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정체성은 모차르트, 그 중에서도 현대적 해석과 원전 해석의 과도기적 지점에 위치해 있다.
지휘자 카를 뵘이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연주한, 무겁고 진중한 '주피터 교향곡'이 교과서처럼 인식되던 시절, 파움가르트너에게서 지휘봉을 물려받은 샨도르 베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앙상블(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을 이끌고 날렵하고 생기넘치는 모차르트를 소개하며 파격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들이 선보인 다이어트 버전의 모차르트는 당시 막 태동하던 원전 연주 운동과 크게 연관성은 없었다.
오히려 선이 굵고 다소 낭만주의적인 스타일의 소유자였던 샨도르 베가 추구한 근거는 '오케스트라=확장된 현악 4중주단'이라는 공식이었다.
이 시절 음반으로 남은 그들의 수많은 모차르트 명연들, 그 중에서도 협주곡을 살펴보면 이는 더욱 분명하게 감지될 수 있다.
실제로, 샨도르 베 체제의 카메라타 잘츠부르크는 정교한 악단은 아니었다. 그러나 생동감 넘치게 튀어오르는 각 현악 파트의 멜로디 라인은 솔리스트를 단순히 보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등하게 어깨를 겨루며 대립을 통해 조화와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그야말로 현악 4중주가 꿈꾸는 이상향인 셈이다.
샨도르 베의 급서 이후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명성 또한 한풀 꺾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다만 수장의 별세만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 사이 원전 연주가 득세하고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와 유사한 스타일의 연주를 추구하는 악단이 늘어나면서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특별함은 그 고유의 가치를 상실했다.
이에 현재 악단은 로저 노링턴이라는 원전 연주 지휘자를 음악감독으로 불러들이면서 두 번째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시도 중에 있다.
24일 LG아트센터에서의 첫 번째 내한공연은 바로 이 시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청중의 기대는 극단을 달렸다. 샨도르 베 시절의 달콤한 낭만주의 스타일을 기억하고 찾아온 중장년층부터 최근의 원전 연주에 흥미를 느낀 젊은 애호가층까지 각자의 서로 다른 기대치를 가지고 그들의 무대를 지켜보았다.
첫 곡으로 연주된 디베르티멘토 K.136과 세 번째 곡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K.525는 대단히 대중적인 레퍼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청중들의 귀를 사로잡는 호연이었다.
샨도르 베가 심어놓고 간 생기와 우아함, 그리고 반짝거리는 음색이 있는 그대로 재현되었으며 여기에 정교함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여러 토막으로 자잘하게 잘려진 프레이징과 빠른 템포, 그리고 비브라토와 장식음의 지양은 깔끔한 음표의 본질만을 남겨두었다.
하지만 줄리안 라흘린이 협연한 바이올린 협주곡 5번 K.219와 교향곡 40번 K.550은 이 악단이 아직 과도기에 머물러 있음을 시사하는 애매한 소리를 연출했다.
라흘린과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와의 결합은 흡사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외국인의 만남을 연상시킬 만큼 혼란스러웠다. 음색의 톤 자체가 이질적인 가운데 서로 다른 프레이징과 해석이 엇갈리면서 음악은 일관된 흐름을 상실했고 지루하게 매듭지어졌다.
모차르트의 가장 유명한 교향곡 중 하나인 40번에서도 긴장감은 결핍되어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멜로디 라인의 부재였다.
밝고 화사하며 통통 튀어오르는 생동감으로 1악장에서 사뭇 기대를 모았지만, 음색의 다채로움과 다이내믹이 부족했다. 화사한 미소는 풍부했지만 그 와중에 내면적으로 깃들어 있어야할 g단조 특유의 멜랑콜리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지휘자가 부재한 가운데 악장 나탈리 치의 리드는 정확하고 사려깊긴 했지만, 일관된 해석과 깊이를 이끌어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현대악기에 어느 수준까지 원전의 해석을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인지, 혹은 원전의 해석을 현대악기가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수 있을 것인지, 로저 노링턴의 실험은 아직 결과물을 얻어내지 못한 듯 싶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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