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LG아트센터 홈페이지에는 다음날 콘서트를 갖는 오귀스탱 뒤메이가 무사히 서울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이 공지사항으로 올라왔다.
공연을 앞둔 아티스트가 일정대로 내한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게시물로 그의 공연 티켓을 예매했던 많은 관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994년 KBS 교향악단과의 협연 취소를 시작으로 그의 내한 공연 펑크는 무려 3차례. 사람들의 관심은 "그의 연주가 어떠할까"가 아니라 "그가 정말 이번에는 올까"에 맞추어져 있었다.
이런 그의 행보를 두고 "뒤메이는 아시아와 유색인종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지만 이는 근거없는 소문으로 드러났다.
뒤메이-피레스 부부와 함께 실내악을 녹음했던 중국출신의 첼리스트 지안 왕은 그들 사이에 입양한 아시아 혈통의 자식이 두 명이나 있음을 증언했다. 또한 이번 내한 공연에 그는 쇼팽 콩쿠르 입상 경력을 가진 일본인 피아니스트 미치에 코야마를 대동하고 찾아왔다.
부인 피레스와의 듀오 음반에서 보여준 뒤메이의 연주의 장점은 실은 '바이올린의 개성을 죽이지 않는 가운데 피아노를 배려하는 데' 있었다.
모차르트 소나타 K481, 그리그 소나타 1번, 그리고 베토벤 '크로이처' 소나타로 이루어진 이번 내한 프로그램은 피아노의 비중 또한 월등한 작품들로, 그의 성격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구색이었다. 다만, 피아니스트가 그의 아내가 아니라는 점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그러나 음반에서는 쉽게 잡히지 않았던 또다른 미덕이 공연장에서 드러났으니, 그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다채로운 음색이었다.
단순한 템포나 강약의 조절을 넘어서 그는 각각의 작품, 각각의 악장, 각각의 프레이즈마다 전혀 다른, 그러나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음색들을 활로 그어냈다. 이러한 음색의 변화는 특히 다소 느린 템포로 진행된 모차르트 소나타의 2악장에서 매우 아름답게 승화되었다.
모차르트의 소나타에서 격식과 품위를 고수하며 고고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궁정악장의 모습을 선보였던 뒤메이는 그리그 소나타 1번에서는 그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날개를 펼쳤다. 탄력있는 리듬감으로 노르웨이 민속 춤곡의 형태가 고스란히 살아나는 가운데 그리그 소나타는 매번 색깔을 바꾸어가며 생기를 더했다.
2부에 연주된 크로이처 소나타는 뒤메이가 가진 테크닉, 그리고 그의 음악의 철학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활을 길게 쓰는 가운데에서도 음의 강약은 자유롭게 조절되었으며 손가락의 퉁기는 현 하나하나 마다도 소리가 전혀 다를 정도로 그는 음표 하나하나를 세분화시켜 그려냈지만 이는 '분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스승인 나탄 밀스타인이 추구하던 자연스러운 자유분방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1악장은 약간 위축되었지만 변주곡으로 이루어진 2악장에서부터 그의 바이올린은 카멜레온의 본성을 드러냈으며, 3악장에서는 그 색채의 향연이 현란하게 느껴질 만큼 절정에 이르렀다. 보면대(譜面臺)를 가져다 놓고 안경을 쓰고 악보를 일일이 읽어가며 연주하는 그의 얼굴에는 자신의 소리를 즐기는 듯 시종 흐뭇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역시나 뒤메이는 피아노 파트에도 많은 기회를 부여하며 '공생'이라는 실내악적 원칙을 실천하고자 했다.
그러나 피레스의 아우라가 강렬해서였을까. 미치에 코야마의 피아노 연주는 다소 둔탁했으며 자신감을 잃은 듯 전혀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날의 연주는, 이제는 음반으로밖에 들을 수 없는 과거 그뤼미오와 셰링과 같은 비르투오소들의 낭만과 전통이 공존하는, 모처럼 과거의 향수를 기분 좋게 만끽할 수 있는 무대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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