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체임버홀이 476석 규모로 14일 개관했다. 세종문화회관 내 컨벤션홀을 리노베이션한 이 극장은 클래식 전용 실내악 콘서트홀로 운영된다.
이에 종래 비슷한 용도로 쓰던 세종문화회관 내 소극장은 향후 리노베이션을 거쳐 뮤지컬 연극 전용극장으로 차별화할 예정이다.
세종 체임버홀 오프닝 무대로 마련된 세종 솔로이스츠와 김지연의 실내악 앙상블 무대는 새로 태어난 콘서트홀의 음향을 점검하는 오디오 파일용으로 손색이 없었다.
이날 프로그램은 앞서 진행된 개관 행사가 지연된 까닭에 두 번째 곡으로 예정되었던 엘가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e단조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 즉, 비발디 협주곡 '알라 루스티카'와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Op.48로 구성됐다.
이들 레퍼토리는 소규모 실내악에서 오케스트라까지 확대할 수 있어 편성이 유동적인 작품으로, 세종 솔로이스츠를 열 댓 명으로 편성한 까닭은 세종 체임버홀 무대가 음향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최대치를 의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편곡한 피아졸라 작품은 반도네온 음색을 모방하기 위해 다양한 현악기 주법을 가미함으로써 홀 음향을 테스트하기에는 적격이라 할 수 있었다.
세종 체임버홀은 신생 콘서트홀답게 음향 면에서 대단히 예민한 반응을 보였는데, 특히 피아졸라 작품에서 그런 예민함이 더했다.
고음부는 물론 베이스와 첼로로 구성된 저음부는 울림이 매우 또렷하고 또 생동감이 넘쳤다.
각 현악 파트가 소리를 융화하지 못해 따로 날카롭게 들리는 경향도 없진 않았으나, 이런 현상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재개관 당시에도 발생했으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다.
다만 향후 당분간 이 무대에 설 연주가들은 사소한 음 실수 하나마저도 관객에게 공개적으로 노출되는 부담감을 감수해야 할 듯 싶다.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는 세종 솔로이스츠답게 이날 무대는 앙상블이라는 면에서는 매우 훌륭한 연주를 선보였다. 첫 곡으로 연주된 '알라 루스티카 협주곡'에서 단원들은 특별히 리더가 적극적으로 지시를 하지 않아도 음표 하나하나에 예정된 듯 반응했으며 각 파트별 음향 또한 균형이 뛰어났다.
이러한 밸런스와 완벽한 호흡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했다.
하지만 김지연이 리더로 참여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는 편곡 자체가 그리 세련되지 못했다. 음향 효과에만 지나치게 치중한 이 편곡은 그로 인해 원곡 자체가 갖는 음악 어법과 자유분방한 탱고의 묘미가 축소되어 오히려 경직되어버린 아쉬움이 있었다.
특히 피날레에 비발디의 '사계'를 차용한 시도는 기돈 크레머가 연주한 편곡 버전을 흉내 낸 듯 했으나, 그만큼 자연스럽지도, 또, 자유롭지도 않아 어설펐다.
역으로 말하자면, 데샤트니코프와 더불어 10여 년 간이나 피아졸라 음악에 몰입한 크레머의 연구와 작업이 훨씬 심도 있고 치밀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인터미션 이후 연주된 '현을 위한 세레나데'는 극단적 감상주의를 지양하고 담백한 서정을 추구하는 앙상블의 의도가 엿보였다. 투박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젊은이의 진취적인 낭만이 돋보였다.
세종 솔로이스츠 오프닝 공연을 필두로 하는 세종 체임버홀 개관 페스티벌은 프로그램이 매우 다부지고 짜임새가 훌륭하다. 실내악으로 구성 가능한 모든 편성과 장르를 실험하고 있으며 하나하나 프로그램 또한 내구력을 갖추고 있다.
여느 해에 비해 유독 볼 만한 공연이 뜸한 올해 8-9월에 세종 체임버홀의 등장은 클래식 공연계에 또 하나의 자극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누구나 지적하듯 우리 공연계는 언제나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쪽에서 문제를 노출됐다.
이미 비슷한 규모에 비슷한 용도의 공연장이 서울 각지에 넘칠 정도가 되었으나 그 대부분은 아직 주목받을 만큼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운영이 지지부진하다.
우리나라에서 실내악은 클래식 중에서도 여전히 대접받지 못하는 소외된 장르에 속하며, 특히나 세종 체임버홀의 경우 형태가 가장 유사한 공연장인 금호아트홀이 지척에 존재한다.
이러한 여러 난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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