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24기는 수원의 무예다.’
1789년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옮긴 정조는 당시 어영청이나 훈련도감, 장용영 등 각 군마다 달랐던 무예의 틀을 통합해 ‘무예도보통지’의 발간을 지시하게 된다.
무예도보통지의 핵심이 무예24기로, 1793년 수원 지역에 본거지를 두고 다음해 1월 ‘화성’ 축조의 임무를 맡았던 장용영 외영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는 억울하게 죽은 사도세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정조의 정치적 배경이 깔려 있기도 하지만 군의 지표였던 무예24기가 수원의 역사와 뗄레야 뗄 수 없다는 점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가치는 그 깊이에 비해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현재 (사)무예24기 보존회(사무총장 김영호)가 그 맥을 잇고는 있지만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고 시의 지원은 화성행궁 내에서의 상설시연이 전부다. 적어도 전수관은 갖춰져야 하며 나아가 문화재로 지정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27일 오후 3시 경기문화재단 3층 다산홀에서 마련된 전통무예 학술회의 ‘무예도보통지에 반영된 실학사상’에서는 이 같은 논의가 펼쳐진 뜻 깊은 시간이었다.
물론 무예도보통지에 반영된 실학사상을 밝히는 일도 간과되지 않았지만 무예24기에 대한 첫 학술회의인 만큼 현대적 발전 방향에 비중이 컸다.
‘무예도보통지와 조선 후기 병학에 반영된 실학사상’이란 주제로 진행된 학술회의는 김준혁 학예연구사가 ‘정조의 무예도보통지 편찬과 장용영’에 대해, 정해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이 ‘18세기 어영청 중순등록에 나타난 각종 무예’를, 김영호 (사)무예24기 보존회 사무총장이 ‘본국검의 정립 시기와 그 사상적 배경’을, 허건식 서일대 겸임교수가 ‘무예도보통지의 현대적 가치’를 각각 조명했으며 무예24기 시범공연에 이어 종합토론이 벌어졌다.
종합토론에서는 ▲무예24기가 좀 더 체계적인 학문적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점 ▲학교 등 교육적 자산을 활용한 보급 및 대중화 ▲무예의 실학적 자산을 활용한 세계화 ▲(사)무예24기 보존회에 대한 폭넓은 지원 등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사)무예24기 보존회 김영호 사무총장은 “무예24기가 온전히 보존되고 계승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틀 속에 지속적인 지원책이 있어야 한다”며 “충분한 역사적 사료와 근거를 갖고 있는 만큼 인식을 확대시키는 한편, 실생활에 접목 시키는 노력을 통해 무예24기를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박노훈기자 nhpar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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