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싹쓸이 논란…해법은 없는가?>

1천만 관객을 향해 질주하는 영화 '괴물'과 1만 관객 돌파를 자축하는 영화 '내 청춘에게 고함'. 한쪽은 620개 스크린에서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고, 한쪽은 전국 3개 관에서 조용히 찾는 이들을 기다렸다.

이는 한국영화계의 쓰라린 현실일 수도, 튼실한 체력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대규모 상업영화는 상업영화대로, 작은 영화는 작은 영화대로 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견 한국 영화의 다양성과 건강성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러나 "개봉관 수가 조금이라도 더 많았으면 훨씬 많은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내 청춘에게 고함' 제작사 측의 아쉬움에서 드러나듯 한국민의 '싹쓸이' 혹은 '남이 보(하)면 나도 본(한)다'는 습성은 문화계도 결코 벗어나기 힘든 벽이라는 사실 또한 입증한다.

영화 '시간' 개봉을 앞두고 세계 영화제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김기덕 감독은 "한국도 내 영화의 수출국일 뿐"이라며 "한국 사회에 내 영화가 어떤 의미가 있어도 개봉을 안할 것이며 부산영화제를 비롯한 국내 어떤 국제영화제에도 출품하지 않을 것"이라는 과격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배급 현실과 관객 반응에 대해 극단적인 발언을 한 까닭에 이 자체도 논란이 됐지만 해외영화제에서 선호되는 김기덕, 홍상수 감독 등의 영화가 한국 영화 시장에서 외면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괴물'의 1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영화계 안팎에서 '스크린 독점' 현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올 초 '왕의 남자'가 흥행했을 때는 전혀 뜻밖의 감독과 배우가, 전혀 뜻밖의 장르와 내용으로, 말 그대로 관객 입소문의 힙으로 350개 내외 중간 규모 스크린에서 장기 상영하며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수립해 진심으로 박수를 쳤다.

그런데 '괴물'은 부담감을 안고 있다. 최대 개봉 스크린수, 즉 스크린을 싹쓸이했다는 '원죄' 때문에 제작사조차도 찜찜한 기분이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가 끝난 뒤 '괴물'과 '한반도'를 피해가려는 충무로 자체 판단으로 인해 스크린에 걸 영화가 많지 않았다는 현실적 상황과 함께 '이 영화는 된다'고 판단한 극장주 측의 경제적 판단으로 야기됐지만 결과론적으로 스크린 싹쓸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올해 한미FTA 협상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단행된 스크린쿼터 축소로 큰 상처를 받았던 한국 영화계는 이제 대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스크린쿼터 원상 복귀'라는 목표는 여전히 변함없지만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의견 개진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엄밀히 말하면 스크린쿼터 축소 시행 이후 대안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논의돼온 영화계 현안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이너리티 쿼터 등 대안 마련 분주

영화인회의 이춘연 대표는 "느닷없는 스크린쿼터 축소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한국 영화계의 다양성과 건강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방안 논의에 집중했을 것"이라며 "올해 제작자, 극장, 노조 등 여러 관계자들이 더 나은 영화계를 위해 연구하고 토론해 방안을 마련하려 했는데 스크린쿼터 문제 때문에 쑥대밭이 됐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괴물'의 흥행을 두고 스크린쿼터 축소 혹은 폐지론자들이 '너네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접근해 '괴물' 흥행을 폄훼하려 하는데 이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분명히 '괴물' 역시 상영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관객과 만날 수 있었고, 재미있고 좋은 영화이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한 것"이라고 못박았다.

영화인회의를 중심으로 논의했던 부분은 마이너리티 쿼터, 프린트 벌수 제한, 극장 부율 문제, 스태프 처우 개선 등이다. 마이너리티 쿼터는 몇 개 이상의 스크린을 보유한 멀티플렉스 상영관은 인디영화 상영관을 마련하도록 한다든지 1년에 며칠 이상은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를 상영하도록 하는 제도다.

프린트 벌수 제한은 스크린에 걸 프린트 수 자체를 제한하자는 것. 물론 교차 상영 등의 편법이 가능하지만 아예 프린트 수를 제한하면 자연스럽게 스크린 수 제한이 따라오게 된다.

'괴물'의 봉준호 감독은 "1980년대까지 존재해오다가 미국 할리우드 영화를 직배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풀어줬던 제도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 시장을 잠식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다행히 관객의 사랑 덕분에 한국 영화가 성장해왔다. 그런데 한국의 영화인 스스로 영화의 다양성을 위해 규제를 하자고 제안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극장주와 배급사의 수익 배분 비율인 일명 부율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할 숙제이며,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진행중인 임금 및 단체 교섭도 결실을 내놓아야 한다.

◇쉽게 풀리지 않은 난제들

말은 쉽다. 또 말대로만 된다면 한국 영화계와 영화시장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여건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현실은 팍팍하다. 어느 분야나 그렇지만 영화계 역시 입장 차가 분명하다. 시장성 등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 대표 역시 "몇 년 전부터 논의해왔지만 잘 풀리지 않는 숙제"라는 표현을 했다.

이미 CJ CGV는 서울 강변과 상암점, 부산 서면점, 인천점에서 90석에서 178석에 이르는 인디관을 운영 중이다. 한국 독립영화를 위주로 메이저 제작사나 배급사가 아닌 작품, 국내 객석 수 1% 미만에 해당되는 작품, 조기 종영이나 개봉불가작 등을 상영 중이다.

CGV 측은 "인디관의 객석 점유율은 다른 상영관의 절반 이하 수준"이라며 "기회비용으로 따졌을 때 연간 손실액이 10억 원 이상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 당시 문화관광부가 예술영화전용관을 100개 관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을 때 독립영화협회는 오히려 "한미FTA를 용인하는 대가로 지원금을 받는다면 집단이기주의와 다름없다"며 반발했다.

또한 현실적으로 100개 관을 만든다 해도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만한 독립영화가 제작되지 못하고, 관객이 찾지 않는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이 대표는 "시스템 정비와 법제화 등을 통해 국가적 책임이 주어져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극장 부율 문제도 이견을 좁히기 쉽지 않다. 극장주와 배급사 및 제작사간의 이익 배분 문제 등 세 당사자들의 입장 차이가 워낙 달라 방법론에서 각자 다른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됐든 해결해야 할 문제다. "'괴물'이 십자가를 지더라도 여러 현안을 공론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봉준호 감독의 '소박한' 바람대로 '괴물'의 스크린 싹쓸이 논란이 더욱 발전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돼야 할 시점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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