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음란서생.인터뷰-김민정.파이어월.신성일의 행방불명

● 음란서생

점잖은 사대부들의 야릇한 파티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시나리오를 썼던 김대우 작가가 감독이 돼 만든 영화 ‘음란서생’(제작 영화사 비단길)은 양반에 대한 조롱에 가까운 풍자와 함께 진실한 사랑을 추구하는 멜로 영화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선조의 해학과 풍자 정신을 답습한듯한 장면들이다.

독자들에 의해, 시청자들에 의해 결말이 좌지우지되는 세태를 정쟁과 당파싸움이 치열했던 조선시대에 대입해 웃음을 유도하고, 인터넷으로 삶의 방식이 달라진 21세기 댓글 문화가 당시에도 있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러한 풍자를 전하는 영화 대사가 참 맛깔스럽다. 한석규의 깨끗한 목소리를 통해 전해오는 군더더기 없는 대사가 일품인데다 오달수의 천연덕스러운 표정도 눈여겨볼만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건 김민정의 미모. 한복을 입은 우아하면서도 교태로운 자태가 천상선녀라고 하면 과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김윤서(한석규 분)는 조선시대 당대 최고의 문장가. 허나 당쟁으로 집안이 뒤숭숭함에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소심한 양반. 그는 어명을 받드는 자리에서 정빈(김민정 분)을 만나고, 살짝 치뜨는 커다란 눈망울과 교교한 달빛같은 여인의 낯빛을 가슴 속에 담아 둔다. 김윤서는 정적 가문인 의금부 도사 이광헌(이범수 분)과 함께 어명을 해결하고 실로 우연한 계기에 황가(오달서 분) 가게에서 읽기 참으로 민망한 난잡스런 책을 접한다.

그 가게는 그릇을 팔지만 실은 해적판 소설을 공급하는 곳. 그는 급기야 음란한 책을 쓰게 되고 그림에 재주가 많은 이광헌을 꼬드겨 신묘망측한 체위가 등장하는 삽화까지 넣는다. 책은 낙양의 지가를 올리듯 날개돋친듯 팔린다. 정빈은 윤서를 노골적으로 유혹하고 겁쟁이 윤서는 그러한 정빈의 유혹을 애써 뿌리치지만, 광헌이 “자신은 본 것만 그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야심한 밤 정빈을 황가네 가게로 초대한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흠잡을 결이 없다. 잘 조화된 세트와 어여쁜 의상이 그렇다. ‘스캔들’처럼 이 영화도 꼭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앉아서 봐야 한다. 재미있는 장면이 덤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오는 23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 ‘음란서생’ 후궁 정빈역 김민정

가슴이 뜨거운 순수한 女人…

영화 ‘음란서생’으로 오는 23일 관객을 찾아가는 김민정을 미리 만났다. 김민정은 후궁 정빈을 연기했다. 이달 초부터 잡지 등에 실린 이 영화 광고는 ‘점잖은 양반들의 음란 센세이션’이란 문구로 팬들을 자극하고 있다.

아직 시사회가 열리지 않은 터라 영화에 대해 묻자 “한 남자가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요약했다. 그는 “사대부 윤서가 음란소설을 쓴다고 하면 ‘재미로 그냥 했겠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그 일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진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지 못해 어떻게 판단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김민정은 분명 윤서의 행동을 용기라는 측면에서 봤을 것이다.

김민정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에게 용기라는 단어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대학시절 연기수업 시간에 모든 말에 욕을 붙여가며 했던 것이며, 최근 영화제 등에서 파격적인 의상을 선보이는 것에도 아마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은사이신 최형인 교수가 독백수업시간에 모든 문장의 끝에 욕을 붙여가며 연기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냥 보통 하는 ‘놈’같은 욕설이 아닌 훨씬 심한 욕들이었어요. 미치겠더라고요. 그때는 눈물이 날만큼 창피했어요.”

정빈에 대해 묻자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야누스적인 매력의 소유자”라고 말했다. 아역 출신으로 16년의 연기 경력을 지닌 김민정이지만 성인이 돼 처음으로 도전하는 사극 배역이다.

그가 담당한 배역에 대한 컨셉도 명쾌했다.

“여리지만 당당한 여자예요. 순수함과 섹시함도 함께 지녔죠. 가슴이 뜨거운 여자라 연기를 하면서는 내면을 충실히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파이어월

전형적 미국식 ‘가부장 영웅주의’

‘인디애나 존스’의 패기만만한 박사와 ‘사브리나’의 로맨틱 가이, ‘에어포스 원’의 냉철하면서도 인간적인 대통령. 액션·멜로·스릴러를 아우르며 한때 할리우드 최고 섹시가이로 뽑히기도 했던 해리슨 포드. 그가 주름진 얼굴로 다시 우리 앞에 섰다.

영화 ‘파이어월’은 은행 최고의 컴퓨터 전문가 해리슨 포드를 내세운다. 사이버 거래가 은행의 주요 업무가 된 현대에 해커를 방어하는 구축망을 세웠으나 오히려 이를 이용해 사이버상의 숫자 놀음으로 1억달러를 갈취하려는 강도들 앞에서 온몸을 다해 저지하려는 눈물겨운 투혼이 벌어진다. 보안전문가 잭 스탠필드로 분한 해리슨 포드가 젊은 시절 못잖은 액션을 구사해야 하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강도단은 잭의 아내와 두 자녀를 인질로 붙잡고 있어 잭이 컴퓨터 방어벽(Firewall)을 뚫도록 한다. 악당 빌 콕스(폴 베타니 분)는 잔인한 살인을 서슴지 않으며 주저하는 잭을 협박한다. 지능적인 범죄 영화를 지향하던 영화는 중반부를 넘어서며 해리슨 포드에게 인디애나 존스식 액션을 강요한다. 과연 어떤 기술이 등장할까 기대하던 관객들에겐 맥이 풀리는 일.

그를 좋아하는 팬들에겐 63세 나이에도 뛰고 구르며 온몸에 상처를 내야 하는 그가 안쓰럽다. 고작해야 사건이 끝날 때쯤 은행 여직원의 도움을 받을 뿐 사건을 모두 혼자 해결해야 하는 그의 모습이 보기에 버겁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 나이에도 액션영화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그의 능력에 감탄이 절로 난다.

빌 콕스 역의 폴 베타니는 ‘기사 윌리엄’이나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윔블던’ 등 전작에서 볼 수 없었던 냉혹한 연기들을 선보인다. 12세 이상 관람가.

● 신성일의 행방불명

먹는것도 죄가 되나요?

먹는 게 죄악이 되는 세상이라…. 살아야 할 중요한 이유가 없어진 암흑천지나 다름없다. 없어서 못 먹는 게 아니라 눈앞의 음식도 숨어서 먹어야 한다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정면 도전과 다름없다. 16일 개봉한 ‘신성일의 행방불명’에는 신성일이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유명 배우 신성일이 아니라 12세인지 15세인지 나이가 정확하지 않은 보육원에 사는 신성일이란 소년이다. 영화에는 신성일은 물론 이영애나 김갑수도 등장한다. 감독은 “유명인의 이미지를 이용하려는 게 아니라, 이름만 같을 뿐 수많은 다양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다른 신성일들에 대한 관심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제목이 이 영화의 유일한 상업성을 띠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재능 있는 소년 이준섭’이나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 등을 통해 단편영화계 스타로 떠오른 신재인 감독은 첫 장편 ‘신성일의 행방불명’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베를리너자이퉁상, 밴쿠버 국제영화제 용호상 특별언급 등 역시 화제를 모았다.

영화는 암울하다. 세상이 혼혈 미식축구선수 하인스 워드의 삶을 호들갑스럽게 조명하며 “구조적 모순이 있어도 개인만 잘하면 된다”고 선전하는 것과 다른 실제 현실을 조명한다. 사람들이 별로 알고 싶어하지 않고 또 알면 알수록 부끄러워지는 현실을 말이다. 신성일, 이영애, 김갑수가 사는 보육원 원장은 급식비를 아끼려는 생각에 아이들에게 “먹는 게 부끄럽다”고 가르치며, “예수가 먹는 걸 본 적이 있느냐”는 궤변을 펼친다. 이때문에 아이들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초코파이조차 침대 밑이나 화장실 등지에 숨어서 먹는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누가 먹는 걸 보면 귀신을 보고 놀란듯 고함을 지르는 것 역시 그런 세뇌 탓이다. 이런 와중에 남들보다 뚱뚱한 체격의 신성일은 원장에 의해 본보기로 금식에 돌입한다. 음지를 파헤치는 김기덕 감독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영화는 감독 특유의 냉소적 유머와 합쳐져 묘한 여운을 남긴다. 15세 이상 관람가.

{img5,l,000}● 3색의 韓日 청춘스토리

지난해 광복 제60주년을 기념해 독립영화 배급사 인디스토리가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눈부신 하루’는 하루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한일 젊은이들의 세가지 단상을 30분짜리 3편으로 조명했다. 광복 60주년 기념이란 수식어 탓에 꽤나 고리타분하고 진지할 것이란 인상이 강하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인 감독 3명의 눈높이 그대로 부담 없는 모습이다. 한마디로 수십년 이어져온 비슷비슷한 형태의 광복절 특집 TV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생김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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