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스타' 주역 사인방 왁자지껄 토크-1

모든 대화의 뒤에 박장대소의 웃음이 붙어 있다고 생각해도 된다. 그래서 일부러 생략했다. 그렇다고 가벼운 농담으로만 일관한 것은 결코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정말 아끼고 존중하기 때문에 이런 대화가 가능했다. 웃고 떠드는 속에 할 말은 다했다.

7일 시사회에서 공개된 뒤 평단의 극찬을 받고 있는 영화 '라디오 스타'(제작 영화사 아침ㆍ씨네월드)의 주역 사인방이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왕의 남자'에 이어 또다시 영화계를 놀라게 한 이준익 감독과 제작사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 그리고 주연배우 안성기와 박중훈. 이들을 시사회 다음날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사회 전부터 자신들의 영화를 보고 "13번 울었다"는 등 밉지 않은 '주책'을 부렸던 이들이 '라디오 스타'와 나눴던 행복한 시간을 들어봤다. 중구난방 얘기가 튀어나와 왁자지껄한 한편의 소동극을 보는 것 같았지만 무척 부러웠다. 각자 영화 인생에 의미 있는 방점을 찍은 네 사람의 행복한 대화를 소개한다(편의상 네 사람의 성을 따서 대화를 게재했다).

--우리가 알던 이준익 감독이 아닌 것 같다. 진짜 이 영화를 만든 게 맞나.

▲정 = (이 감독을 향해) 원래 세 번 정도는 운으로 잘 만들 수 있다. 그 다음부터는 실력인데 다음에 실력이 들통날지도 모른다. '황산벌' '왕의 남자'에 이어 '라디오 스타'까지, 이제 다 써먹었다.

▲이 = (인정한다는 듯 고개 숙이면서도) 인생은 '운생운사(運生運死)'다. 실력보다 운이다. 실력 좋은 놈이랑 운 좋은 놈이랑 싸우면 누가 이기는가. 당연히 운 좋은 놈이다.

▲정 = 아니 그럼, 그 전 10년 동안은 왜 그렇게 운이 없었을까? 솔직히 이 영화, '왕의 남자' 찍는 동안 우리가 다 밥상 차렸고 감독님은 숟가락만 든 것이다('라디오 스타'는 이 감독이 '왕의 남자' 찍는 동안 정 대표와 최석환 작가가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배우를 캐스팅했다. 정 대표와 이 감독은 씨네월드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 지금도 사무실을 같이 쓴다).

▲이 = 인정한다니까, 난 원래 그런 사람이다.

▲정 = 그런데 그런 말을 진지하게 얘기해야지. 그렇게 웃으면서 얘기하면 마치 겸손한 태도인 것 같지 않나. 진지하게 인정해야 한다.

--자자, 싸움들 그만 하시고 다른 얘기하자. 극중 흐르는 신중현의 '미인'과 조용필의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는 이보다 더 좋은 선곡이 없어 보인다. 어떻게 선곡해 사용하게 됐나.

▲정 =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선곡했다. 신중현 선생님에게는 아침 일찍 감독님, 최 작가, 내가 함께 댁으로 찾아가 허락을 구했고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극중 그 노래를 부르는 안성기 씨의 모습, 너무 귀엽지 않나? 그의 주름에 빠져 헤엄치고 싶다.

▲이 = 시사회날 선생님과 통화했는데 영화 보러 오신다고 하더라. 조용필 씨는 안성기 선배와 중학교 동창 아닌가. '성기야' '용필아' 하고 부르는 사이. 그래서 쉽게 풀렸다. 시사회에 오고 싶어하셨는데 콘서트와 겹쳐 안타까워하셨다.

--두 배우의 표정이 평소와 달라 보인다. 약간 달뜬 것 같다고나 할까.

▲박 = 맞다. 오랜만에 그런 것을 느꼈다. 정말 기분 좋았다. 하지만 내가 20대도 아니고 너무 감정을 드러내면 안되지 않을까 고민이다.

--박중훈 씨는 '황산벌'에 이어 두번째로 이 감독님과 작업했지만 안성기 씨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감독님이 이런 캐릭터인지 예전에는 몰랐을 것 같다.

▲안 = 그렇다. 나처럼 조용하고 순둥이인 사람이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 = 아유, 무슨 소리인가. (선배도) 못지않다.

▲박 = 난 내가 과묵한 사람인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둘이 이렇게 떠드니 난 조용히 있었다.

--안성기 씨는 이번 영화를 하면서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받은 것 같다.

▲안 = 그럼, 그런 것 있다. 한마디로 신났다. 촬영 가는 게 그렇게 기다려질 수 없었다. 배우에게 그런 느낌 이상의 것은 없는데, 이번 경우는 특히나 행복했다.

▲박 = (고개를 끄덕이며) 그건 진짜 히트('맞다'는 의미로 쓴 표현)다. 촬영날 아침에 가도 되는데 전날 밤에 가시곤 했다.

▲안 =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이야기 자체가 나쁘면 촬영장 분위기가 이렇기 힘들다. 그런데 '라디오스타'는 이야기 자체가 진짜 좋고 공감이 가니 정말 어쩔 줄 모르겠더라. 촬영이 기다려지고, 어떤 신을 찍을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간질간질해지는데…. 즐거움이 막 솟아났다. 재미있고 좋은 영화를 찍을 때는 그 과정이 소중하고 설레고 아끼고 싶어진다. 그런 느낌이 되게 오랜만이지?

▲박 = 형님은 그러셨어요?

▲안 = 넌 아예 생각이 안 나지?

▲박 = (한방 먹었다는 표정으로 웃겨 죽겠다며) 촬영 도중 형님이 너무 좋아하시면 "아니 올해 50년 된 영화인이 왜 그러세요?"라고 놀렸다. 그러면 "넌 몇 년이지?" 하시고, 내가 "21년이요"라면, "맞아, 21년 때가 제일 좋아" 그러셨다. 푸하하.

▲안 = 난 다섯살 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어.

▲박 = 이 영화는 모두가 다 주연배우다. 이 영화에서는 단역배우도 그 우주의 크기가 확대되지 않아서 그렇지 다 그들의 우주가 있다. 그런데…잊어버렸다. 우쒸….

▲안 = 듣고 있자니 네가 한참 옆으로 빠져나가더라. 중간에 도와주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가더라고.

▲이 = 두 사람은 슛 들어가도 저런다니까.

▲박 = 아! 생각났다. 우리 둘 주연배우 합해서 경력이 71년이다. 내가 이렇게 아기가 된 현장은 정말 오랜만이다. 원래 촬영장에서는 제일 선배가 제일 늦게 움직인다. 항상 제일 늦게 다녔는데 이번에는 항상 먼저 불려다녀서 굉장히 적응하기 힘들었다.

--극중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정말 살갑고 세밀하다. 매니저가 가수를 위해 자장면을 비벼주며 마지막에 젓가락으로 그릇을 한번 훑는 장면은 압권이다.

▲박 = 가요계가 영화계 옆동네 아닌가. 그런데다 내가 87년, 91년에 라디오 DJ를 했었기 때문에 잘 안다. 당시에는 방송 끝나고 PD가 부스를 나오면 모든 매니저가 복도에 쫙 대기하고 있었다. TV보다 라디오로 홍보하던 시대였지 않나. 그런 모습을 내가 생생하게 본 것 아닌가. 이 영화는 나에 대한 회고나 반성일 수도 있다. 나도 인기가 예전 같지 않고…. (이 대목에서 모두가 파안대소했다) 인기의 부침을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난 20대 때 참아본 경험이 없다. 인내라는 말이 체감이 안됐던 사람이다. 인내할 필요가 없는 권력자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위험하게 살았던 것인가. 그런 나로 인해 주위에서 얼마나 고통을 당했겠나. '라디오 스타'에는 그것에 대한 내 반성의 연기도 있다. 물론 반성하려고 이 영화를 계약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통해 사람을 배우고 사람을 통해 영화를 배운다'고, 이 영화를 통해 많이 배웠다.

▲이 = 안 선배께 뭘 배웠냐고 물어봐라. 영화하면서 노는 것만 배워가지고…. 허구한 날 바둑 두고 수다 떨고….

▲안 = 내가 원래 준비를 많이 하는 배우에 속한다. '한반도'에서 조재현이 NG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냈다고 했는데 나 역시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 많이 했다. 각 신마다 지갑에 대사를 붙여서 외우고 다녔다. 그에 앞서 촬영 전 한두 달 동안 대사를 중얼거리고 다니니까 소화하지 안 그러면 못한다. 특히 '한반도' 같은 영화는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생활이 묻어나는 영화 아닌가. 대사를 외우고 싶은데 반대로 그것을 참느라고 혼났다. 대본을 슬쩍 보다가도 '이건 아니지'하며 덮곤 했다. 정확하게 반대로 연기했던 영화다.

▲박 = 난 그 반대다. 평소에는 느낌만 준비하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라디오 DJ 아닌가. 말을 많이 하니까 이번처럼 준비 많이 한 적이 없다. 약간 과장하면 이 영화 전까지 읽은 시나리오보다 이 영화 한 편을 읽은 횟수가 더 많다.

▲안 =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억지로 참으며 준비를 안 했는데, 그러니까 평상시 말투가 많이 나왔다. 큰아들 다빈이가 영화를 보고 "아빠 모습이 제일 많이 나온 영화 같아"라고 하더라.

영월에서 촬영하면서 같은 숙소에서 자고 먹으니, 제작진이 MT에 온 듯이 서로 방문을 열어두고 오갔다. 그러면서 밤마다 바둑 두고 기타 치고…. 그런 분위기를 서울에서는 도저히 가질 수가 없다. 괜히 이방저방 왔다갔다 했는데 그러면서 나눈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 영화에 녹여졌다. 그러다보니 자장면 설정에도 삶에 무게, 두께, 때가 묻어나는 것이다.

▲이 = 중훈씨는 군고구마를 구웠다.

▲박 = 어떤 날은 그런 내 모습이 참 한심하기도 했다.

▲안 = 맞다. 중훈이가 군고구마 굽는 기계를 가져와 밤마다 구워먹었다.

▲정 = 서울에 있다가 가끔 촬영장에 내려가면 거기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웃겼다. 완전히 영월 주민이다. 숙소로 삼은 모텔은 마치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고….

▲안 = 우리 셋(안성기, 박중훈, 이준익)이 한 사람을 '죽이면서' 노는 것도 재미있었다. 다른 현장에서는 그러기가 쉽지가 않은데, 우리는 셋이 연배가 비슷하니까 서로 놀리며 놀 수가 있었다. 물론 중훈이는 약간 처지지만…. 누가 한 사람을 흉보면 협공해서 같이 흉보며 놀았다.

"이보다 더 행복한 촬영현장은 없었습니다"

안성기ㆍ박중훈, 이준익 감독, 정승혜 대표

▲박 = 이 영화가 이런 기능을 해줬으면 좋겠다. 왜 기성 관객을 만족시키는 영화가 없느냐고 묻는데, 그러면 영화계에서는 관객이 적극적으로 그런 영화의 표를 사주느냐고 반문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 같다. 그래서 '라디오 스타'를 계기로 30~40대, 40~50대도 먼저 예매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영화가 많이 나오길 바란다.

우리 두 주연배우의 티켓 파워가 떨어진다고 배급사에서 걱정했다고 하는데, 그런 인기도 젊은 관객 기준으로 볼 때 어필을 덜한다는 것이지 중장년 관객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성기 형이랑 어떤 한 젊은 배우랑 인기 투표를 하면 영화를 본다는 10대, 20대층에게는 그 젊은 배우의 인기가 높게 나오겠지만 전 국민을 상대로 인기 투표를 한다면 성기 형이 더 나오지 않겠나.

▲안 = 오늘 그와 관련해 무슨 기사가 난 것 같은데…. 뭐였더라.

▲박 = 제 말에 집중 좀 해주세요. 이 영화를 계기로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같은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노배우가 주연으로 나와도 여러 사람을 따뜻하게 만들고, 흥행도 성공하는.

▲안 = 문성근 씨가 예전에 "좋은 영화는 좋은 관객이 만든다"고 했던 말, 그게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 누구 아이디어예요?

▲정 = '왕의 남자'의 최석환 작가가 시놉시스 한 장 만들었는데 여기서 '팽' 당하고 저기서 '팽' 당한 후 내게 들고왔다. 사실 나도 '된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문제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배우가 딱 맞으면 된다. 박중훈뿐인데 그가 하겠다면 하고 아니면 못한다"고 말했다.

▲박 = 시놉시스를 받았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근데 당시 할 작품이 없었다. 이거라도 개발해서 해야지 싶었다. 농담이고, 뭔가를 느꼈지.

▲정 = 처음에는 PD랑 로맨스도 있는 좀 다른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때 참 우연히도 내가 아는 오래된 매니저 아저씨한테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과거 잘나가던 스크린 스타들의 매니저였는데, 실컷 통화를 하다 마지막에 "그런데 A씨 어디 들어갈 영화 없나?"라고 한마디 붙이는 것이었다. 지금 A씨 일을 보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해주는 것이었다. 그 말이 가슴에 팍 와닿았다. 그런 사람 하나 옆에 있으면 굉장히 따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얘기를 중훈 씨와 하면서 매니저 역으로는 동시에 안 선배님을 말했다. 솔직히 난 안 선배님 캐스팅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해 말하기를 주저했는데, 중훈 씨가 "성기 형이 하면 좋겠네"라고 말해 통했다.

▲박 = 내가 한 1초 빨랐다. 솔직히 처음에는 확신을 못했다. 그런데 정 대표가 워낙 능력 있는 사람 아닌가. 나한테 '용비어천가'를 읊더라. 내가 "10대에게는 귀여운 막내삼촌이요, 20대에는 다정한 형, 30~40대에게는 친구요, 50대에게는 늠름한 동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세대 관객이 공감을 한다는 것인데, 내가 그 얘기에 홀렸다. 이 안에서 막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데, 그동안 내 인생은 예고편이었구나 싶었다. 이제부터가 본편이구나. '황산벌' 한 이유도 아나? 당시 미국 활동 한창 준비 중인데, 정 대표가 "미국 활동 좋다. 그런데 미국에서 활동하려면 1인2역을 해야 한다. 한국 활동도 중요하다는 얘기다"라고 했다. 그 한마디가 가슴에 확 와 꽂혔다.

--안성기 씨는 어떤 점 때문에 이 영화를 택했나. 혹시 선택하는 과정에서 감독이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나.

▲안 = 워낙 남자들 둘 이야기를 상당히 좋아한다. 그런 얘기라면, 타당성이 있고 좋기만 하다면 선택하는 편인데, 중훈이한테 얘기를 들었을 때 재미있었다. 짧은 얘기를 들었을 뿐인데 그 안에 뭐가 있더라. 거기다 중훈이랑 같이 하면 좋지.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선택할 때 원칙이 첫번째가 시나리오이고 그 다음이 연출자이기 때문에 문제없었다.

▲박 = 난 처음부터 이 감독님이 연출했으면 하고 바랐다.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이 감성을 아는 연령의 감독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하신다고 해서 굉장히 감사했다.

▲안 = 웃기는 게, 이 감독은 현장에서 무조건 "OK"다. "한번 더"가 없다. 그래서 되레 배우들이 불안한 거라. 수근대다가 누가 나서서 "한번만 더 하자"고 하면 "그래? 그럼 해"라며 다시 찍었다. 그러니 이 영화를 "공짜로 먹었다"고 하지.

▲박 = '황산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영화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촬영기간 9개월에 제작비는 100억원이 넘었을 영화다. 내가 지금껏 미국ㆍ호주 등 5개국과 작업해봤는데 가장 선진화된 제작 현장이 '라디오 스타'다. 공동 2등은 '찰리의 진실'과 '황산벌'이다. '황산벌'은 지금 생각해도 기적과 비슷하다. 이번에도 우리가 "한번 더 찍죠"라고 하면 감독님은 "에이, 좋은데 뭘 찍어"라고 했다. 그래도 우리가 우겨서 다시 찍으면 "두번째가 더 좋네"라는 거다. 아니 그럼 한번 더 안 찍었으면 어쨌을 뻔했느냐는 말이다. 저렇게 무책임한 감독이 어디 있냐고.

▲이 = 그것도 감독의 능력이라는 것을 모르는 말씀.

▲정 = 덕분에 이 영화 예산이 31억이었는데 28억 원에 찍었다.

▲박 = 이 감독님은 "감독은 배우를 놀이터에 데려다주고 놀이터 밖으로만 안 나가게 하면 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배우가 그 안에서 그네를 타거나 미끄럼틀을 타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어떤 모순이 있느냐면 배우가 미끄럼틀에서 떨어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안전하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안 = 게다가 자기가 찍은 것을 보고 자기가 좋아서 난리 치는 감독은 이 감독밖에 없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이 영화를 보고 제일 반가운 것이 안성기, 박중훈이라는 두 배우가 결코 죽지 않았더라는 것이다. 생생하게 살아 있더라.

▲박 = 자동차는 터널에서도 달리고 있다. 쭉 달리고 있는 것이다. 어디 가도 나만 바라보는 상황에 있다가 어느 순간 밀리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내가 치이는 것인가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은 배우를 평생하겠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맑은 날만 있으면 땅은 사막이 된다. 비도 오고, 천둥도 치고 그래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너무 기뻐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안 = 뭐, 맑은 날? 하여간 비유는….

▲박 = 우리 팀끼리 있으면 내가 '벤허'라도 찍은 것 같다. "오, 하나님! 진정 내가 이 영화를 만들었나요"라고 하늘에 묻고 싶은 심정이다.

▲정 = 내가 폭로하는데, 두 배우 다 시사회를 너무 기다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으니까 . 이 영화가 가진 정서를 말로는 전하지 못하니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배우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역할이 정말 좋아서 평상시에도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며 뿌듯했다. 우리가 찍을 때 행복했던 게 모두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박 = 극중 안 선배님이 연기한 매니저는 일정 수준 이상의 연기자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 배우나 그 느낌을 내지는 못한다. 선배님의 연기를 보며 '저건 대단한 내공'이라고 느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으면 가질 수 없는 느낌이다. 이번 영화를 통해 또 하나 확신한 게, 영화는 감독의 생각을 안 보여줄 수 없고 배우의 얼굴은 그 배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안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최곤의 맑은 영혼이 어찌 연기겠느냐 이거다. 난 무슨 다큐멘터리 찍는 줄 알았다. 하하.

▲안 = 얘기가 그렇게 끝날 줄 알았어. 애는 꼭 지 얘기 중요한 것 할 때 날 살짝 끼워넣더라구.

▲이 = 난 저 정도 중증은 아니야.

▲안 = 우리가 너무 행복하게 작업해서 중간중간 혹시 우리끼리만 그러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다. 반응이 좋아 무척 다행이다. '챔프' 같은 영화를 보면 목이 뻣뻣해지면서 어쩌지 못하겠는 게 아주 죽겠다. 이 영화는 그러면서 마지막에 눈물이 한줄기 흐르더라.

▲박 = 형님은 그랬어요? 난 목이 뻣뻣해지면서 동시에 눈물이 흐르던데….

▲정 = 얘기를 끝내야겠다. 도무지 말릴 수가 없다.

이들 네 명과의 '자화자찬' 대화를 지켜보며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나는 단어는 '행복'이었다. 만든 이들이 이처럼 행복감에 취해 만든 영화가 보는 이들에게 얼마만큼의 행복감을 안겨줄지, 이처럼 기대되는 작품도 만나기 힘들 것 같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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