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길 위의 미술/<8>폐기된 공간에서 공연·전시
딱, 2년 전이다. 강원도 원주의 법천사지 터를 찾았던 게. 문막읍에서 섬강을 지나 부론 방향으로 틀면 손곡리 이정표가 나온다. 한적한 시골 풍경의 상상이 그대로 재현된 듯 제 멋대로 자란 숲과 길이 이어지고, 고갯마루엔 앙증맞게 생긴 장승이 마중한다. 오래된 마을과 누런 들녘, 그리고 작은 실개천도 흐른다. 나는 단 몇 시간 만에 고속도로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홀린 듯이 이곳에 선 듯 했다. 그곳에 ‘또랑광대’로 살아가는 광대패 ‘모두골’이 살고 있다. 전국의 예술창작촌을 찾아 떠돌다 ‘모두골’ 얘기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간 것이다.
2001년, 손곡1리 주민들이 새농촌건설운동 차원에서 기획한 손곡거리축제에 모두골이 함께 했다. 이때 인연을 계기로 폐교를 얻어 입주했다가 법천사지 터의 버섯농장 가건물에 안착한 것이다. 이들은 때때로 마을 경조사에 참여해 광대놀음을 펼치거나 명절 대잔치의 한 귀퉁이에서 흥 돋구는 일을 자청했다. 단원은 5명, 마당극을 하는 연희집단으로 소리와 굿, 춤, 풍물을 중심에 둔다. 그러니 마을 공동체에서 활동하기엔 제격이요, 안성맞춤이다. 더 필요하면 객원을 쓸 뿐이다.
이바우 대표가 특별한 공간 하나를 소개하겠다며 안내했다. 손곡1리 신작로 입구에 있는 마을창고(농협창고)였다. 바로 얼마 전까지 벼 수매를 위해 사용된 공간으로 50평이 될까 하는, 흔히 시골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창고이다. 2003년부터 ‘남한강 풍류 난장굿’을 만들어 펼치는데, 마을 주민들이 공연장소로 써 보라며 이 곳을 내주어 공연을 했단다.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뜨거웠다. 사실, 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천장의 목재 트러스트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통풍을 위해 벽 하단에 구멍을 뚫어 놓은 모습이 색다른 공간체험을 갖게 한다. 이 대표는 이 공간을 주말공연장으로 쓸 예정이라 했다.
“공연을 해보니 참 좋은 공간이다 싶어요. 마을 어귀 도로변에 있어 누구나 찾기 쉽고, 천장이 높아 시원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용도폐기된 공간이었는데, 공연장으로 되살아나니 주민들도 좋아하고 저희로서도 주말을 이용해 상설공연을 할 수 있어 너무나 만족스럽습니다. 창고 주변에 주차장만 확보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평택 대추리에도 마을창고가 있다. 올 한 해 동안 ‘조국의 산하전’ ‘땅의 기억전’과 같은 굵직한 기획전시가 열렸고, 그 사이에도 늘 미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입구 벽과 길옆 벽면은 ‘지킴이’ 상징의 벽화가 숭엄한 자태로 길손을 안내한다.
화성의 창문아트센터(구 창문초등학교)에 입주한 작가들이 그린 창고 벽화는 지역 공동체의 생활(生活)을 달군다. 그것은 그야말로 생의 활력이다. 창고가 예술 씨알의 공장(factory)으로 탈바꿈 되는 것이야 말로 공공성, 공론장이 되는 현재적 사례이다./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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