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방송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온 드라마는 지난 40년간 어떻게 변해왔을까. 고려대에 출강중인 정영희씨가 ‘집단적 체험,정서의 기록:텔레비전 드라마 40년’이란 박사학위 논문을 통해 이 질문의 해답을 제시했다. 논문은 방송환경의 변화 등을 기준으로 한국 드라마 40년을 8개 시기로 세분화했다.
논문에 따르면 드라마가 탄생한 1962년부터 1964년까지는 정부의 규율과 통제에 동조하는 것으로 제작됐다. 도시 주변 문제들을 다룬 ‘서울 뒷골목’,불조심 방범·방첩 등을 담은 ‘영이의 일기’,반공극 ‘실화극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민영방송 TBC의 개국으로 드라마 제작환경은 급변한다. 오락과 흥미성이 중요 요소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 이 때문에 애정과 불륜을 다룬 일부 드라마는 윤리성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유신’과 ‘긴급조치’로 상징되는 1970년대 전반기는 규제에 대한 순종과 저항이 뒤섞인 시기였다. 드라마 역시 희생적인 개인상을 미화하는 ‘아씨’나 ‘여로’가 큰 인기를 끌었다. 반면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애환을 그린 ‘갈대’ 등 작품도 제작됐다. ‘박마리아’ ‘이풍진 세상’ ‘두 얼굴’ 등은 색깔 시비에 휘말리면서 방송이 아예 나가지 않거나 조기 종영되기도 했다.
특히 이 시기의 장수 드라마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했다. 1971년부터 약 20년간 방송됐던 ‘수사반장’이 대표적인 경우. 방영 초기에는 생활고로 인한 단순 범죄가 주요 소재였으나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기,도박,유괴,살인강도,마약 등 강력범죄를 많이 다루다가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후 막을 내리게 됐다.
오락·향락 문화가 대중화된 70년대 후반에는 ‘후회합니다’ ‘안녕’ ‘아빠’ 등 불륜이나 애정 드라마가 많이 제작됐다. 신군부가 등장한 1980년대 초반에는 정권의 정당성을 암시하는 ‘개국’ ‘조선왕조 500년’ 등이 제작됐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농간 화합을 다룬 ‘전원일기’나 ‘해뜨는 언덕’ 등이 만들어진 것도 이 때부터. 권력비리나 정경유착을 소재로 한 ‘제1공화국’ ‘야망의 25시’는 조기 종영됐다.
민주화 요구가 거셌던 1980년대 후반에는 금기시되던 소재가 늘어났고 ‘여명의 눈동자’처럼 민족 수난기를 다룬 드라마도 만들어졌다. 1990년대에는 드라마의 세대분화가 시작됐다. ‘질투’ ‘걸어서 하늘까지’ ‘마지막 승부’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대표되는 트렌디 드라마와 중·장년을 겨냥한 ‘한명회’ ‘장녹수’ 등이 안방극장을 휩쓸었다. IMF가 강타했던 1990년대 후반에는 심각한 주제보다 경쾌하고 즐거움을 주는 드라마가 유행을 탔다.
정 박사는 “드라마는 인간의 삶과 감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영화나 연극과 다를 바 없다”면서 “드라마 소재의 변화는 시대적 요청의 결과”라고 말했다. 그의 논문은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발간하는 ‘프로그램/텍스트’ 최신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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