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보다 유럽 무대에 먼저 소개된 한국 창작 오페라라는 사실이 관심을 끌었을까?
13일 국립오페라단(단장 정은숙)의 '천생연분' 한국 초연(16일까지)이 이뤄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객석은 예상 외로 가득 찼다. 창작 오페라 공연으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놀라운 일은 또 있다. 음악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 관객이 다들 공연을 상당히 즐겼다는 사실이다.
음악은 친근했고 네 겹 무대는 눈을 사로잡았으며 극은 재미있고 속도감도 있었다. 창작 오페라에서는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운 성공적 결실이었다.
'천생연분'은 한국 전래동화만큼이나 그 내용이 잘 알려진 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를 토대로 한 오페라다.
그러나 오영진의 작품에서 '콩쥐팥쥐'처럼 등장하는 '착하고 현명한 여종'과 '욕심 많은 주인집 딸'은 오페라 '천생연분'에서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김판서의 손녀 서향'(소프라노 김은주)과 '현실감각 있는 여종 이쁜이'(소프라노 박지현)로 바뀐다.
자매처럼 친밀한 이 두 여주인공은 마치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에 나오는 '차분하면서도 열정적인 피오르딜리지'와 '명랑하고 재치있는 도라벨라' 같은 인상을 준다.
이들을 사랑하게 되는 맹진사의 아들 몽완(테너 이영화)과 그의 친구이자 종 서동(바리톤 김동원) 역시 '코지'의 굴리엘모와 페란도에 대입할 수 있는 성격을 지녔다.
이처럼 악역이 사라져 버린 까닭에 '천생연분'에는 '맹진사댁 경사'에서 볼 수 있는 권선징악의 분위기가 없다.
그래서 극은 훨씬 세련된 반면, 희극 특유의 시정(是正) 효과는 약해졌다. 못된 주인공이 벌을 받는 과정이 빠졌기 때문이다.
'코지 판 투테' 외에도 '천생연분'을 보며 떠올리게 되는 오페라 작품은 상당히 많다. 작곡가 임준희의 음악과 작가 이상우의 대본이 워낙 다채로운 빛깔을 내고 있어서다.
올해 3월에 국립오페라단이 이 작품을 프랑크푸르트에서 공연했을 때도 현지 공연 평마다 '푸치니 음악과의 유사성'을 언급하는 내용이 빠지지 않았다.
음악을 듣다 보면 부분적으로는 '나비부인'과 '투란도트'를 떠올리게 된다. 한국적인 리듬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고 판소리와 우리 고유 악기의 장단이 귀에 꽂히지만, 역시 작품 전체를 주도하는 흐름은 장음계와 단음계를 사용하는 전통적인 서양음악의 작곡 방식이다.
또 레하르 풍의 달착지근한 선율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이 작품이 오페라보다는 오페레타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사실 쇤베르크 이후 현대 음악어법을 거의 구사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지만, 이 점이 오히려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는 도움을 줬다고 할 것이다.
임준희의 음악은 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를 토대로 한 또 다른 오페라인 잔 카를로 메노티의 '시집가는 날'(1988)보다도 밝고 수월하게 들린다. 그래서 현대음악을 두려워하는 청중을 일단 안심케 한다.
결혼할 상대방의 생김새를 모르기 때문에 바꿔치기할 수 있다는 설정 역시 로시니의 희극 '브루스키노라는 남자'나 '결혼청구서'같은 희극 오페라에 흔히 등장하는 구도.
그리고 대본에 담긴 '신분 철폐의 이상'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떠올리게도 한다. 특히 맹진사(베이스 함석헌)가 보잘 것 없는 자기 집 족보를 펼쳐놓고 한탄하다가('초시 초시 줄초시') 전이방(테너 송원석)과 함께 족보를 고치는 대목은 대본과 음악과 연기 모두 최고의 희극성을 구현한 부분이다.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무대미술(임일진)과 의상(이용주)은 전통적인 요소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상징화했다.
합창단은 다양한 빛깔의 한복 대신 모두 흰옷을 입었고, 주인공들이 입은 단색조의 원색 의상도 단순화된 무대 위에서 강렬한 인상을 전달했다.
전통을 현대화한 중국이나 일본의 공연예술과 비교할 때 한국의 작품들은 대체로 절충주의적으로 보여 선명한 인상이 부족한 것이 아쉬움인데, '천생연분'의 무대는 이런 문제점을 비교적 훌륭하게 극복했다.
극중 중요한 노래들을 콘서트에서 독창하듯 거의 연기 없이 부르게 한 것은 약간 지루한 느낌을 주지만, 무대 디자인의 미니멀리즘을 고려한 연출 콘셉트로 보인다(연출 양정웅).
두 커플이 엇갈려 사랑에 빠지는 2막의 4중창에서 서향과 서동, 이쁜이와 몽완이 서로에게 끌리는 장면의 대사와 연기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거문고, 가야금, 해금, 대금 등 다양한 국악기(중앙국악관현악단)가 가세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지휘 정치용)의 연주는 특히 합창 부분에서 빛을 발했다.
집단의 해설로 전체 줄거리를 이끌어가며 장면마다 적절하게 희극적 양념을 쳐준 국립오페라합창단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경쾌하고 빠른 템포로 작품의 해학을 살려냈다.
충분히 즐길 만한 작품이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전통적 소재를 택한 일본의 현대 오페라나 중국의 곤극 공연만큼의 강렬한 충격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저 우리 소재에 너무 익숙해서일 뿐일까?
음악도 극도 우리 고유의 색채를 좀 더 명징하게 드러낼 때 한국 창작 오페라가 국제 무대에서도 더욱 인정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 고유의 색채를 정형화하려는 모색의 과정으로서 이번 공연은 큰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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