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두고 온 가족을 못잊으면서도 새로 가정을 꾸릴 수밖에 없는 나약함. 그로인한 미안한 마음에 그리던 이와 재회하고서도 어쩌지 못하는 난처함. 실향민 세대를 통해 익히 들어온 분단 조국의 비극이다. 그런데 영화 ‘국경의 남쪽’(감독 안판석,제작 차승재·김미희)은 분명 현재가 배경임에도 똑같은 비극을 보여준다. 1만 명에 육박하는 국내 탈북자들에게 이는 과거가 아닌 현실인 것이다.
평양의 만수예술단 호른 연주자 김선호(차승원)와 그가 탈북하면서 두고 온 여인 연화(조이진)의 어긋나는 사랑 이야기가 줄거리다. 탈북 역시 멜로를 위한 새로운 소재일 뿐이라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부모 세대의 아픔이 젊은 세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주제의식이 가볍지만은 않다.
탈북자라고 해서 북에서 기아에 허덕이고 남한에서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등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은 점도 신선하다. 평양 시가지,대성산 놀이공원,옥류관,태양절 축제,북한 5대 가극 ‘당의 참된 딸’ 등을 재현해 볼거리를 제공한다.
한계도 있다. 선호와 연화가 북에서 어려움 없이 생활하다 탈북 후 쉽게 정착한다는 설정은 멜로영화로서는 결점이다. 둘의 감정을 절절하게 끌어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호를 위해 사막을 건너고 총을 맞아가며 탈북했다는 연화의 사연도 대화로만 처리돼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또한 웃겨야 할 장면과 울려야 할 대목이 뒤섞인 점도 아쉽다. 탈북한 연화와 재회한 선호가 담뱃불을 붙이려다 금연이라는 말에 쩔쩔매는 장면,연화가 지켜볼 TV 프로에서 아내(심혜진)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선호 옆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똑같이 분장한 아버지(송재호)가 보이는 장면 등은 관객의 감정을 어정쩡한 상태로 몰아넣는다.
첫 멜로 연기에 도전한 차승원의 연기가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것도 이같은 연출력 부족 탓으로 보인다. 반면 극중 선호의 묘사대로 ‘동치미처럼 찡하고 시원한’ 북한 여성을 연기한 조이진의 캐릭터는 돋보인다. 4일 개봉. 15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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