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인 올해는 일 년 내내 방송과 공연장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넘치도록 들을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모차르트 오페라 공연 레퍼토리는 그리 풍요롭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올해로 8회를 맞이하는 서울소극장오페라축제가 모차르트 걸작 오페라 세 편으로 이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 반갑다.
이 축제에 참여한 세종오페라단(예술감독 장선희)은 2-4일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689석)에서 '코지 판 투테'를 한국어로 번안한 오페라 '사랑한다면'(유철우 연출, 김주현 지휘)을 선보였다.
등장인물과 시대적 배경이 현재의 한국으로 설정된 이 작품에서 군 장교인 남자주인공들은 젊은 직장인들로, 이들이 변장하는 알바니아 기사 역할은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한국 유학생으로 바뀌었다.
철학자 돈 알폰소와 하녀 데스피나를 카페 주인 부부로 만든 아이디어도 극에 더욱 활기를 불어넣었다.
대본은 완전히 한국어로 바꾸었고 음악 면에서는 아리아만 살린 채 레치타티보는 노래극(징슈필)처럼 연극 대사로 전환했는데, 전체적으로 대사 부분이 생생한 재미를 주었지만 아리아 가사는 이따금 극의 새로운 설정과 썩 어울리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연출 콘셉트에 맞추어 대본의 스타일을 통일하고 번안에 있어 좀더 과감하게 관객의 웃음을 겨냥했더라면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이탈리아어 대본에 익숙한 성악가들이 한국어로 번안한 텍스트를 노래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출연진 모두 이탈리아어로 불렀더라면 물론 훨씬 자연스럽고 훌륭한 가창을 들려줄 수 있는 가수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프라노 오은영(피오르딜리지)과 메조소프라노 김세아(도라벨라)의 가창과 연기는 각자의 역할에 정확하게 어울리는 것이었다.
특히 데스피나 역의 소프라노 박선영은 잘 다듬어진 미성과 노련한 연기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돈 알폰소 역을 맡은 베이스 김재찬, 바리톤 강기우(굴리엘모), 테너 이성식(페란도) 역시 익살스러운 호연을 펼쳤다.
두 대의 엘렉톤과 세종오페라단 챔버앙상블의 목관, 금관악기들이 반주를 맡았는데, 부분적으로 특정 악기의 소리가 부자연스럽게 돌출되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전체적인 연주에서는 활력과 생동감이 느껴졌다.
3-5일 예울음악무대(예술감독 박수길)가 국립중앙박물관의 극장 '용'에서 공연한 '박과장의 결혼'(이범로 연출, 양진모 지휘)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번안한 작품.
862석의 중형 극장 '용'은 오케스트라 피트도 갖추고 있어 모차르트 오페라 공연에는 적절한 환경이다.
이 공연에서는 합창이 빠졌을 뿐,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를 번안해 거의 그대로 살렸다.
모차르트의 이탈리아어 오페라에서는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유기적인 연결이 극 전체의 생명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레치타티보를 포기하면 엄청난 음악적 효과의 손실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특히 '피가로의 결혼'은 3막과 4막에서 극의 긴장이 다소 느슨해져 생략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만큼, 1-2막의 레치타티보를 최대한 살리고 3-4막을 대폭 줄인 이번 시도는 설득력이 있었다.
'박과장의 결혼' 역시 무대는 현재의 서울이다. 바람둥이 백작은 특급호텔 사장, 피가로는 하인이 아닌 호텔 직원, 수잔나는 사장의 비서로 변신했다.
미소년 케루비노까지도 수잔나와 입사동기인 호텔 직원이다. 나중에 피가로의 어머니로 밝혀지는 마르첼리나는 여기서 피가로에게 외상값과 빚을 독촉하는 카페 여주인으로 설정된다.
연출 콘셉트는 어색한 부분이 거의 없이 아귀가 척척 잘 들어맞는다. 2막에서 케루비노가 창밖으로 뛰어내릴 때 파손되는 것은 화분이 아니라 주차해놓은 사장의 자동차고, 4막에서 변장과 밀회가 이루어지는 공간은 정원이 아닌 호텔 스위트룸.
'피가로의 결혼'을 처음 보는 관객들도 웃음을 터뜨리지만, 원작의 내용을 알면서 본다면 더욱 재미있는 번안작품이다.
11명의 출연자가 한결같이 자연스럽고 희극적인 연기로 관객을 집중시켰지만, 피가로(박과장) 역을 맡은 베이스 박준혁의 빼어난 가창과 열연이 특히 돋보였다. 여러 개의 문을 이용한 단순한 무대도 효과 만점이었다.
소극장 오페라에서 흔히 기대하기 어려운 20명 규모의 체임버 오케스트라(영감과 열정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쳄발로가 반주를 맡아 모차르트 오페라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부족함 없이 전달한 것 역시 이 공연의 놀라운 수확이라 할 수 있다.
한국어 공연이 가수들에게는 물론 상당한 부담이지만, 지역 주민들이 찾아오는 중형극장에서 이루어진 이 두 공연은 높아 보이는 오페라 장르의 문턱을 단번에 허물었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가진다.
지난해의 소극장 오페라 공연들이 반주악기로 대개 엘렉톤만을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두 공연 모두 소규모의 앙상블을 선택했다는 것 역시 바람직한 시도로 보인다.
이처럼 엘렉톤, 엘렉톤+피아노, 엘렉톤+관악 앙상블, 순수 관현악 앙상블 등 반주악기군의 다양한 실험을 거치면서, 작품의 성격과 극장 규모에 맞는 가장 효과적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두 공연 모두 번안작가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오페라단 내에서 공동작업이 이루어졌거나 연출가가 자신의 연출 콘셉트에 맞춰가며 직접 대본을 번안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음악과 잘 어우러지는 재치있는 대사를 만들어내기 위해 오래 공을 들였을 번안작가의 이름은 프로그램 소책자에 소개되었으면 한다.
서울소극장오페라 축제의 세 번째 모차르트 오페라 공연은 15-16일 성동구 소월아트홀에서 펼쳐지는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의 '돈 조반니'.
지난해에 초연된 이후 전국 순회공연을 통해 관객의 열렬한 찬사를 받은 소극장용 작품이다.
재정 지원이 거의 없는 열악한 상황에도 매년 재미있고 수준 높은 공연으로 관객을 만족시키는 서울소극장오페라 축제를 지켜보면서, 잘 지어진 수많은 지역 극장들을 활용할 수 있는 소극장 오페라에 대한 많은 관심과 재정적 지원을 간절히 바란다.
/연합뉴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