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들이 미술관&박물관/김포 덕포진교육박물관

낡은 풍금.. 난로위 양은도시락..그립구나! 추억의 교실

“땡~”하고 종소리가 나면 수업이 시작된다. 수업에 떠든 아이 이름이 적힌 칠판과 낡은 풍금, 올망졸망한 책걸상, 배불뚝이 조개탄 난로, 그 위에 겹겹이 쌓여진 찌그러진 양은도시락들….

여기에서 이인숙 관장은 관람객을 대상으로 반백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풍금을 치며 동요를 부르는 수업을 한다. 그 교실에선 팔순 노인도 어린 아이가 된다.

음악수업이 끝나면 이 관장의 남편인 김동선 관장이 옛날 교과서로 50~60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아이들에게 책보를 메어 보게 하고 짠지 반찬 도시락 이야기나 거름하려고 똥이나 오줌 버리지 않는 이야기 등을 풀어 놓으면 아이들은 어느새 “진짜구나”하고 부모 세대 정서를 이해하게 된다.

1층에서의 즐거운 수업이 끝나고 2~3층까지 둘러보면 관람객들은 타임머신을 탄듯 과거로의 여행에 빠지게 된다.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에 위치한 덕포진교육박물관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광경들이다. 박물관으로 단순히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만 아니라 체험 프로그램, 그것도 부부인 두 공동관장 인생에서 우러나오는 ‘진국’을 경험할 수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무엇보다 창문에 ‘3-2’란 숫자가 붙여진 창문이 눈에 들어 온다. 학년과 반을 가르키는 것으로 이 관장이 마지막으로 담임을 맡았던 반에서 따왔다. 이 관장과 김 관장 모두 초등학교 교사 출신.

3학년 2반에는 옛 초등학교 겨울이 재연돼 있다. 교실 정면에는 칠판과 강단, 색 바랜 풍금 등이 놓여져 있고 내부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50~60년대 책걸상 20여짝이 배치돼 있다.

특히 교실 한가운데 자리한 옛 난로가 시선을 사로 잡는데 조개탄과 장작, 그 위에 올려진 양은도시락 등은 추억의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단순한 모형이 아니라 ‘ㄱ’자를 반내로 교실 밖까지 이어진 은색통이 뿜어내는 연기에서 알 수 있듯 겨울에는 아직도 사용중이다. 양은도시락 또한 특별주문이 가능하다.

교실을 빠져 나와 옆 ‘옛 학습 문화전’으로 가면 학습과 관련된 다양한 옛 사료들이 즐비하다. 벽면에는 검은 교복이 걸려 있는가 하면 그림물감과 크레파스, 실로폰, 옛 교과서, 주판, 몽땅연필 등이 잘 정열돼 있다. 필기구가 귀하던 시절, 나무판에 모래를 담아 글씨 연습을 하던 사판과 돌에 물로 글씨를 썼던 묵판 등은 이채롭기까지 하다. 새끼줄로 얼기설기 뭉쳐친 축구공과 방패연, 위인전기, 명찰, 도장 등도 눈에 띈다. 교실 맞은 편으로는 각종 청소년단체와 관련된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보이스카우트 및 걸스카우트, 누리단, 잼버리 등의 의상과 깃발 등이 있다. 오른쪽 공간으로 이동하면 옛 과학 기자재가 풍성하다. 현미경은 기본이고 해부기, 각종 물고기 표본, 과학시간 실습으로 사용했던 화학품 등을 볼 수 있고 이외에 판넬과 사진 등으로 옛 과학과 관련돤 물품들에 대한 정보들도 안겨진다.

2층은 교육사료관으로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일제하 식민지교육에 쓰였던 자료부터 ‘MS-Dos’로 운용됐을법한 초창기 컴퓨터, 진공관 라디오, 타자기 등 교육과 관련된 만물상이다.

기획전을 벌였던 중국교육문화전 이미지를 축소시킨 공간도 있다. 중국 의상부터 침구, 책, 도자기, 탈 등 중국 고유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농경문화교육관인 3층은 조상들의 지혜와 얼을 엿볼 수 있는 공간. 항아리, 자개함, 장롱, 박 등 고대사에서 우리의 곁을 지켰던 생활물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밖에 박물관에는 한국의 대학 역사와 관련, 귀중한 사료가 간직됐다. 1961년 9월 ‘교육에 관한 임시특별법’(법률 제208호 1961년 9월1일)에 의해 1946년 3년제로 출발한 서울사범학교를 개편, 2년제 서울교육대학이 배출한 제1회 졸업생 교표가 그것. 김 관장의 것으로 당시 이 대학이 1년동안 서울대 병설의 형국을 취했던 관계로 교표 모양이 현재 서울대와 동일하다.

박물관에는 지난 6월 열렸던 ‘故 김메리 여사 추모전’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그래서 해방 후 음악교육 중요성을 간직하기 위해 ‘학교종’을 작사·작곡한 김 여사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다. 덕진포교육박물관은 한마디로 교사 출신 두 관장이 일궈내고 있는 산교육의 현장이다. /박노훈기자 nhpark@kgib.co.kr

{img5,l,000}■인터뷰/김동선 공동관장

“50~60년대 교육 열정 고스란히 담겨있어…”

“단순한 민속 개념의 박물관은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이곳은 교육에 대한 열정이 숨쉬고 있습니다.”

김동선 공동관장(65)이 설명하는 덕포진교육박물관의 특징이다. 요즘 아이들은 물론 현직 교사들에게도 인기가 많다는 게 그의 자랑이다. 오늘날은 대부분 급식으로 점심을 해결하지만 50~60년대는 도시락을 싸지 못해 물로 배를 채웠던 시절의 교육 현장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지금에 와서야 ‘추억’이란 고상한 단어를 붙여가며 당시 상황을 회상하지만 ‘처절함’ 속에 열정으로 버텼던 교육상을 재현해 놓고 있다.

“단체에서 부탁할 때 이외에 정해 놓은 시간은 없지만 종을 치면 수업이 시작되요. 그럼 누구라 할 것도 없이 교실에 들어와 앉고 수업은 시작되죠. 아이들에겐 부모 혹은 조부모 세대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동시대 세대들에겐 향수를 떠올리게 합니다”

김 관장과 부인인 이인숙 관장은 모두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다. 김 관장은 98년까지, 이 관장은 91년까지 교단에 섰다.

“아내가 어느날부터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아예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조금 일찍 퇴직했죠. 저도 그렇지만 아내의 학교에 대한 애착은 대단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박물관도 그 일환에서 출발한 거라 볼 수 있죠”

지난 96년 박물관 개관 이후 김 관장과 이 관장에겐 수많은 매스컴의 관심이 쏟아졌다. 타이틀은 ‘실명한 교사 아내 사랑에서 비롯된 교실 밖 또 다른 학교’가 대부분이지만 실상 김 관장과 이 관장은 이런 반짝이는 이목의 집중보다 더 깊은 뜻을 품고 있었다.

“관람객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샌가 흐뭇해집니다. 한 번 찾고 마는 게 아니라 두 번, 세 번, 시간이 지나도 끝임없이 찾아주고 격려해주는 관람객이 있을 때면 보람도 느끼죠. 교사로서 걸어온 길이 평생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힘이 닿는데까지, 끝까지 덕포진교육박물관을 열겠다는 김 공동관장의 얼굴에는 그가 초등학교 시절 지었을법한 순박한 기쁨의 표정이 배어 있었다. /박노훈기자 nhpar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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