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이 일일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나섰다. 강의 내용은 ‘반FTA’.
9일 오전 9시30분 서울 구로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특강에서 최민식은 학생들에게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포문을 열었다.
영화란 무엇인가
최민식은“보통 영화는 사람들이 7000원을 내고 즐기는 취미 생활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엔 영화를 보고 나면 장면, 대사, 미술 등의 잔영이 오래 갔고 어떤 영화는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레 연극이나 영화를 내가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대학 진학할 때 연극영화과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영화라는 매체가 누구에게는 가벼운 취미생활이기도 하고 어떤 누군가에는 미래의 진로를 결정짓는 커다란 영향력을 갖는다는 것.
최민식은 “영화가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 소중함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냐. 멀어졌을 때, 없어졌을 때 그 때서야 소중함을 알게 된다”며 화제를 스크린쿼터로 옮겨갔다.
스크린쿼터가 무엇인가
최민식은 고등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스크린쿼터에 대해 설명했다. 먼저 스크린쿼터 축소가 한미 FTA(한국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의 맥락에서 나온 것이며, ‘자국의 영화를 1년에 146일 동안 극장에서 의무상영한다’는 강제조항이 7월1일부터 73일로 축소된다는 사실을 알렸다.
“우리 관객에게 ‘한국영화만을 의무적으로 봐라’라는 강제조항이 아니다. 146일이라는 것은 10편의 영화 중 4편의 한국영화를 보장하는 것이다. 6편의 외국영화는 자유롭게 극장에 걸 수 있다”면서 “다만 책,CD 등은 서점 등의 공간에 동시에 진열이 되고 소비자들은 그것 중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런데 영화는 독특한 유통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극장에 걸려 관객과 만날 수 있고, 상영되지 못한 영화는 폐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영화산업에서는 배급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초코파이, 한국은 찰떡파이
최민식은 “만일 스크린쿼터 없다면, 한국에서 관객 1000만을 넘어설 정도로 호응이 좋은 ‘왕의 남자’를 미국이 내리라고 요구할 수 있다. 내리지 않으면 ‘반지의 제왕’ ‘고질라’를 주지 않겠다고 강압하면 극장주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어 “극장주는 영화인인 동시에 영화인이 아니다.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직업의 특성상, 경영 원리상 그러한 마인드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학생들이 이해하가 쉽도록 실례를 들어 스크린쿼터가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실감나게 전했다.
“동네 가게 주인이 유명하지는 않지만 찰떡파이를 가게에 들였다. 나름대로 맛이 있고 기존 제품과 다른 풍미에 사람들이 반응이 좋아 잘 팔렸다. 그런데 어느날 초코파이 업체에서 와서 ‘찰떡파이를 가게에서 치워라. 그렇지 않으면 초코파이를 주지 않겠다’고 압력을 가했다. 가게 주인들은 대형 업체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이후 가게에서 찰떡파이는 보기 힘들게 됐다.”
최민식은 “현재는 ‘조폭 마누라’같은 상업적이고 오락적인 영화도 있고 ‘박하사탕’ ‘살인의 추억’ 등 진중한 메시지의 영화도 있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돈 되는 영화일까’ ‘투자사나 극장주들이 좋아할 영화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인들 나름대로 자체 검열을 하게 돼 한국영화의 다양성이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면서 “ ‘오아시스’ ‘파이란’ ‘여자 정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처럼 작품성있고 해외관객들과도 공유할 수 있는 수준있는 작가주의 영화까지 모든 다양한 한국영화가 존재할 수 있도록 지켜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영화인들도 잘못했다”
최민식은 “어떤 분들은 ‘스크린쿼터 축소돼도 좋은 영화 만들어라 봐주겠다’ 하시는데, 극장에 걸 수가 없는데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관객들은 영화의 생산과 배급시스템을 잘 모른다. 그냥 7천원을 내고 즐기면 됐다. 그런데 그 생각이 잘못이었다. 우리 영화인들이 미리 미리 영화의 산업 구조적 측면, 스크린쿼터의 소중함에 대해 홍보를 했어야 한다는 후회도 든다. 이렇게 위급한 상황이 돼서야 ‘상황이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된 거다’라고 황급하게 말씀 드리고 있다”며 위기에 닥쳐서야 국민들의 관심과 지원을 바라는 영화계를 자성했다.
해외에서도 부러워하는 문화주권
최민식은 길지 않은 경험이라는 겸손한 단서를 붙이며 해외영화제 다니며 외국기자들이나 영화 관계자들과 나눈 얘기를 꺼냈다.
해외 영화인들이 ‘어떻게 그렇게 짧은 기간에 급격히 성장하고 좋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느냐’며 부러움의 눈길로 한국영화의 상황에 대해 물어오면 그는 2가지 이유를 돌려줬단다.
첫째 ‘스크린쿼터’라는 자국의 영화를 보호하려는 정부의 정책적인 뒷받침이 있었고, 둘째 군사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시절에 영화계 말단 스탭으로 일하며 와신상담했던 사람들이 민주화화 함께 수면 위로 떠올라 자기의 목소리와 색깔을 내기 시작한 덕분이라고.
최민식은 외국 사람들이 ‘문화주권, 영상주권을 버티기 위해 노력해 온 한국 대단하다’ ‘야, 한국 사람들 징하다’라고 말할 때 뿌듯했다고 전하며 스크린쿼터 사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은 왜 ‘작은’ 한국의 스크린쿼터 축소를 원하나
최민식은 미국이 한국의 ‘작은’ 영화시장을 한미 FTA를 통해 장악하려는 저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의 패권주의 일방주의에 맞서서 ‘문화는 교역의 대상이 아니다, 문화적 예외조항으로 둬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지난해 유네스코에서 148개국이 ‘세계 문화다양성 협약’에 가입했다는 것을 들었다. 이 때, 미국과 이스라엘은 문화적 예외조항 인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전세계에서 미국영화를 틀지 않는 나라가 없다, 이슬람권 등 종교적 색채가 강한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85%의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이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의 시장을 먹으려는 이유가 뭐냐”고 하더니 “그것은 경제적 이득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화에 대한 지배를 원하는 것이다”라고 자문자답했다.
최민식은 자신은 반미주의자가 아니라면서 미국영화를 좋아하고 마틴 스콜세지, 프란시스 코폴라 등 미국 출신의 감독을 좋아하지만 ‘지나친 독과점’은 문제라고 강경하게 말했다.
“우리는 세계에 넘쳐나는 미국영화를 통해 미국 사람들이 사랑하는 방법, 생각하는 방법을 알게 모르게 쇄뇌당해 왔으며 바로 그것이 문화적 패권주의다.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도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 ‘영화가 밥 먹여 주냐, 영화 안 본다고 죽냐’라고 말한다면 할 말 없다. 그러나 생존권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음악, 문학 등을 통해 정신적 풍요로움과 성숙함을 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고 호소했다.
꼼꼼히 따져보고 내줄 거 내주자
최민식은 햄버거도 먹지 않고 팝송도 듣지 않고 살자는 것이 아니라 교류와 개방을 하되 반드시 잃지 말고 지켜나가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잊지말자는 것이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바라고 호소했다.
작년 9월부터 갑자기 ‘한미 FTA’에 드라이브가 걸리기 시작해 급속도로 자유무역과 개방이 추진되고 있다면서 “이토록 전 산업분야에 걸쳐서 모든 것을 개방할 때는 꼼꼼히 따져보고 실익을 계산해서 어떤 것은 내주고 어떤 것은 지켜야하는 지를 판단하는 것이 상식 아니냐”며 “영화라면 영화인들, 쌀이라면 농민들의 얘기를 들어봐 달라”고 말했다.
또 “우리 정부는 하나하나 깐깐하게 따져보지 않고 급하게 졸속으로 한미 FTA를 추진하고 있다. 심지어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문화주권과 직결되는 영화, 국민의 건강과 보건에 직결되는 소고기 수입 및 배기가스 기준치와 관련한 부분을 미리 내준 것은 어이없다”면서 “정부는 미리 내준 것이 아니라 미국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 하원의원들이 부시에게 쓴 편지를 통해 ‘한국이 알아서 미국에 받쳤다’는 것이 밝혀졌다. 왜 거짓말을 하느냐”며 분개했다.
“무관심은 금물, 관심을 가져달라”
최민식은 특강 말미에서 “미국은 자선사업을 하는 나라도 ‘천사의 나라’도 아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국익을 위해 움직이고 그를 위해 한국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라면서 “이런 나의 생각과 여러분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다른 것은 상관없지만 무관심은 걷어달라, 도대체 한미 FTA, 스크린쿼터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달라”고 학생들에게 열과 성을 다해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미 FTA는 중차대한 국가적 대사다. 체감하지 못할 뿐이지, 미국의 의도와 계획대로 체결되고 나면 그 피해는 여러분들에게 간다. 내 말은 잊더라도 이제부터 인터넷에 들어가서 한미 FTA, 스크린쿼터 등에 대해 공부를 해달라. 그리고 여러분 마음 속에 생긴 의견을 인터넷 여기저기에 올려달라. 많은 국민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고 표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민식이 강사로 나선 ‘한미 FTA 저지 공동수업’은 교수노조, 참교육학부모회, 전교조 등 27개 단체가 참여하는 ‘한-미 에프티에이 저지 교육공동대책위’ 주관으로 진행됐으며 9일 서울을 시작으로 6월까지 지방의 4개 학교에서 추가로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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