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을 보면서 역사를 배운다고? 그래도 역사공부는 해야해요”

“TV 드라마 그만 보고 공부 안해?”

하지만 이런 잔소리를 하는 부모들은 역사 드라마를 하는 시간엔 자녀들에게 너그럽다. 자녀들이 사극(史劇)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역사를 배울 수 있다고 막연하게 기대하기 때문이다. 기대에 부응하듯 시청자의 40%가 사극 내용을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78%의 시청자는 사극을 보면 역사 학습에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을 한다고 답했다.

◇ TV 사극 열풍… 10대·50대 모두 마니아

지금 브라운관은 사극의 ‘춘추전국시대’다. 방송사마다 대형 사극을 주말과 평일 황금시간대에 포진해 놓고 있다. 월·화요일엔 ‘주몽(MBC)’, 수·목요일엔 ‘황진이(KBS)’, 토·일요일엔 ‘대조영(KBS)’과 ‘연개소문(SBS)’이 시청자를 기다린다. 한류 톱스타 배용준이 주연을 맡은 ‘태왕사신기(MBC)’도 내년 방영을 앞두고 촬영 중이다.

이미 SBS는 ‘서동요’를, MBC는 ‘다모’와 ‘대장금’을, KBS는 ‘불멸의 이순신’을 방영해 많은 사람들을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모았다.

주 시청자 층도 다양해졌다. 과거 사극들이 정통을 내세우며 중·장년층을 겨냥했다면 최근 사극들은 모든 시청자를 아우르고 있다.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퓨전’ 사극의 등장과 신세대 배우들의 가세로 나이에 관계없이 좋아하는 드라마 장르가 됐다.

리서치 전문기업 엠브레인이 10대 이상 남녀 549명을 대상으로 ‘역사 드라마 관심도’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9%가 ‘사극에 어느 정도 관심있다’고 답했다. 10대에선 48%, 20대에서 56%가 사극에 관심있다고 답해 40대 56%와 50대 72%에 못지않은 관심을 보였다.

‘사극 코드’는 스크린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왕의 남자’는 사극이라는 비인기 장르에도 불구하고 1230만명의 관객을 모았고 ‘음란서생’도 200만명이라는 적지 않은 관객몰이로 사극의 인기를 이어갔다.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TV 드라마 ‘다모’를 영화화한 ‘형사’도 젊은 층의 관심을 받았다.

◇ 사극으로 역사 공부를?… 78% “사극, 역사 학습에 도움 ”

역사 드라마를 보는 텔레비전 시청자 10명 중 8명은 ‘사극 드라마가 역사 학습에 도움을 준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엠브레인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8%가 ‘사극드라마를 통해 역사 학습이 된다’ 고 답했다.

또 사극 드라마의 역사 내용도 신뢰하고 있었다. 시청자의 40%는 사극을 통해 방영된 역사 내용에 대해 ‘매우 또는 다소 믿는다’ 고 답했다. 반면 ‘전혀 또는 별로 믿지 않는다’ 는 응답은 18%에 그쳤다.

사극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중국의 동북공정이 잘못됐음을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0%가 ‘매우 또는 다소 가능하다’는 긍정적 의견을 보였다. 이는 ‘전혀 또는 별로 가능하지 않다’는 응답(24%)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 사극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사극에 드라마적인 요소를 가미하거나 작가의 상상력을 추가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반대(46%)가 찬성(36%)보다 높게 나타났다. 역사적 사실 고증이 작가의 상상력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극의 내용 변형 반대 이유로는 ‘역사 학습에 혼동 우려’가 51%로 가장 높았고 ‘잘못된 역사관 고취’가 46%, ‘국수주의·민족주의 우려’가 2%로 그 뒤를 이었다.

엠브레인 이지영 과장은 “사극은 모든 연령층에서 높은 관심을 보이는 장르”라며 “사극의 영향력이 큰 만큼 제작사와 방송사에서도 책임감을 가지고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사극을 통한 학습 효과, 정말 믿어도 될까 ?

방송 3사에서 방영하는 사극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엠브레인의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듯 많은 사람들이 사극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또 상당수가 사극의 학습 효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TV 사극들이 역사 고증을 등한시하는 내용 전개로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극을 통해 역사를 알아가는 것이 현명한 행동일까?

역사교육 관련 전문가들은 역사 속 인물이나 시대를 많은 사람에게 소개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그러나 출연인물이나 묘사를 그대로 믿기 보다 실제 역사와 어떤 차이를 갖는지 스스로 확인해가며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교원대 송호정(역사교육과) 교수는 “최근 사극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많은 시청자들이 드라마적 허구를 실제 일어났던 일로 착각하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드라마 사극 자체를 역사 학습의 자료로 활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며 “하지만 사극 때문에 좀더 많은 사람이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경기대학교 김기봉(사학과) 교수는 “영상 세대들이 텍스트가 아닌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역사 정보를 얻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역사 교육 자료도 텍스트 중심에서 벗어나 드라마, 영화, 연극 등과 결합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사극의 내용은 허구와 사실을 적절히 섞은 ‘팩션의 역사’이므로 시청자들은 이를 선택적으로 소비해야 한다”며 “다양하게 쏟아지는 역사 관련 영상 매체를 시청자들이 올바르게 소비할 수 있도록 역사학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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