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또 일을 저질렀어요. 이 영화찍고 이민 가야 될지도 몰라요”라고 했던 문소리의 얘기가 전혀 빈말은 아니었다.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제작 엔젤 언더그라운드·MK 픽처스)은 과감하고 생경하며 독특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전형적인 멜로나 코미디의 잣대로 재려는 것은 애초에 무리다.
어느 지방 소도시,대학교수와 환경운동가라는 그럴듯한 지위과 명성을 갖춘 여교수 조은숙(문소리). 지성과 미모가 ‘살짝’ 떨어지긴 하지만 그녀의 은밀한 매력은 지역 환경단체 회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대부분 유부남인 주변 남자들의 애정공세 속에 여교수는 대담하게 여러 남자와 동시다발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그런 중 역시 유부남인 방송국 김 PD(박원상)가 대책 없이 열렬한 사랑을 고백해오고,잘 생기고 젊은 만화과 강사 석규(지진희)가 환경단체에 합류한다. 젊은 강사의 등장에 위기감을 느낀 환경단체 회원 유선생(유승목)은 석규의 뒤를 캐기 시작하고,뜻밖에도 같은 중학교에 다녔던 여교수와 석규의 놀랄만한 과거를 알게 된다.
이 영화는 낯부끄러운 과거를 가식과 내숭으로 감춘 여교수를 통해 우리의 감춰진 모습을 들춰내는 성인들을 위한 코미디다. 그런데 웃음을 풀어내는 방식이 독특하다. 그 생경함이란 상식과 예상을 빗나가는 타이밍. 할 말과 못할 말 구분이 없고,부끄러워할 순간 당당하고,놀라야 할 순간 시치미를 떼는 인물들은 숨겨진 가식이 마치 진정인양 말한다.
문소리와 지진희의 달라진 모습을 보는 것은 즐겁다. 똑부러지게 할 말하던 문소리는 어떻게해서 교수가 됐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지적수준과 간드러진 목소리에 약간 다리를 저는 캐릭터. ‘오아시스’ ‘바람난 가족’ 등을 거쳐 이번에도 문소리가 안니면 안되는 역할을 하겠다는 욕심이 묻어난다. ‘대장금’의 반듯한 이미지 지진희는 입을 열 때마다 욕설이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홍상수 감독의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다. 평범한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도 그 속에 숨은 사회적 정서적 일탈을 놓치지 않는 이 영화는 어떤 이들에겐 환호할만큼 매력적인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좀더 그럴듯해보이는,뭔가 전형적이고 안정적인 틀안에서 즐거움을 느껴왔던 수많은 관객들에겐 이질적이며 시큰둥한 반응이 나올 수도 있겠다. 이하 감독의 장편 데뷔작. 17일개봉. 18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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