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오케스트라의 본질은 인간적인 공동체를 바탕으로 세워졌고, 그리고 그 법칙들은 이러한 공동체의 각 움직임을 통해 결정된다."

독일의 음악 평론가 파울 베커는 자신의 저서 '오케스트라'에서 이렇게 정의를 내린 바 있다.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입성한 다니엘 하딩 지휘의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그런 의미에서 21세기형 오케스트라의 진화를 실증한 사례였다.

20세기를 풍미하고 카라얀에 의해 초절정에 이르렀던 1인 독재 체제는 바로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종식됐다. 카라얀의 서거 이후 입성한 아바도는 독재 대신 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했으며 이는 또한 오늘날 오케스트라 체제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포디엄의 카리스마 대신 단원들 개인의 기량이 어떻게 서로 융화되고 화합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연주의 가치가 평가되는 가운데, 실제로 각종 해외 평론 또한 지휘자의 해석보다는 오케스트라의 기량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늘어나는 태세이다.

아바도가 창단한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물려받은 31세의 다니엘 하딩은 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한 지휘자의 적자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의 노선을 추구하는 사이먼 래틀의 눈에 띄어 포디엄에 올라선 그는 1996년 아바도의 초청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한 뒤부터 아바도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들어서 있었다.

즉, 하딩 산하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단원 선발에서부터 지휘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직접 관여하고 선발한 아바도가 과도기의 베를린 필에서는 미처 펼치지 못했던, 본인의 오케스트라적 이상향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공연은 1부는 유쾌했으며 2부는 진지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일반적인 서곡 대신,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오프닝으로 배치한 그들의 프로그램은 앙코르 곡 하나 조차 성의를 다해 마련한 것이었다.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가진 음향적 열세를 커버하기 위해서 첼로와 비올라를 무대 가운데 배치한 가운데, 모차르트 교향곡 6번은 목관 파트에 일부 원전악기가 배치되며 매우 깔끔하고 정갈하게 연주됐다.

하딩의 지휘는 템포 대신 강약의 능동적인 조절과 적절한 엑센트 구사를 통해 작품에 생기를 더했다. 그의 지휘 스타일은 매우 디테일하면서도 깔끔하여 그의 손놀림만 지켜보아도 음악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라르스 포그트와 협연한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은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의 즐거운 어우러짐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지휘자와 솔리스트는 서로 대결을 통한 긴장감 보다는 배려를 통한 조화를 선택했으며, 이는 화기애애한 음악으로 이어졌다. 철학적인 내밀함을 추구하긴 어려웠지만 젊음이 가진 유쾌한 낙천성이 객석까지 전이되어 마찬가지로 젊은 층으로 구성된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라르스 포그트는 10여년 전 베토벤 소나타를 가지고 내한 리사이틀을 개최할 당시의 진지함과 무게감 대신 한 판의 흥겨운 젊음의 축제를 연상케 할 만큼 활기찬 연주를 구사했다. 이 또한 오케스트라의 젊은 성향을 고려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우러짐'이라는 화두는 슈만 협주곡 이후 브람스 피아노 4중주 마지막 악장을 앙코르로 연주하며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됐다. 무엇보다 앙코르 연주중 지휘자가 안경까지 끼고 나와 피아니스트의 악보를 직접 넘겨주는 모습은 참으로 상징적이었다. (그러나 지난날 독재자의 카리스마를 추억하는 이들에게는 씁쓸한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2부 순서에서 연주된 브람스 교향곡 2번에서는 '안티 다이내믹적 경향'과 실내악적 이상향을 추구했던 작곡가의 본래 의도가 편성만으로도 충실하게 재현됐다. (1부 앙코르로 그들이 브람스 피아노 4중주를 선택했던 것은, 어쩌면 브람스의 교향곡이 실내악에서 비롯되어 발전됐다는 점을 암시하고자 했던 대목이었을지 모르겠다).

전반부의 다소 들뜨고 외향적이었던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이 젊은 악단은 브람스를 통해 내면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항해를 이어갔다. (작곡가의 의도에 따라) 음량과 악기수를 감소시킨 대신 두드러진 것은 단원들의 뛰어난 개인기였다.

현악 파트는 각 성부마다 탄력있고 부드럽게 이어졌으며 주제의 대위 또한 선명하게 부각됐다. 이러한 가운데 특히-슈만 협주곡에서도 그러했지만-오보에 주자 미즈호 요시이 및 플루트의 줄리아 갈레고의 솔로 연주는 매우 탁월하고 아름답게 천상으로 떠올랐다.

대편성에 익숙해 그들의 브람스에 2% 부족함을 느꼈던 청중들조차 앙코르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 없는 만족을 표시했을 것이다.

흔히 흥겨움을 더하기 위해 경쾌한 레퍼토리를 준비할 터인데 그들은 첫번째 앙코르로 의외로 진중한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춤곡 4번을 선택했다.

앙코르의 백미는 두번째와 세번째 순서로 이어진 모차르트의 '주피터' 교향곡 4악장과 3악장이었으며, 특히 4악장은 본 프로그램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만큼 빼어나고 진지했다.

세계 최고의 악단중 하나인 베를린 필을 지휘하던 아바도가 이러한 젊은 무명의 오케스트라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오케스트라가 가진 생명력과 생기는 단순히 젊음에서 우러나온 것만은 아니다.

지휘자의 악기에 불과했던 오케스트라의 수동성에 자발적인 참여와 동기를 부여하면서, 악단은 스스로 능동적이면서도 동등한 소리를 구사하게 되었다.

공산주의자로 알려진 아바도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이 악단을 통해 추구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의 음악적 성향은 그와 유사성을 띠고 있다.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가진 정치적, 사회적 구도의 가능성 이외에도 우리가 주시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정체성이다. 그들은 상주악단이 아니며 더더군다나 대부분이 20대 이하의 연령층으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청소년' 오케스트라로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 최고의 음악 페스티벌인 루체른 페스티벌의 고정 참가 악단으로 승격됐다. 아직도 천재적인 솔리스트만을 배출하기에 급급한 국내 교육계는 수십 여 개의 표류하는 한국의 관현악단에도 눈을 돌려 학생들에게 '함께 연주하는 즐거움'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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