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이 국내에서 예술영화 감독으로서의 비애를 토로하고 있는 와중에 해외에서는 그의 열혈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중 중국 미술가들도 다수를 차지하는데, 중국 출신 세계적 조각가 왕두(王度ㆍ50)가 김 감독의 '빈집' 포스터를 본뜬 조각을 만들어 현재 프랑스 퐁피두 예술문화센터에 전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김기덕 감독이 최근 왕두를 직접 만나면서 알려졌다. 왕두는 지난달 말부터 경기도 파주 예술마을 헤이리에서 열리고 있는 중국현대예술페스티벌 '허허실실'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했다가 김 감독을 만났다. 김 감독은 현재 헤이리에 살고 있다.
김 감독은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집앞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어 돌아보고 있다가 우연히 왕두와 만나게 됐다"고 밝혔다.
"누군가 제가 김기덕이라고 그들에게 소개를 하자 갑자기 반색을 하며 제 팬이라고 인사를 하더군요. 그중 왕두가 자기가 '빈집'을 감명 깊게 본 뒤 포스터를 본떠 조각을 만들었다고 말했고 그게 현재 퐁피두 센터에 전시돼 있다고 해 놀랐습니다."
이승연ㆍ재희 주연의 '빈집'은 2004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으로, 빈집을 돌며 생활하는 남자와 남편에게 학대당하며 사는 유부녀의 슬픈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왕두가 영감을 얻은 포스터에는 유부녀와 남편이 끌어안고 있는 뒤로 남자가 다가와 유부녀에게 키스하는 장면이다. 남자와 유부녀가 자신의 등 너머로 키스하고 있는 것을 남편은 모른다. 왕두는 이들 세 남녀의 가슴 위 모습을 포착해 흰색 조각상으로 만들었다.
김 감독은 "중국에서 어떻게 내 영화를 보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내 영화를 모두 다 봤다고 했으며 특히 왕두는 '빈집'이 무척 좋아 조각으로까지 만들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왕두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 투옥됐고 현재는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중국미술 1세대의 주요 작가. 이번 헤이리 전시에서는 북하우스 앞에 놓인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일이 그의 작품이다.
한편 7일 오후 '시간'의 시사회를 통해 1년여 만에 언론을 상대로 말문을 연 김기덕 감독은 기자회견 도중 "왜 그렇게 말을 아끼느냐"는 질문에 "현재 헤이리에서 중국현대미술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데 좋은 작품이 많다. 기회가 돼 가서 보시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말로 답변을 피해갔다.
27일까지 열리는 '허허실실'은 중국 작가 43명의 회화, 사진, 설치, 영상작품 15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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