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창작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

역사의 가설 ‘완벽하거나, 어색하거나’

정조가 꿈꾼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인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과 함께 피비린내 나는 정쟁을 종식시키려한 왕. 왕권 강화를 통해 아버지의 복원을 꿈꾸었던 계몽군주….

왜 우리는 지금 정조의 꿈을 노래하는가? 새로운 세상을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수원 화성을 쌓은 것이 과연 관객들에게 어떤 화두를 던져줄까. 경기도문화의전당이 지난 8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공연장에서 공연장 1~2층을 가득 메운 가운데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과 이를 건축한 정조대왕을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 그랜드 오픈 공연을 갖고 신비의 베일을 벗었다.

창작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는 두가지 가설에서 시작됐다. 실학자의 아내로 여성실용백과인 ‘규합총서’를 쓴 조선 최초의 여성 실학자 빙허각. 정조가 그녀를 만났다면 어떤 드라마가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가설과 개혁군주 정조의 미완의 꿈이 완성됐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설정이다. 기성세력의 봉건성과 혈연주의, 배타적 사고방식의 과감한 청산을 시도하다 결국 미완의 꿈으로 끝난 개혁군주의 꿈이 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로 되살아나 우리들에게 ‘꿈꾸고 만들어갈 세상’이 어떤 것인지 되새겨 보도록 하는 자리였다.

20대 초반 왕권을 이어받아 어떤 통치자로 남을 것인가 고뇌하던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찾아가던 길에서 빙허각과의 첫 만남, 왕이 된 뒤 궁에서 실학자가 된 여인 빙허각과의 재회, 수원 화성 천도의 원대한 꿈의 태동, 실학자의 권유로 저잣거리에서 이뤄진 정약용, 서유본 등 실학자들과의 만남, 화성축성과정의 위기와 백성에 대한 사랑,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님에 대한 효, 수원 화성 축성 완료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진찬례 거행을 통한 왕권의 완성, 죽음을 앞두고도 ‘역사의 승리자’임을 노래하는 정조의 삶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자리였다.

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에선 정조 주변 인물인 실학자들의 삶과 이상을 담았고 화성을 축조한 부역민들에 대한 임금의 사랑, 화성행궁에서 열린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은 도립무용단의 춤과 도립국악단에 의해 완벽하게 무대예술로 재현됐다. 극중 정조와 빙허각 이씨로 호흡을 맞춘 민영기와 조정은의 연기도 제9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남우신인상과 여우신인상을 수상한 경력에 걸맞게 뮤지컬 배우로서의 절정을 보여 줬다. 극중 정조와 빙허각 노래는 관객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고 코러스와 완벽한 조화를 이뤄 극의 의미를 더해 줬다. 180분동안 2막 10장의 뮤지컬이 끝나고 커튼콜이 이어지며 출연진과 스탭들이 소개될 때마다 객석 1~2층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환호성과 함께 감동적인 드라마를 열연한 출연진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공연을 본 후 아쉬운 점들이 눈에 띈다. 2막 7장 서유본의 집 정자에서 펼쳐진 정조와 빙허각 이씨간 사랑이야기 부분은 극 전개상 꼭 필요한 부분이었는지, 극 전개를 보면서 아무리 상상의 가정이라고 해도 빙허각 이씨와 정조의 만남, 사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임금과 사대부 아내의 사랑이 실학사상의 접목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어쩐지 무겁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조가 실학자의 집을 찾아 실학자의 아내와 사랑을 속삭인다는 설정, 정조와 빙허각 이씨가 “우리 사랑을 어디서 찾으리”를 열창하며 아내와 임금이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서유본이 “당신이 내 누나였으면”하고 자책하는 건 이번 뮤지컬이 가정으로 설정한 정조와 빙허각 이씨간의 판타지 러브를 너무 의식해 꿰어 맞추기식 의도가 숨어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된다. 이때문인지 한 남자(임금 정조)와 실학자의 아내(빙허각 이씨)와의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와닿지 않았다. 뮤지컬이 화성에 대한 역사적인 고증과 재현을 통해 수원과 화성을 알리는 등 화성 축조 당시 사용된 거중기 등을 소품으로 등장시켜 역사 교육의 의미도 있겠으나 7장 군신의 사랑에서 빙허각 이씨의 딸이 공부하는 장면에서는 소품으로 그림이 들어있는 잡지책이었던 것같아 한문 서책으로 공부하는 장면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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