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the sea' 'as long as I'm sining' 등 주옥같은 명곡을 남긴 팝스타 바비 대런.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아 15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란 선고를 받았음에도 그는 음악을 통해 영원한 삶을 살았다.
1956년 혜성같이 나타나 숱한 노래와 영화를 남긴 후 37살의 나이로 요절한 바비 대런의 짧은 인생이 영화로 되살아났다. 영화의 주인공은 '유주얼 서스펙트' '아메리칸 뷰티'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케빈 스페이시.
'비욘드 더 씨'는 케빈 스페이시가 바비 대런에 헌사하는 영화다. 케빈 스페이시는 15년 전 어릴 적 가족의 우상이었던 바비 대런의 삶과 음악을 스크린에 옮기겠다는 계획을 2004년 기필코 실현했다. 연기뿐 아니라 제작, 각본, 감독까지 직접 맡았다.
영화는 '영화 속 영화' 형태로 진행된다. 바비 대런이 살아 생전에 자신의 일생을 담은 영화를 직접 제작하는 방식이다. 유머러스하게도 케빈 스페이시는 "당신이 직접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기엔 너무 나이 들지 않았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을 통해 45살에 30대 바비 대런을 연기해야 하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어느 작품에서나 믿음직스럽지만 케빈 스페이시는 가열찬 노력으로 춤과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춤 동작 하나하나, 노래 한 곡마다 바비 대런을 향한 존경심이 묻어난다.
어른이 된 바비 대런과 어린 시절의 바비 대런이 함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방식을 택했다.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바비 대런은 어린 시절 류머티즘 열병으로 심장이 손상돼 15살까지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는다. 그의 어머니 대런은 피아노와 노래를 통해 바비 대런이 삶의 희망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한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그의 생명을 연장시켰고 프랭크 시내트라와 같은 가수가 되길 꿈꾼다.
1956년 그는 'Splish Splash'로 혜성같이 등장해 단번에 10대들의 우상이 됐지만 결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고집해 전 세대를 휘어잡는 스타가 됐다. 첫 영화를 촬영하며 만난 산드라 디는 평생의 반려자가 된다.
인기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시점에 그는 정치에 눈을 떠 "케네디와 바비 대런만이 진실을 말한다"고 외치며 정계 진출을 고려한다. 그 즈음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가장 존경했던 어머니가 사실은 할머니이며, 늘 자신과 함께 했던 누나가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는 오랜 방황을 한다. 방황 끝에 바비 대런은 진심으로 청중이 원하는 노래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이런 큰 줄기의 바비 대런의 삶은 내면의 고통까지 들여다보는 세심함으로 표현된다. 케빈 스페이시 자신이 대중예술가이기 때문에 세대를 뛰어넘는 예술인의 삶과 번민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가슴이 꽉 차 오르는 영화. '비욘드 더 씨'는 곱씹을수록 가슴이 아린 영화다.
전체관람가. 26일 개봉.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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