. 어릴 적 부모님처럼 따랐지만 런던에서 성공한 이후 헨리에 대한 맥스의 애정은 잊힌지 오래. 맥스는 헨리의 죽음보다는 그의 유일한 혈족인 자신에게 남겨진 헨리의 거대한 주택과 와인농장의 가치가 얼마인지 계산하기 바쁘다. 하루 예정으로 프로방스에 도착한 그는 저택 근처에서 카페를 경영하는 도도하고 매혹적인 프랑스 여인 페니 샤넬(마리옹 코틸라드)을 만나면서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다. 능수능란한 작업남인 그에게도 그녀의 마음은 좀처럼 열릴 것 같지 않다.
바람둥이 워커홀릭 남자가 매력적인 프랑스여인을 만나 러브홀릭이 되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린 '어느 멋진 순간'은 할리우드 멜로물의 가장 전형적인 방식으로, 그동안 소재의 변화와 수정 등을 거쳐 끊임없이 재생산돼온 스토리 라인이다. 하지만 '글래디에이터'의 명콤비 리들리 스콧 감독과 러셀 크로의 조합은 그런 진부함속에 또 다른 기대감을 불러 일으킨다. 삶과 죽음의 한가운데서 강렬함을 내뿜었던 중세시대의 검투사 막시무스의 모습은 아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맥스의 모습은 시대만 바뀌었을 뿐 일분일초에 피를 말리는 전장에 비유될 만하다.
이처럼 영화는 '글래디에이터'에서의 묵직하고 웅장했던 서사극을 전혀 다른 느낌의 영화, 코믹하고 유쾌한 드라마로 탈바꿈 시켜 놓았다. 어찌보면 성공가도를 달리며 돈 버는 것이 삶의 기쁨인 주인공 맥스는 자신도 모르게 워커홀릭이 되어가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인 셈이다.
감독은 대도시 런던과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프로방스를 대척점에 놓고 사랑과 인생의 진정성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빠른 터치로 그려 냈다. 그리고 러셀 크로로 하여금 영웅의 이미지를 벗고, 무게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건방지고 얄미운 바람둥이로 파격 변신을 시켰다. 영화의 제목인 'A Good Year'는 '좋은 포도품종이 생산된 해'를 뜻한다. 그래서일까. 영화 곳곳에선 와인의 향기가 색다른 매력으로 풍겨난다. 비록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사이드 웨이'처럼 와인을 통해 삶을 통찰하는 직접적인 결과물은 부재하지만, 자연과 인간과의 절묘한 하모니의 결정체인 와인이 이 영화에선 사람들간의 벽을 허물고, 소통하는 매개체 구실로 톡톡히 활용됐다. 맥스의 어린시절 삼촌과의 회상장면과 샤넬의 마음을 여는 도구로써 와인은 존재하며, 인생에서 중요한 어떤 가치로서 종종 비유됐다.
영화 '어느 멋진 순간'은 피터 메일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소설은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쓰여졌고, 작가 피터 메일과 리들리 스콧의 오랜 우정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여기에 곁들여진 아름다운 영상과 감미롭고 흥겨운 재즈, 클래식 등의 음악은 프로방스의 풍광과 어우러져 영화의 깊이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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