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톤 거장 레나토 브루손

"스카르피아 역은 그 역할을 맡는 배우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흥미롭고 개성적인 배역입니다. 이 역할을 서울 무대에서 선보이게 돼 기쁩니다."

'전설적인 바리톤 거장' 레나토 브루손(70)이 한국을 찾는다. 국내 대표적 민간 오페라단인 한국오페라단(단장 박기현)이 11월9-1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에서 경시총감인 '스카르피아' 역을 맡는 것.

이번 공연은 1900년 1월14일 푸치니가 직접 연출을 맡아 초연했던 도시인 로마의 프로덕션이 직접 내한해 초연 당시 작품 그대로 재연하는 '오리지널 토스카'다.

브루손은 11월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인 리사이틀도 열어 그를 기다렸던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줄 예정이다. 그는 지난해 한국의 국립오페라단이 제작하는 '나부코'에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사정상 내한하지 못했다.

이탈리아 그란체에서 태어난 그는 1961년 스폴레토 음악제에서 '일 토레바토레'의 '루나 백작' 역으로 데뷔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보다는 내면으로 침잠하는 깊은 음색이 특징.

그의 방한을 앞두고 이메일로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브루손과 일문일답.

--한국팬들은 지난해 '나부코' 공연으로 당신을 만나기를 희망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는 소감은.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경시총감 '스카르피아' 역과 같이 그 역할을 맡는 배우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흥미롭고 개성적인 배역으로 서울 무대에 서게돼 기쁘다.

--이번 서울 공연에서 보여줄 '스카르피아'는 어떤 모습인가. 사악함을 강조할 것인지, 아니면 매끄럽고 세련된 모사꾼으로 표현할 것인지 팬들은 궁금해하고 있다.

▲내가 선보일 스카르피아는 극악무도한 이중성을 지닌 사악함도 갖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매끄럽고 세련된, 냉소적인 성격이 강조될 것이다.

--지난해에는 고령으로 인한 건강상의 이유로 내한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 해외 무대에서 어떤 공연들을 했는가.

▲올해는 일본에서 특히 공연을 많이 가졌다. 총 네 번에 걸쳐 각각 다른 작품을 일본에서 선보였다. 이밖에 취리히와 빈, 로스앤젤레스에서도 공연했다.

--오페라 연출가로서도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오페라를 연출한 경험이 당신의 무대 연기에도 도움이 되는가.

▲솔직히 오페라 연출가로서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성악가로서 경험과 오페라 연출 작업 두 가지 모두가 무대 연기에 도움을 준다고 본다.

--이제까지 대개 고전적인 방식으로 연출된 무대에서 연기해왔다. 작품의 역사성을 전복하는 현대적인 오페라 연출에 대한 견해는 어떠한가. 그런 연출가들과 함께 작업할 때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가.

▲한 작곡가가 오페라를 구상할 때, 그 작품에 신빙성을 최대한 부여하는 시대적 배경을 설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현대적인 오페라 연출은 허락하되 역사성을 전복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신빙성도 일관성도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무대 위에 올려지게 된다.

--지금까지 오페라에서 가장 좋아한 배역은 어떤 역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선호하는 배역은 그 당시 몰두하고 있는 배역이다. 하지만 아버지 역이나 역사극의 인물 연기를 상대적으로 좋아하는 편이다.

--바리톤 배역 중 당신이 한 번도 맡지 않은 역 가운데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는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보리스 고두노프'(무소르크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나 '보체크'(알반 베르크의 '보체크')역을 맡아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까지 맡아온 배역들에도 충분히 만족한다.

--올해로 데뷔 45년이 된다.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배역은 무엇인가. 또 언제까지 무대에 설 예정인가.

▲그동안 맡아온 배역들 모두가 멋지게 기억되는 만큼, 그 중 몇 가지만을 고르는 것은 잘못된 일인 듯 싶다. 내 긴 성악 활동기간을 장식했던 모든 배역들을 동등하게 꼽고 싶다. 45년 간 활동 후 언제 무대에서 내려갈 것인지를 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적당한 시기가 왔을 때 스스로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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