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 "13년 만에 양복 입었습니다"

"건달, 자장면 배달부, 교복 입은 학생, 그러다 어떤 때는 반쯤 벗고 나오기도 하고…. 그런데 이번에 양복을 입고 촬영하니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러고보니 정말 스크린에서 그가 양복 입은 모습을 못 본 것 같다. 그렇다고 양복을 입는 것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만, "영화에서 13년 만에 처음으로 양복을 입었다"며 씩 웃는 김수로의 얼굴을 보며 이번 영화는 여러 가지 점에서 그에게 남다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26일 저녁 압구정동 CGV. 11월2일 개봉하는 코믹 스릴러 '잔혹한 출근'(감독 김태윤, 제작 게이트픽쳐스)의 제작보고회에서 만난 김수로는 언제나처럼 유쾌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뭔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여유만만하게 또 솜씨 있게 청중을 리드하긴 했지만 이전에는 감지되지 않았던 미세한 긴장감이 포착됐다. 그것은 영화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번 영화는 정말 특별합니다. 지금까지 모든 작품을 다 열심히 했고 좋아했지만 이번 작품은 남달라요. 소재 자체가 특이한 데다, 코미디면서도 메시지가 강하고 묵직하다는 점, 그리고 제 캐릭터까지 모든 점에서 제 최고의 영화가 나온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자신 있습니다."

'자신 있다'고 말하면서 긴장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그만큼 그 '자신'이 순수하기 때문일 터. 어떤 과욕이나 허풍이 아니라 실제로 자기가 생각했을 때 의미 있는 작업을 했고, 작품 역시 그렇게 나왔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떨리는 것이다. 좋은 작품인 만큼 관객에게 제대로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 포복절도 코미디를 찍고 흥행을 낙관하는 상황과는 차원이 다르다.

"솔직히 500만 명 정도 들었으면 좋겠어요. 작품에 대해서는 자신 있으니까요. 제가 출연한 영화 중 가장 재미있고 애착이 가는 영화입니다. 촬영하러 가는 '출근 길'이 제목과는 정반대로 '행복한 출근'이었으니까요. 다행히 추석에 한바탕 회오리가 지나간 후 개봉하니 경쟁이 심하지 않을 것 같은데…. 좀 도와주세요(웃음)."

'잔혹한 출근'은 사채 빚에 쪼들려 여고생을 유괴한 한 샐러리맨이 같은 날 자신의 딸을 유괴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귀가 솔깃한 기막힌 소재. 관건은 드라마의 전개가 어떻게 이뤄졌는냐는 것인데, 일단 김수로를 중심으로 이선균, 오광록, 김병옥, 고은아 등 출연진의 면면이 신뢰를 주니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상승 중이다.

"이상하게 그동안은 비정상적인 인물로만 캐스팅 제안이 들어오더라구요. 뭐 덕분에 재미있었지만요. 사실 제일 연기하기 싫었던 캐릭터가 샐러리맨이었어요. 그런데 이번 캐릭터는 독특한 샐러리맨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항상 지저분하게 입다가 양복 입고 촬영하니 기분이 좋더라구요. 모양도 나는 것 같고…(웃음)."

이날 공개된 '잔혹한 출근'의 홍보 영상을 보면 김수로의 연기는 여전히 관객을 웃긴다. 그러나 이전과 같은 코미디는 분명 아니다. 김수로식 코믹 연기가 변주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캐릭터에서 현실감 뚝뚝 묻어나는 절박함이 밑받침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변신'에 대한 욕심을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야 뭐 코믹한 연기를 안 하면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들지요. 그런데 의아해하시겠지만 제게 들어오는 시나리오 10편 중 5편은 멜로 등 다양한 장르입니다. 하지만 역시나 코미디가 가장 제 몸에 맞는 옷이라는 생각에 그런 작품들 위주로 선택해왔어요. 이번 작품 역시 코미디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약간 다릅니다. 변주가 있죠. 제가 연극했을 때의 색깔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참 희한한 게 연극 시절에는 코미디라고는 장진 감독의 '택시 드리벌' 딱 한편 했는데 영화에서는 계속 코미디만 하게 되네요. 언젠가는 저도 바뀌겠죠. 아직 숨겨둔 것이 많으니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꺼내보이겠습니다."

김수로는 최근 들어 할리우드 스타 짐 캐리와 종종 비교된다.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코믹 연기의 달인이면서 동시에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는 점에서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좋아하는 배우죠. 사실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로버트 드니로나 알 파치노 같은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코미디를 하면서 짐 캐리가 되야겠다고 생각했죠(웃음). 그게 제가 살아가는 전략입니다. 올 초 강제규 감독님과 미국에 갔을 때 애덤 샌들러를 만날 일이 있었어요. 그때 누가 저를 '한국의 애덤 샌들러'라고 소개하시길래, 속으로 '짐 캐리인데…'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렇다면 그는 실제로도 유쾌한 사람일까.

동료 배우 이선균은 "수로 형은 현장에 유쾌한 기운을 강하게 불어넣는 배우다. 그 기운이 상대 배우에게 전이돼 시너지 효과가 난다"고 말했다.

또 선배 배우 김병옥은 "수로가 워낙 성실하니 다들 동참하게 된다. 사실 다른 영화 촬영장을 가면 주연 배우가 오는 것은 두려워한다. 주연 배우는 아무래도 현장에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런데 수로가 주연인 현장은 수로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왜냐. 그가 오면 모두가 유쾌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화를 즐겁게 촬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달마야 놀자' 'S 다이어리' '간 큰 가족' '흡혈형사 나도열' 등을 통해 관객에게 영화 보는 즐거움을 안겨준 김수로. 그의 변주 역시 즐겁게 기다려진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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