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컬트영화? NO, 휴머니티? YES"

아직은 '신인 배우'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지만 하정우는 1년 만에 훌쩍 컸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로 단숨에 영화계의 시선을 끈 그는 1년 동안 잇달아 세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착실히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출연작도 독특하다. 한ㆍ미 합작 영화인 김진아 감독의 '네버 포에버(NEVER FOREVER)'와 김기덕 감독의 '시간'에 이어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뮤지컬 영화 '구미호 가족'(감독 이형곤, 제작 MK픽처스)에 출연했다.

'시간'에서 그는 한 여자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여자에 눈길을 주는 보편적인 남자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표현했다는 평을 들었다.

7월 초부터 8월 중순까지 약 6주 동안 미국에 머물며 촬영한 '네버 포에버'에서 그는 백인여자에게 정자를 기증하려다 그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불법체류자를 연기했다. 답답한 상황에서도 결코 수동적이지 않은 인물을 통해 소외된 자의 고통을 그려냈다. 이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여배우는 할리우드에서 한창 주가가 오르고 있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무간도' 리메이크작 '디파티드(The Departed)'에 출연 중인 베라 파미가.

"대학 시절 어학 연수를 다녀와 의사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디테일한 감정 표현은 쉽지 않았죠. 니콜 키드먼을 담당했다는 다이얼로그 코치가 붙어 영어 대사를 소화하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네버 포에버'는 내년 1, 2월 개봉을 예정하고 있다. 지금 당장 그의 눈앞에는 '구미호 가족' 개봉이 기다리고 있다. 28일 개봉해 추석 시즌 관객과 만날 '구미호 가족'은 완전한 뮤지컬 영화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영화 속에 총 8곡의 노래(엔딩곡 포함 9곡)와 춤이 등장하는 작품. 아직까지 한국 영화의 미답 영역으로 여겨지는 뮤지컬 영화의 성공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시험대가 될 듯하다.

괴기한 분위기의 미술과 소품, 서커스장이 배경인 다소 음침한 분위기, 그리고 무엇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배우들의 조합까지. 영화는 컬트적 냄새를 물씬 풍긴다.

"우리 영화를 컬트적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으신데,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간보다도 굉장히 인간다운 가족애가 있고, 무미건조한 가족 구성원간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시나리오를 '순풍 산부인과'를 쓴 전현진 작가가 썼어요. 일단 재미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 웃음이 '순풍 산부인과'처럼 단순한 웃음만은 아닙니다."

하정우는 영화에서 솔로곡과 엔딩곡, 합창 등 4곡을 부른다. "제가 저음은 꽤 되거든요"라고 말해 "그럼 '고음불가'냐"고 묻자 "고음도 안되는 건 아니다"고 답한다. 그럼 잘 부른다는 말? 결국 자화자찬.

그가 맡은 아들 역은 간에 대한 집착이 누구보다도 강해 간에 관한 한 박사급의 지식을 갖고 있다. 아버지와 별일 아닌 걸로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는 그의 모습에서 친구 같은 부자 관계를 볼 수 있다.

"'내가 할 게 많겠구나'라는, 배우로서 욕심이 들었어요. 너무 해학적이거나 풍자적이지 않으면서 내용은 독특하고, 표현은 단순하죠. 컬트적 환경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촬영장 분위기도 좋았죠. 주현 선배님이나 박준규 선배는 오랜만에 친척을 다시 만난 느낌이었어요. 두 분 다 아버지(김용건)랑 친해 어려서부터 봐왔던 분들입니다. 박시연 씨는 처음엔 서먹했는데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얼마 전 제작보고회에서 주현 선배님이 며느리 삼고 싶으시다고 했잖아요. 그 말이 모든 걸 표현해 줄 만큼 좋은 느낌을 갖게 됐어요."

두 달 동안 군산에서 촬영하는 동안 주현, 박준규, 하정우는 촬영뿐 아니라 틈나는 대로 여자 이야기 같은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고 끝나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곤 했다.

춤과 노래가 어렵지는 않았을까.

"기술적으로 노래를 잘 부른다기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듯한 느낌으로 진실하게 불러야 한다고 해 그리 애를 먹지는 않았습니다. 감독님도 음악을 했던 분이셔서 그런지 감독님과 음악감독님이 자연스럽게 노래 부를 수 있도록 유도해주셨습니다. 대신 춤은 연습을 많이 했어요. 잘 추는 춤이 아니지만 연기의 한 동작 같은, 그러나 정확한 안무에 의한 춤이었죠."

아직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꾸준히 성장해 가는 그를 눈여겨 지켜보는 이들이 많다. 감독의 대학 졸업작품으로 인디영화나 다름없던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시작해 독특한 작품을 선택하는 하정우의 미래가 기대되는 것.

"상업영화의 틀, 즉 시스템 안으로 들어온 건데 책임감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를 했을 때도, 연극을 했을 때도 내가 수행해야 하는 역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은 변한 게 없어요. 주변에서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걸 느끼는 건 오히려 제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네요."

올해도 그는 부산영화제를 찾는다. 각국의 유망배우들을 소개하는 '캐스팅 보드'에 선택됐기 때문.

"부산영화제가 저를 2년간은 책임져 주려는 것 같아요. 하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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