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변신 꾀한 아카데미 …작품상에 ‘크래시’―감독상에 ‘브로크백 마운틴’

제 78회 아카데미는 그동안 아카데미가 보수적 영화상이라고 굳어진 멍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민하고 있음을 역력하게 보여줬다.

6일 오전 10시(한국시각) 미국 LA코닥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아카데미는 그간 미국적 가치를 중시하며 '보수적 영화상의 선봉'으로 불리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진보적이고 도발적인 작품들에 후한 점수를 줬다.

최고영예인 작품상은 영화 ‘크래시’(감독 폴 해기스)에 돌아갔다. 다민족국가인 미국 내 인종문제를 도발적인 시각으로 그려낸 ‘크래시’는 LA라는 대도시에서 뒤엉켜 살아가는 다양한 인종들간의 갈등을 달콤쌉싸름하게 그렸다는 평을 받았다.

감독상은 '브로크백 마운틴'의 이안 감독에게 돌아갔다. 아시아 출신 감독에게 주어진 첫 감독상. '브로크백 마운틴'은 20여년에 걸친 미국 남부 카우보이들의 동성애를 담담하고도 아름답게 표현해 평단의 큰 주목을 받아왔다. 이미 이 영화는 올해 골든글로브와 미국 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도 감독상을 차지했다.

로버트 알트만 감독에게 공로상을 돌린 점도 올해 아카데미에서 주목할만 하다. 알트만은 그간 할리우드 상업화를 비판하며, 반골 성향 감독으로 세계적 영화제에서 명성을 얻었지만 지난 60년간 한번도 아카데미상을 받지 못했다.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공로상 수상대에 오른 알트만은 아카데미에 섭섭함을 표하진 않았다. 이번 공로상 수여가 '화해의 악수'임을 노(老)감독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흑인 힙합음악이 주제가 상을 수상한 것도 처음이다. '허슬 & 플로우'의 주제곡 '포주 노릇은 하기 힘들어'(It's Hard Out Here For a Pimp)가 수상곡으로 결정되자 시상식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장중한 오케스트라 곡들이나 감성적인 팝발라드 음악이 대부분이었던 이전 아카데미 풍경과는 대조적이었다. 노래 제목 역시 '포주 노릇은 하기 힘들어'인 탓에 보수적인 아카데미가 힙합음악으로도 음향적 취향을 넓히고 있음을 보여줬다.

배우 조지 클루니를 감독상 후보에 올리며 6개 부문 후보로 지목됐던 '굿 나잇 앤 굿 럭'이 한 부문에서도 수상하지 못한 점도 이례적이다. 영화는 1950년대 초반, 맥카시 열풍의 장본인 조셉 맥카시 상원의원과 CBS 기자들의 대결을 다루며 레드 콤플렉스에 빠뜨렸던 미국 사회에 비판을 칼날을 세웠다. 하지만 할리우드 인기배우 출신인 조지 클루니가 미국적 상업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감독이라는 점이 그의 수상 실패와 무관하지 않아보인다.

남우주연상은 전기영화 '카포트'에서 실존 인물 카포트를 열연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에게 돌아갔다. 유명 작가이자 동성애자로도 유명했던 트루먼 카포트의 삶을 그린 이 작품에서 호프만은 카포트의 손동작과 말투 하나까지 완벽하게 연기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호프만은 이미 올해 골든글로브(드라마 부문)와 미국 배우조합상에서도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여우주연상은 '워크 더 라인'의 여주인공 리즈 위더스푼에게 돌아갔다. 천재적인 컨트리 가수 자니 캐시의 삶을 스크린에 되살린 이 작품에서 위더스푼은 자니 캐시의 연인이자 가수인 준 카터 역을 소화했다. 이미 위더스푼 역시 올해 골든글로브와 미국 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도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남녀조연상은 각각 조지 클루니(시리아나)와 레이첼 와이즈(콘스탄트 가드너)에게 돌아갔다. 한편 '크래시'와 '게이샤의 추억' '킹콩' 등은 각각 3개 부문을 수상, 공동 다관왕에 올랐다.

이미지 변신을 꾀한 올해 아카데미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폐부 깊숙이 비판과 반성의 칼날을 찔러넣었다. 보수성과 상업성에서 벗어나 미국 주류사회를 향한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아카데미가 내년에는 어떤 변화된 모습을 보일지 벌써부터 주목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민성 기자

<다음은 부문별 수상자(작)>

◆작품상 크래시 ◆감독상 이안(브로크백 마운틴) ◆남우주연상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카포트) ◆여우주연상 리즈 위더스푼(워크 더 라인) ◆남우조연상 조지 클루니(시리아나) ◆여우조연상 레이첼 와이즈(콘스탄트 가드너) ◆공로상 로버트 알트만 감독

◆촬영상 존 마이어(게이샤의 추억) ◆각색상 래리 맥머티(브로크백 마운틴) ◆각본상 폴 해기스 (크래시) ◆편집상 휴즈 윈본(크래쉬)

◆분장상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의상상 '게이샤의 추억' ◆미술상 '게이샤의 추억' ◆작곡상 '브로크백 마운틴' ◆음향상 '킹콩' ◆음향편집상 '킹콩' ◆시각효과상 '킹콩 ◆주제가상 'It's Hard Out Here For a Pimp'(허슬 앤드 플로우)

◆외국어영화상 '토치'(남아프리카공화국, 감독 게이빈 후드) ◆장편애니메이션작품상 '윌리스와 그로밋-거대 토끼의 저주' ◆단편영화작품상 '여섯 명의 사수'(감독 마틴 맥도너) ◆단편애니메이션작품상 '달과 아들: 상상의 대화'(감독 존 케인메이커, 페기 스턴) ◆장편다큐멘터리상 '펭귄'(Penguin) ◆단편다큐멘터리상 '승리의 기록: 노만 코윈의 황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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