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가에 출몰한 엽기적인 주인공들

한국 상업영화계에 '엽기적인' 주인공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여자('달콤 살벌한 연인'), 혀가 짧아 말을 하지 않는 전문 킬러(영화 '예의 없는 것들'), 원조교제로 돈을 벌어 가정에 보탬에 되는 싶은 소녀(영화 '다세포 소녀') 등 그 동안 한국영화에서는 만나기 힘들었던 캐릭터들이 최근 관객의 시선을 끌고 있다.

독특한 캐릭터로 승부하는 이들 영화는 보편적인 주인공에 익숙한 관객에게 다소 낯선 작품들. 그러나 '소재 빈곤'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충무로의 고민과 새로운 것에 대한 관객의 갈증은 당분간 이 같은 캐릭터의 출현을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엽기적인 캐릭터 관객과 만나다

최근 개봉되거나 개봉을 앞둔 영화 중 엽기적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는 '다세포 소녀' '예의 없는 것들' '천하장사 마돈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등을 꼽을 수 있다.

채정택(필명 B급달궁)의 동명 인터넷 만화를 영화화한 '다세포 소녀'(감독 이재용, 제작 영화세상) 주인공은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김옥빈. 이후 가난소녀)다.

가난소녀는 교사와 학생이 모두 성(性)을 자유롭게 즐기는 무쓸모고교 재학생. 가난한 가정에 보탬이 되겠다면서 원조교제에 나서는 '착한(?)' 여학생이다. 거기에 가난소녀는 사람형상으로 제작된 '가난' 이라는 인형을 등에 업고 다닌다.

코믹느와르를 표방한 '예의 없는 것들'(감독 박철희, 제작 튜브픽쳐스)의 주인공 '킬라'는 전문 킬러. 선천적으로 짧은 혀를 타고나 발음을 제대로 못하는 그는 시쳇말로 '쪽팔려서' 말을 하지 않는 인물. 더운 여름에도 검은 가죽 옷만을 입고 다니고, 검은 선글라스는 필수품이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로 주목받은 류덕환의 첫 주연작 '천하장사 마돈나'(감독 이해영ㆍ이해준, 제작 싸이더스FNH)는 여자가 되고 싶은 남학생의 이야기. 주인공 오동구(류덕환)는 몸무게 83㎏, 발 사이즈 280㎜, 머리 둘레 62㎝ 등 여성의 신체조건과는 거리가 먼 고등학교 1학년생이다. 본인을 홍콩 여배우 장만위(張曼玉)와 닮았다고 믿는 그는 여성이 되는 수술을 받기 위해 씨름대회에서 우승하면 장학금 500만 원을 준다는 교내 씨름부에 입단한다.

12월 개봉 예정인 정지훈(비)ㆍ임수정 주연의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감독 박찬욱, 제작 모호필름)는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믿는 여자 영군(임수정)과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일순(정지훈)의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다.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믿는 여자도, 자신이 소멸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타인의 성격과 특기 등을 닥치는 대로 따라하는 남자도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현실과는 다른 시선과 엇갈린 반응

이들 영화는 윤리의식을 강요하거나 문제가 있는 시각으로 인물에 접근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영화 속에는 문제가 있는 인간이 아니다. 현실의 잣대는 영화 속에서 힘을 잃게 된다.

'다세포 소녀'의 가난소녀는 원조교제로 집안에 보탬이 되겠다는 여학생. 이에 대해 교사는 그녀를 '효녀'라고까지 칭한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여자가 되고 싶은 남학생 오동구에 대해 어머니는 "네 뜻을 존중한다"고 말한다. 여장(女裝)을 하고 클럽에서 노래부르는 동구를 어머니와 씨름부 선배 등이 응원하는 마지막 장면은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

'예의 없는 것들'의 전문 킬러 킬라는 살인에 대한 죄의식보다는 "세상의 예의 없는 것들을 처단한다"는 뚜렷한 룰(rule)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싸이보그라도 괜찮아'는 영군이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믿게 된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않는 채 그녀를 현실의 보통 인간으로 묘사한다.

이들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엇갈린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환호'와 '비난'의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

10일 개봉된 '다세포 소녀'는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함"이라는 평단의 호평과 더불어 소재에 대한 거부감과 스토리 중심이 아닌 캐릭터ㆍ에피소드 중심의 영화에 대해 "낯설고 이상하다"라는 평이 혼재했다.

24일 개봉 예정인 '예의 없는 것들' 역시 최근 기자시사회에서 엇갈린 반응을 얻었다. "킬라의 내레이션을 통한 코미디가 신선하다"는 반응과 "만들다만 B급 영화"라는 반응이 그것. 31일 개봉하는 '천하장사 마돈나'에 대한 반응 역시 이들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캐릭터로 승부하는 이들 영화가 관객의 호응으로 한국 상업영화의 새로운 장르로 정착할지 아니면 도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연합뉴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