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 절반 축소…. 아직 잘 실감이 안돼요. 그렇지만 반쪽 난 의무 상영일수에서 천만관객 영화가 나오겠나 싶어요.”
3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의 ‘스크린쿼터 사수 1인 시위’를 지켜본 서선미(23)양의 말이다.
임권택 감독은 지난 2월4일 영화배우 안성기를 첫 주자로 시작된 ‘스크린쿼터 사수 1인 시위’의 대미를 장식했다. 영화인들의 거리 시위 등이 있었던 날을 포함해 150일이 지나는 동안 ‘이제는 과거가 된’ 의무상영일 수 146일을 상징하는 146회차의 1인 시위가 진행됐고 172명의 영화인이 자리를 지켰다.
‘참여정부가 반쪽 낸 우리 영화의 미래, 스크린쿼터 원상 회복을 향한 투쟁, 오늘부터 시작입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나선 임 감독은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만난다는 게 반가운 일인지 슬픈 일인지 모르겠다. 내가 영화 현장에서 제일 늦게까지 오랫동안 현역으로 남아있는 사람이라 이 자리에 선 것 같다”며 입을 뗐다.
임 감독은 “스크린쿼터를 73일 축소했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대만 영화의 예를 들어 보자면, 극장주와 배급사들이 미국·홍콩 영화가 수익이 잘 나니까 전부 미국·홍콩 영화를 걸었다. 시간이 지나고 미국·홍콩 영화의 흥행 성적이 신통치 않자 대만 고유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지만 이미 영화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제작이 어려웠다. 현재 제작 인력조차 변변치 않은 열악한 상황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소개한 뒤 “우리나라도 스크린쿼터가 축소돼 몹시 걱정스럽다. 극장에서 한국영화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수요가 없는데 공급이 버텨나겠나. 투자도 줄고 전반적인 제작 여건이 나빠지면 촬영기사, 조명기사, 미술감독 모두 먹고 살아야 하니 다른 직업을 찾아갈 것이다. 우리도 언젠가 한국만의 영화를 만들고자 할 때 사람이 없을 것이다. 대만이 당한 일을 우리가 만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참담하다”며 스크린쿼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 “우리가 자기네만 잘살고자 막무가내로, 이기적으로 시위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안을 들여다보면 겉잡을 수 없이 한국영화가 몰락해 갈 가까운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다. 영화가 없으면 문화가 없고, 우리만의 문화가 없으면 우리의 미래도 없다. 한국영화에 대한 이해와 깊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읍소했다.
오후 7시까지 임 감독이 자리를 지키는 동안 100여명의 영화인들이 든든한 ‘배경’으로 등장했다. 영화배우 안성기 김부선 오윤홍, 감독 정지영 이춘연 송일곤 윤종빈, 평론가 양윤모를 비롯해 제작자, 촬영감독 등 영화 관계자 뿐만 아니라 전교조 민주노동당 전농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후배들과 함께 선 임 감독은 “스크린쿼터가 있어 내가 이제까지 영화감독 생활을 할 수 있었고, 독특한 한국인들의 삶과 정서를 영화에 담아내고자 노력할 수 있었다. 146일이 있어 한국영화를 세계에 알리고 세계 속에 녹여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73일을 깎아냄으로써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가고 있다. 정부는 한국영화가 없어도 경제만 잘 되면 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고 이제라도 스크린쿼터를 제자리에 돌려놓기를 바란다. 한국영화가 정부로 인해 몰락해가고 있다. 국민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지지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하며 말을 맺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기자 dunastar@kmib.co.kr
◇ 다음은 6일 마지막 1인 시위 현장에 다시 등장한 146개의 피켓 중 일부의 문구.
- 우리의 희로애락을 영화에 담아 관객과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의 꿈을 꺾지 말아주세요. 영화배우 김부선.
- 미국에 NO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었습니다. 지금이 그 때입니다. 영화 <질투는 나의 힘> <분홍신> 제작자 조광수. 분홍신> 질투는>
- 상대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우방입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 촬영감독 김형구. 살인의>
- 스크린쿼터는 인류의 문화다양성을 지켜내는 등대입니다. 나우필름 이준동.
- 헐리우드가 아닌 희망을 세계화하라.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목수정.
- 스크린쿼터 사수는 미국의 문화침략에서 우리의 문화주권을 지키는 것입니다. 영화 <꽃섬> 감독 송일곤. 꽃섬>
- 스크린쿼터는 미래의 요람, 한국 영화감독들의 꿈.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감독 윤종빈. 용서받지>
- 영화는 한 나라의 감성의 땅. 결코 빼앗길 수 없는 문화 영토입니다. 사진작가 김중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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