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물의 독창적 기획장식 흥미진진·유쾌한 공간 탈바꿈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눈앞 1층 로비에 웬 거인의 두 발목 종아리가 버티고 서있는 것이었다. 시선을 치켜 떠보니 그것은 맨발에 무릎위까지를 조각한 작품으로 그리스의 무슨 신화를 연상케 했다. 족히 2m 높이가 됨직한 거인의 종아리를 외람되게 손가락으로 튕겨봤더니 플라스틱 제품이다. 비록 석재가 아닌 플라스틱 조각도 얼음조각이 있는 것 처럼 조각이긴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앞엔 거인의 발자국 크기만한 유니섹스형의 우람한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며칠전 수원시 인계동 경기문화재단 현관에서 보고 느꼈던 게 이랬다. 알고보니 그것은 경기문화재단이 연말연시(11월25일~2006년 1월31일)를 맞아 설치한 ‘쉼, 休휴’ 기획전이다.
“그렇구나!” 하는 필링이 선뜻 다가섰다. 올 달력을 마지막 한 장 남겨놓고 뜯어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뭔가 쫓기듯이 바삐 살면서 잊었던 소중한 지난 한 해를 반추하게 됐다.
힘차고 우람해 보이는 두 발목 종아리의 조각상은 올해도 부지런히 뛰었던 것과 매한가지로 내년에도 부지런히 뛰어라는 계시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만이 아니다. 왼켠 빈자리에는 인조 잔디앞에 노랑색 의자와 함께 서 너 개의 아담한 경대가 가지런히 놓여 깨끗한 명경에 올해의 자화상을 비춰봤다. 희망과 정열을 상징하는 두 분홍빛 불기둥 너머에는 13개의 하얀 의자가 공중에 대롱대롱 매여있다. 그 옆에는 또 별 넷이 공중에 떠 있다.
2층 계단을 오르는데 은실로 장식된 계단 벽을 주먹만한 아홉마리의 재롱둥이 원숭이들이 열심히 오르는 소품이 전시돼 있다. 그걸 보고 “맞아! 원숭이처럼 지혜롭게 열심히 살아가자!”는 정감을 느끼면서 앙증스런 모습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2층은 또 달랐다. 로비의 바닥을 바둑판처럼 구획정리를 하여 수놓은 듯한 반짝이 은실장식 등은 마치 다른 공간에 와 있는 듯 했다.
그것은 환상의 공간이다. 환상이지만 결코 손에 쥘 수 없는 무지개 같은 게 아닌 실체적 희망이다. 우리의 사회는 인간애로 영위된다. 삭막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인정이 살아 숨쉰다. 이런 인간사회의 긍정적 공간을 연출하는 것은 더욱 인간미 넘치는 지역사회를 만든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모든 공공건물의 공간이 이런 기획장식으로 가꿔지면 한 층 더 밝은 지역사회 분위기 만들기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봤다.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공공건물이 아닌 개인의 빌딩도 주인이 맘만 먹으면 가능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연말이 있고 새해의 연초가 있다. 기왕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려면 좀 더 의미있는 장식으로 모든 이들에게 삶의 희망과 이웃의 인정을 샘 솟게하는 공간이 마련되면 이 또한 사회의 정신적 영양소가 될 것이다.
경기문화재단 건물을 찾은 것은 그 안에 든 농협에 볼 일이 있어서였다. 그리하여 r미처 상상치 못했던 공간장식에 이끌려 한참 보던 참에 재단의 송태호 대표이사를 복도에서 만났다. “어떻습니까?” “정말 환상적이네요!” 송 대표이사의 말에 의하면 어느 직원이 아이디어를 내어 기획전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인간사회의 발달은 정체를 거부한다. 역시 파격적인 실험정신은 새로운 가치형성을 시작한다. 이런 생각을 가질만한 또 하나의 사례를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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