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멜로 대신 풍자 택했는데 괜찮나요?"

김정은이 다시 살아날 전망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실례가 될 수도 있겠다. 언제 그녀가 풀 죽어 있었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테니. 하지만 영화 '사랑니'와 드라마 '루루공주' 등을 거치는 지난 1년여의 기간은 분명 그녀의 "부자 되세요~"가 메아리치던 때와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6일 공개된 영화 '잘살아보세'(감독 안진우, 제작 굿플레이어)는 김정은이라는 배우를 다시 주목하게 했다. "잘살아보세"가 "부자 되세요"보다 업그레이드된, 웰빙의 의미가 보태진 것처럼 김정은 역시 같은 코미디이긴 하지만 확실히 업그레이드된 연기를 선보였다. 일회성 웃음을 걷어낸 자리에 인생의 깊이를 채워넣은 것. 마냥 귀엽기만 했던 김정은이 페이소스를 아는 '희극배우'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어차피 똑같은 코미디를 한 것 아니냐고 하면 할 말 없어요. 하지만 제 나름대로는 기존의 똑같은 로맨틱 코미디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멜로가 없잖아요?(웃음) 대신에 사회 풍자가 있어서 이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이날 시사회를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정은은 영화에 대한 확실한 생각을 내보였다. 사실 '잘살아보세'의 포스터나 예고편만을 보면 그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 '가문의 영광' '내 남자의 로맨스' '불어라 봄바람' 등의 이미지와 겹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사회를 보고난 후 그의 말에 100% 동감하게 됐으니 배우로서 그의 선택은 성공한 것이다.

'잘살아보세'는 국가의 산아제한정책이 펼쳐지던 1972년을 배경으로 농촌마을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소동을 그린다. 그는 보건사회부 파견 가족계획 요원을 맡았고, 이범수가 그를 돕는 동네 이장으로 출연한다.

"시나리오를 단숨에 읽었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어요. 상황은 웃기지만 그 속에 정말 잘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힘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를 더 이상 낳지 않으면 국가가 빚을 탕감해준다는 말에 마을 사람들이 가족계획에 참여합니다. 덕분에 마을은 외관상으로 살림이 피는 것 같죠. 하지만 그것이 행복으로 연결되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것일까요."

김정은은 지난해 멜로영화 '사랑니'를 통해 변신을 시도했다. 자신의 전공인 코미디 장르를 탈피, 연기 영역을 확대한 것. 그러나 흥행에서는 참패했고, 평단의 반응 역시 엇갈렸다.

"연기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사랑니'는 제게 무척 소중한 영화입니다. 그처럼 장면마다 순도 높은 감정을 유지할 수 있는 영화는 앞으로도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또 감정을 세밀하게 파고든 연기도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그게 관객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나니 나 혼자만 행복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는 좋았는데 혹시 나 때문에, 내 기존의 이미지 때문에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는 데 방해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신인이었다면 오히려 관객과의 소통이 더 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죠."

그런 고민을 할 때 '잘살아보세'가 눈에 들어왔다. 영화를 본 현재, '잘살아보세'는 그의 변신에 대한 욕심과 코믹 연기 사이의 알맞은 타협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니' 같은 영화를 다시 하고 싶지만 제가 원래 갖고 있고, 사랑받는 이미지를 버릴 이유가 있을까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제 밝은 모습을 좋아하고 그로 인해 저 역시 행복한데 말이죠. 그래서 그것을 유지하되 그 안에서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자고 결심했습니다."

사실 '잘살아보세'의 촬영은 김정은 연기 인생 최악의 상황에서 진행됐다. 지방을 전전하는 로케이션 속에서 '루루공주'와 촬영이 겹쳤고, 그 속에서 '루루공주' 간접광고 논란도 있었다. 또 키워주신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등 여러가지 악재가 겹쳤다.

"하동에서 촬영할 때인데요, 모텔 창문을 여니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섬진강만이 펼쳐져 있더군요. 너무 힘들었을 때인데, 그 앞에서 한숨을 길게 쉬다가 다시 제 자신을 가다듬곤 했습니다. 굴하지 않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섬진강을 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군요.(웃음)"

그런 힘겨운 상황을 이겨낸 김정은의 힘은 연기로 이어졌다. 역시 연기는 경험과 아픔의 산물인 것. 그가 이번에 기존의 밝기만 한 웃음이 아니라 따뜻한, 나아가 가슴 뭉클한 웃음까지 전해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사연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올해 서른하나. 정상의 인기도 누려봤고 호된 실패도 겪어봤다. 이제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알고 자신을 돌아보는 눈도 생겼다. 김정은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이유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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