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을게요. 하나, 둘, 셋…. 아차, 치즈를 안했네. 근데 왜 치즈죠? 김치라고 하면 좋을텐데."(웃음)
승마용 검정 브리치스 바지에 하얀 재킷을 입은 임수정은 동료 기수 가족의 사진을 찍어 주려다 몇번 NG가 나자 치즈 핑계를 대며 멋쩍게 웃는다. 영화 '각설탕'의 막바지 촬영이 한창인 지난 16일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내 잔디광장. 겨울의 막바지를 시샘이라도 하듯 촬영장은 영하 10℃가 넘는 강추위와 매서운 바람으로, 배우와 스태프들의 양볼과 귀는 빨갛게 얼어 있었다. 이날 촬영은 시은의 기수 졸업식 장면. 다음날이면 정기적인 경마(금·토·일요일)가 열리기 때문인지 시간이 다급한 스태프들은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있는 50여명의 엑스트라를 다독이며 촬영일정을 소화하기에 분주하다.
# 국내 첫 인간과 동물 우정 다뤄
참신한 소재…"모든 세대 공감하는 감동드라마"
'각설탕'은 최고의 기수가 되고 싶은 소녀 시은(임수정)과 그녀의 꿈을 위해 달리고 싶은 말 천둥이의 우정을 그린 작품. 국내 최초로 사람과 동물 간의 우정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참신한 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화가 처음 기획된 것은 평소 말을 좋아한 이정학 PD가 3년전 과천 경마장에서 우연히 레이싱 장면을 목격한 후다. 그는 주말을 이용해 이곳을 찾았고, 당시 스타 경주마 '신세대'의 은퇴 기념 레이싱 장면을 보면서 뜻밖의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인간이 아닌 말을 주인공 삼아 사람을 울려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기에 상업적인 코드를 가미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마침 경륜에 관한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던 이환경 감독을 만나 작품을 논의하게 된다. '각설탕'의 극본과 감독을 맡은 이환경 감독은 영화 '그 놈은 멋있다'를 쓴 시나리오 작가이자 이명세·박종원 감독의 조감독으로 충무로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는 "말의 매력에 흠뻑 빠져 시나리오 작업부터 촬영 현장까지 영화제작의 전 과정을 즐겁고 열정적으로 작업하고 있다"며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감동드라마를 만들어 보이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임수정을 캐스팅하기 전부터 그녀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써왔다고.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그녀에겐 애잔한 느낌이 묻어 납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김시은 역에 딱이죠."
# '천둥이' 1000대 1 경쟁 뚫고 캐스팅
3개월간 연기 훈련…6만여평 목장세트도 눈길
제작진은 임수정의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말에 대해서는 캐스팅 단계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각설탕'에서 임수정과 투톱을 이룰 만큼 천둥이는 힘찬 경주 장면 촬영부터 순수한 감정연기까지 비중 있는 연기를 펼쳐야 했기 때문이다. 과천과 제주도를 오가며 6개월간 캐스팅에 주력했으며 신체적 조건, 표정연기, 성격 등을 고려해 1천대 1의 경쟁을 뚫고 지금의 주인공을 발탁했다.
단지 대상이 동물인지라 표정연기와 리액션이 없다는 점은 애로사항. 하지만 3개월이 지나자 임수정은 물론 모든 스태프와의 눈빛 교감을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연기력(?) 또한 흡족할 만한 단계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마지막 경주장면은 영화의 대미를 장식할 만큼 스펙터클하고 극적인 장면이 연출될 것이라며 한껏 기대감을 부추긴다.
한라산 해발 650m 북제주군 천아오름에 위치한 6만 여평의 목장 세트는 제주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새롭게 제작됐다. 마을 공동 목장 위에 실제 모양의 집과 마굿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아늑한 세트가 만들어졌고, 자연 친화적으로 제작된 세트는 초원을 마음껏 뛰노는 말과 소녀의 추억을 더욱 감동적으로 그리기에 충분했다. 또한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경주 장면은 한국마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제작될 예정. 과천에 위치한 35만평의 경마공원을 배경으로 완성도 높은 경주장면을 선보이기 위해 전문인력이 총동원된다고. 현재 85% 정도 촬영된 상태로 올 여름 관객을 찾는다.
◇ 여주인공 '시은' 임수정 "대화 아닌 마음으로 교감 동물과 연기 너무 신나요"
"오늘은 낯선 사람이 많아선지 천둥이가 귀를 쫑긋하며 예민한 표정을 짓네요."
숙달된 손놀림으로 천둥이를 쓰다듬던 임수정은 천둥이와 오랫동안 함께 해 온 것처럼 자연스러움을 연출했다.
"이젠 천둥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아요. 대화가 아닌 마음으로 교감을 한다고나 할까요."
그녀는 현장을 취재온 기자들을 향해 "왜 영화제목이 각설탕인지 아세요?"라고 묻더니 조그만 박스에 가득 들어 있는 각설탕을 천둥이에게 먹이기 시작한다.
"말의 간식이 바로 각설탕과 당근이에요. 극중 시은과 천둥이가 각설탕을 매개로 친해졌기 때문에 그렇게 제목을 정한거죠."
여자 기수의 강한 이미지를 표출하기 위해 머리를 짧게 커트한 임수정은 3개월간 기본 승마자세부터 경주 장면 촬영을 위한 고난도의 다양한 기술을 습득했다. 하지만 동물과의 연기호흡은 쉽지 않았을 듯. 그녀는 "오히려 자기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며 인내심을 갖고 마음으로 다가갔다고 했다.
"진심으로 좋아하고 아껴주는 마음을 보이면 말도 서서히 믿어주고 기억해주죠. 감정으로 다가간 경우라서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이젠 '천둥아 안녕, 잘 있었어?'라고 말하면 천둥이가저를 알아보곤 먼저 다가와서 얼굴을 비비며 반가움을 표시해요."
임수정은 특히 "시나리오가 너무 재밌었고, 동물과 연기한다는 점도 너무 매력적"이라며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임수정은 차세대 스크린 유망주로 자타가 공인하는 감성적인 배우.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으로 스크린에 데뷔했고, 이후 앳된 소녀의 모습으로 섬세하지만 복잡한 감정연기를 선보였던 영화 '장화홍련',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까지 더해져 수많은 '미사 폐인'을 만들어낸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성숙한 이미지로 발군의 감성 연기를 펼친 '새드무비'까지 임수정은 또래의 어느 여배우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자신만의 매력을 보여주며 주목받고 있다. 특히 새롭게 도전하는 '각설탕'에서 맡은 여자 기수 시은 역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임수정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 맞춤 캐스팅으로 그 녀의 매력을 한껏 발휘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람과 동물의 우정을 소재로 가슴 진한 감동과 눈물, 그리고 유쾌한 웃음을 전해줄 '각설탕'은 분명 '말아톤' '웰컴 투 동막골'에 이어 세상을 함께 달려줄 친구가 흔치 않은 각박한 요즘 세상에 최고의 감동으로 다가 올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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