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주인공이다. 연기 데뷔 후 3년 반 동안 네 작품에 출연해 모두 여주인공을 맡았다. 억세게 운이 좋은 걸까? 아니면 탁월한 상품성 때문일까?
2일 오후 서울 용산의 한 극장에서 만난 댄스그룹 핑클 출신의 탤런트 성유리(25)는 들릴듯 말듯 다소곳한 목소리로 기자의 까칠한 질문을 피해나갔다.
“작품을 끝내고 보통 1년 정도는 공백을 가졌어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시놉시스를 읽고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배역을 달라고 감독님께 부탁했죠. 지금까지 보여줬던 캐릭터와 무척 달랐거든요. 부담은 있지만 더 많은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검정색 투피스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빛 목걸이로 포인트를 준 그는 인터뷰 장소가 더웠던지 두 뺨이 잘익은 사과처럼 발그레해졌다. 네번째 주인공을 맡은 소감을 물었다. 탁자위 마이크를 만지작거리더니 대답이 늦어진다.
“솔직히 처음에는 연기가 뭔지도 잘 몰랐어요. 나이가 어렸던 데다 연기를 하게 된 계기도 갑작스러웠고….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잠도 제대로 못잤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른 삶을 사는 재미를 느껴요. 제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생겼고요.”
성유리가 이번에 출연하는 작품은 KBS2 TV의 월화드라마 ‘눈의 여왕’. 안데르센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마법의 거울 파편이 심장에 박혀 심술궂게 변해버린 소년 케이를 찾아가는 겔다의 이야기가 줄거리. 천신만고 끝에 겔다는 케이가 사로잡힌 눈의 여왕의 궁전을 찾지만 친구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극중 성유리는 근무력증이라는 희귀병을 앓는 부잣집 딸 김보라로 나온다. 권투장 스파링 파트너로 곤고한 인생을 사는 한태웅의 상대역이다. 너무 신파적 스토리가 아니냐고 묻자 손사레를 친다.
“지금 4부까지 찍었는데 아직까지 대본에 병에 대한 언급이 없어요. 이 아이(보라)가 정말 아픈지 모를 정도예요. 싸우다가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릴 정도로 천방지축이거든요. 희귀병 하면 떠올리는 멜로드라마와는 분명 다를 겁니다.”
보라와 실제 자신을 비교해 달라는 요구에 “정말 저와 다른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찍다보니깐 의외로 비슷하더라”면서 “남들 앞에서는 도도하고 착한 척하지만 혼자 집에 있으면 한없이 여려지는 천상 여자”라고 설명했다.
요즘 그는 연기를 하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를 떠올린다고 했다. 새침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스칼렛 오하라가 보라와 닮았다고 생각하기 때문.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여자가 술먹고 주정하고 그래요. 감독님이 화를 내도 절대 미워보이면 안된다고 해서 요즘은 미워보이지 않게 화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태웅 역을 맡은 현빈과의 호흡에 대해 그는 “처음에는 촬영장에서 만나면 서로 먼산만 쳐다봤다”면서 “실제로는 한살 적은데 어리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오빠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원작의 결말은 이렇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슬픔에 겔다는 눈물을 흘린다. 진주알 같은 눈물이 케이의 몸에 떨어진 순간,얼어붙은 눈이 녹기 시작하고 심장에 박혀 있던 파편은 스르르 빠져나온다. 순수하면서도 가슴 저린 사랑을 연기할 성유리의 모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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