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데이지.브이 포 벤데타

● 데이지

첫사랑이기때문에…이루어질 수 없는걸까

이쁜 전지현과 잘 생긴 정우성, 그리고 연기를 잘하는 이성재 등 톱스타급 배우가 출연하는 멜로 영화라면 관객들의 호기심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여기에 감독이 ‘무간도’ 시리즈로 유명한 류웨이장(劉偉强)이라면 더 들뜬 시선으로 지켜볼만하다. 촬영이 모두 끝난 후 오랜 기간 숙성의 시기를 거쳤던 ‘데이지’(제작 아이필름)가 네덜란드의 아름다운 풍광들을 담아 선보였다.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네덜란드에서 올로케이션한 작품. 전지현이 무명의 화가로 설정된 까닭인지 그림같은 풍경들이 펼쳐진다.

영화의 주요 소재가 된 데이지꽃은 그 순박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끝없이 피어있다. 류웨이장 감독은 때론 암스테르담 거리 전체가 드러날만큼 멀게, 때론 화면 가득할 정도의 클로즈업으로 촬영을 번갈아 하는 영상미로 자꾸만 흔들리려 하는 이야기를 채우려 했다.

혜영(전지현 분)은 거리의 화가. 낯선 나라에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는 외로운 여자다. 데이지를 그리러 간 그가 외나무 다리를 건너다 개울물에 빠지고, 얼마 후 다리가 놓인다. 그리고 매일 오후 4시15분 데이지꽃이 배달된다. 혜영은 데이지꽃을 보낸 이가 누군지도 모른 채 자신의 마음을 속절없이 내놓고 만다. 꽃을 보낸 이는 킬러 박의(정우성 분). 그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러던 혜영 앞에 데이지 화분을 든 정우(이성재 분)가 나타난다. 혜영은 정우가 바로 그임을 의심치 않고 마음을 기꺼이 허락한다. 국제경찰로 마약 조직을 쫓고 있던 정우 역시 혜영에게 사랑을 느낀다. 어느날 거리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혜영은 목에 깊은 상처를 입고 정우는 큰 부상을 당해 한국으로 보내진다. 그날 이후 혜영은 말을 잃는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던 박의는 여자를 가까이 하면 안되는 킬러란 신분을 뒤로 하고 혜영에게 다가선다.

헌신적인 박의의 사랑이 화면 가득 펼쳐진 후 정우가 다시 등장한다. 이들 3명의 엇갈린 사랑은 전혀 엉뚱한 사건으로 방향이 틀어진다. 세 남녀의 운명 같은 사랑. 멜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어떻게 버무리느냐가 관건이었을 터. 감독과 제작진은 내용보다는 영상으로 승부를 건듯하다. 이쁜 전지현과 잘 생긴 정우성, 그리고 덤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는 것으로도 충분히 극장을 찾을만하다고 내세운다. 하긴 한국영화 관객들이 유독 가혹하게 요구하는 멜로영화 수준을 맞추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 이 같은 선택 역시 시도해 볼만 했을듯 싶다.

영화는 세 남녀의 관점에서 교차 편집하며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려고 했다. 같은 상황이 달리 표현됨으로써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닌, 삶은 곧 운명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영화는 다시 한번 전지현이란 배우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비록 정우성과 이성재가 있지만 ‘데이지’는 전지현의 영화란 인식이 강하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이후 또 다시 긴 휴식기를 갖고 난 후 선택한 영화였기에 기대감이 높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데이지’는 아직도 CF스타란 선입견을 깨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불안한 발성을 보였던 전지현은 영화 중반 말을 잃는 것으로 설정되며 아예 목소리를 전달하지 못한다. 그가 영화 속에서 우는 장면을 그를 모델로 한 회사에서 미리 봤던 것일까. 전지현이 울기만 하는 한 CF가 연상되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애처러운 사랑 이야기를 담은 뮤직비디오 한편을 2시간동안 감상한다고 해도 분명 영화만의 미덕을 뽑아내 가슴 시린 멜로영화로 기억할 관객들이 있길 기대한다. 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img5,r,000}● 브이 포 벤데타

‘매트릭스’ 워쇼스키 형제의 또다른 가상현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말할 때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전 세계 영화계에 문화·철학적 충격을 몰고 온 ‘매트릭스’ 시리즈의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 각본을 맡았기 때문이다. ‘매트릭스’란 실재와 허구를 교묘히 엮어내는 가상현실세계를 만들어냈던 워쇼스키 형제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영국이란 현실적인 공간에서의 가상세계를 만들어냈다.

이 작품은 미국이 벌인 제3차 세계대전 후 당과 정부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된 영국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사람들은 전쟁과 약탈, 이름 모를 바이러스, 종교간 분쟁 등으로 공포에 떨면서 서틀러 의장의 철권정치를 용인한다. 통금체제를 감시하는 정권의 하수인 핑거맨들로부터 농락당할뻔한 이비(나탈리 포트만 분)앞에 가이 포크스 마스크를 쓴 남자가 나타나 구해준다. 그는 V(휴고 위빙 분)란 이니셜로 소개할 뿐. 이비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동생을 잃고 이에 항의해 시위대에 적극 가담한 부모를 잃은 정권의 희생양. V는 세상을 구하려는 히어로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복수를 꾀하는 안티 히어로적 인물이다.

‘브이 포 벤데타’ 역시 ‘매트릭스’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과 자유에의 의지를 다루고 있다. 검은색이 바탕이 된 블루톤 영상은 우울한 미래를 연상시킨다. 수많은 SF영화가 암울한 미래에서 영웅들의 활약으로 허무맹랑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반면, 이 영화는 대중의 자각이 해피엔딩을 이끌어 낸다. ‘매트릭스’만큼의 놀라움과 충격 등은 던져지지 않는다. 대신 선과 악, 자유와 이에 따른 책임, 인간의 존엄성 등에 대해 단 한순간이나마 성찰하게 한다.

‘매트릭스’에서 네오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스미스 요원을 기억하는가. 이 영화에서 V역의 휴고 위빙의 배우로서 도전이 흡족함을 준다. 그는 목소리와 신체 연기만으로 얼굴 표정이 없이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옹’의 어린 연인이었던 나탈리 포트만의 성숙한 면모를 만날 수 있는 게 반갑다. 오는 17일 전 세계 동시 개봉. 상영시간 1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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