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러브 토크, 소년, 천국에 가다

■러브 토크

상처를 품은 세 남녀… 낯선 도시에서 만나다

한국영화 판로의 새로운 대안이 첫 선을 보였다.

LJ필름과 CJ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추진중인 월드마켓 프로젝트의 첫번째 작품인 ‘러브 토크’는 세계 예술영화시장을 겨냥한 장편 영화다. 99%를 미국 LA에서 촬영했고 배종옥과 박진희란 유명 배우들이 출연했으나 순제작비는 15억원. LA가 아닌 국내에서 촬영했으면 8억~10억원이 투입된 저예산이다.

월드 프로젝트인만큼 영화는 국적의 경계를 넘어 서는 보편적인 이야기, 즉 사랑을 그린다. 배경이 LA인 이유는 낯선 도시, 타향의 이미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LA는 한국인이 나가서 살법한 공간이자 다인종이 모여 사는 곳으로, 이국적이면서도 비교적 친숙한 장소다.

LA 다운타운에서 마사지 숍을 경영하며 혼자 살고 있는 써니(배종옥 분)의 집 2층에 상처를 안은 남자 지석(박희순)이 세들어 온다. 마사집숍 청원경찰 랜디와 공허한 만남을 이어가는 써니는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러브 토크’를 듣다 진행자에게 불쑥 전화를 걸어 사랑에 대한 상담을 시도한다.

진행자는 ‘헬렌 정’이란 가명을 쓰는 영신(박진희). 영신은 같은 학교 유부남 선배와 껍데기뿐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라디오 프로그램에선 마치 연애의 고수인양 청취자들과 애정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지석은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클럽 댄서인 앨리스와 무의미한 만남을 이어간다.

119분이란 긴 상영시간동안 화면을 채우는 키워드는 공허함과 용기 없음이다. 그것이 삶의 무게 때문이든, 사랑에 대한 상처 때문이든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속내를 드러 내지 못하고 핵심의 주변을 뱅뱅 돈다.

대사의 호흡과 공백이 길고 화면이 시속 30㎞란 제한속도에 걸려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시속 80㎞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대단한 인내심이 요구되는 속도다. 긴 호흡을 감수한다 해도 참을 수 없는 권태와 허무가 발목을 잡는다. 무의미한성 생활을 이어가면서 마음은 딴 사람에게 열고 싶어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에 바윗덩어리를 얹어 놓는다.

비슷한 스타일의 ‘여자, 정혜’로 극단적인 반응을 끌어 냈던 이윤기 감독이 사실은 ‘여자, 정혜’보다 훨씬 일찍 써놓은 작품이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 보든 관람에 지장은 없을듯 하다. 그러나 버거운 건 사실이다. 너무 멋을 부렸다. 11일 개봉. 18세 관람가.

■소년, 천국에 가다

나이는 숫자일뿐?

하루를 1년처럼 살아야 하는 소년이 있다.

출발선에서 13살이니 앞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없다.

그런데 이는 소년의 선택이다. 사랑하는 여자의 아들을 살리기 위한 눈물겨운 선택. 소년이 사랑하는 여자는 30대 미혼모다.

‘소년, 천국에 가다’는 팀 버튼의 ‘빅 피쉬’와 닮은 지점이 있다.

‘빅 피쉬’가 아버지의 허풍을 동화처럼 그렸다면, 이 영화는 소년의 맹랑한 희망을 아기자기하고 예쁜 그림책으로 펼쳐 놓았다. 곳곳에 피노키오 할아버지의 장난감 가게 같은 풍경들이 펼쳐지고 애니메이션을 도입한 것 역시 영화의 지향점이 동화임을 알리고 있다. 물론 어른을 위한 동화다.

주인공 ‘네모’는 시계방을 경영하는 미혼모의 아들. 능청맞고 엉뚱한 네모의 꿈은 미혼모와 결혼하는 것. 이 맹랑한 꿈이 가시화된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자살 후 시계방 자리에 들어선 만화방 주인이 바로 미혼모인 것. 네모의 마음을 한 눈에 사로 잡은 주인은 너무 가난해 이름이 ‘부자’다. 부자는 낮에는 만화방을 경영하고 밤에는 카바레 가수로 활동한다.

시계방과 만화방은 둘 다 영화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키워드다.

네모와 부자 사이에 수북이 쌓인 시간의 차이는 현실에서 둘이 맺어지는 것을 방해한다. 이에 네모는 자신의 생명을 과감히 단축하면서까지 부자와 사랑하길 원한다. 또 네모가 잠시 경험하는 ‘저승’의 관리인들은 사람들의 시간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윤태용 감독은 ‘똑각똑각’거리는 시계 소리를 적절히 사용하며 영화 속 시간의 개념을 음미하게 한다.

비록 네모가 겉으로는 하루씩 성장하더라도 그의 내면은 여전히 만화에 열광하는 13살이다. 또 만화는 수많은 제약이 있는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도피처를 제공한다. 만화방 안에만 있으면 네모와 부자사이를 가로 막는 건 없다.

그러나 만화는 어디까지 만화. 잠시 위안은 되지만 인생을 책임지거나 지속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이처럼 흥미로운 장치를 갖춘 영화는 그러나 후반부에서 힘이 달린다. 배우들의 고른 호연에도 13세 소년이 93세로 죽을 것이란 결말이 정해진 후부터는 무심히 흐르는 시간처럼 영화 역시 그저 흘러갈 뿐이다. 이렇다 할 사건이 없고 인물들 사이를 관통하는 감정 역시 심금을 울리기에는 힘에 부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네모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아역배우 김관우(14)다. ‘생짜’ 신인인 김관우는 오로지 박해일과 닮았다는 이유로 오디션을 통과했지만, 네모 캐릭터에 찰싹 달라 붙어 대단히 천연덕스럽고 맛깔스러운 연기를 펼쳤다. 11일 개봉. 12세 관람가.◇‘소년, 천국에 가다’

박해일 인터뷰

“보시는 분들 집중하시기 편하라고요”

박해일(28)은 정작 본 영화 촬영중에는 쓰지 않았던 장발 가발을 쓰고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신의 출연작에는 홍보활동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 길었던 머리는 차기작 ‘괴물’(봉준호 감독) 속 캐릭터를 위해 짧게 잘랐지만 최근 개봉을 앞두고는 특별히 가발 2개를 제작해 번갈아 쓰고 다니고 있다.

줄거리가 톰 행크스가 출연했던 ‘빅’(Big:1988년)을 연상시킨다는 말에 “기본 설정은 비슷하나 줄거리가 풍성하다”며 “촬영 전 ‘빅’을 다시 보고 톰 행크스 연기에서 힌트를 얻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처음 대중에 얼굴을 알린 ‘질투는 나의 힘’을 포함해 모두 7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는 유난히 많은 연상의 여배우와 호흡을 맞춰왔다.

“(키스신 연기를) 너무 많이 연기하다 보니 나중에는 이력이 붙더라구요. 염정아의 배려 덕분에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꼭 해보고 싶은 연기를 묻자 재미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원일기’같은 드라마를 한편 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이불 속에 누워 TV를 보는 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 군요. 20년을 넘게 방송되며 사람들에게 깊이 스며 있는 드라마잖아요. 편안하게 사람들이 지켜볼 수 있는 그런 연기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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