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올림픽 양궁의 숨은 주역’ ‘외제 활에 맞선 뚝심 마케팅’ ‘한국 양궁의 밑거름’ ‘외국 선수가 먼저 찾는 활’
선수용, 레저용 활을 전문 제조하는 (주)삼익스포츠(대표 이봉재)에 따라 붙는 수식어들이다.
이 회사는 지난 아테네 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쓰지 않은 ‘4관왕’이었다. 양궁에 걸린 4개의 금메달을 삼익의 활을 사용한 선수들이 모두 휩쓸었기 때문. 올림픽 이후에는 양궁 마니아들의 주문이 봇물처럼 밀려들고 있다. 삼익의 활이 세계적 명성을 얻은 것은 단순히 올림픽 마케팅의 효과나 후광으로 치부할 수 없다.
이봉재 사장을 비롯해 20명 남짓한 직원들이 오직 ‘더 좋은 활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밤낮을 공장에서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물이다.
세계 양궁시장 선점을 겨냥해 활 시위를 당기고 있는 삼익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자부심을 다시 한번 느낀다.
국산 활 인기 ‘金메달’ 쐈다
# 양복점-피아노 부품-양궁맨으로
이봉재 사장은 원래부터 ‘양궁맨’이 아니다. 그가 활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90년 4월. 피아노 부품업체를 운영하던 그는 삼익악기에 피아노 부품을 공급하다 전 삼익피아노 이효익 회장(작고)의 권유로 삼익악기에서 분사한 양궁사업부를 맡아 삼익스포츠를 설립, 경기용 양궁 활 제작에 나선 것이다.
“삼익피아노에 부품을 납품하기 시작했던 1980년 이전엔 서울 명동에 있는 메트로호텔 양복점을 경영했어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단골이었을 정도로 그의 성실성과 손재주는 그때부터 높이 평가됐다고 한다. 하지만 양궁 사업은 처음부터 수요 부족이라는 난관에 부딪혔다. 처음 레저용 활 시장을 개척했지만 문제는 양궁이 보편화된 운동이 아니라서 제품 수요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1998년부터 선수용 활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선수용 활 시장의 거대 공룡인 미국의 호이트사가 장벽처럼 버티고 있었지만 자신이 만든 활로 금메달을 따는 선수를 탄생시키면 해볼만하다고 판단했다.
“일본 야마하사가 양궁사업부를 폐쇄하며 생산을 중단했던 것도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또 ‘성공할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도 감돌아 예감이 좋았어요.”
그러나 외국 제품에 길들여진 선수들은 쉽게 국산 활을 선택하지 않았다. 더욱이 활은 첫 번째 당길 때나 1천번째 당길 때나 탄력이 같아야 한다는 ‘완벽함’과 당기는 힘이 일정해야 하는 ‘섬세함’이 필요했다.
# 선수 맞춤용 활 제작
그는 앞 뒤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기술을 보완하는 것만이 성공의 해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갖가지 시행착오, 불량, 설비투자 등에 30억원이 넘는 연구개발(R&D)비를 쏟아 부었을 정도로 기술개발에 주력했다. 그는 한눈 팔지 않고 오직 선수용 활 개발에 매달렸다. 경기용 화살에도 손을 대려고 했으나 경기용 화살은 기술에 필요한 설비투자 대비 채산성이 너무 낮아 생산을 포기했다. 선수용 활 시장을 정복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기성복 대신 맞춤양복’을 만들자는 것이다.
양복점을 운영하던 당시를 떠올리며 선수 개개인에게 꼭 맞는 맞춤식 활을 만들어 주면 삼익의 활을 찾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선수들의 실력은 무섭게 성장하는 데도 외국 제품의 수준은 따라주지 못했어요. 그래서 맞춤식 활을 만들기로 했죠. 활시위를 당기는 힘을 파운드라고 하는데 외국 활의 경우 파운드를 다양하게 만들지 않았어요. 같은 파운드라도 팔 길이가 길고 짧은 사람에 따라 당기는 힘의 정도가 달라지거든요”
선수에게 꼭 맞게, 미세한 부분까지 접근해 활을 맞춤 제작한 결과 선수들의 신뢰감은 계속 쌓여갔고 삼익의 활도 명성을 얻게 됐다.
또 삼익은 직접 기계제작과 소재개발에 전력해 어느 업체도 따라올 수 없는 하이모듀러스 카본 소재 개발에 성공, 현재 양궁의 본고장인 유럽을 비롯, 전세계 약 50여개국으로 활을 수출하고 있다.
# 어려움 딛고 중국 진출
국내에는 양궁이 널리 보급되지 않아 제품 양산과 개발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설상가상으로 IMF가 겹치면서 수요는 더욱 끊겼고 회사는 부도 위기까지 몰렸다.
“어음 받은 것이 죄다 부도위기에 몰렸어요. 거래처에 어음을 다시 끊어 주겠다고 사정하며 발품을 팔았죠. 그런데 우리 회사 매출 대부분이 수출이잖아요. 환율이 갑자기 급변하면서 달러 가치가 2~3배로 뛰더라구요. 회사는 그만큼 이익이 남아 위기를 넘길 수 있었어요.”
삼익은 지난 2001년 7월 중국 현지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청도에 현지법인 설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중국시장 진출과 신제품 개발을 위한 지속적인 투자가 겹치면서 운영상 어려움이 뒤따랐다.
“활을 만드는 데는 최첨단 소재가 사용됩니다. 전에는 나무나 이용됐지만 요즘에는 우주공학에 쓰이는 카본과 특수금속으로 대체됐죠. 따라서 하나의 부품 샘플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5천만원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갑니다.”
삼익은 경기신용보증재단의 도움을 받아 3억원 규모의 신용보증을 공급받는 기회를 얻어 지난 6월 중국에 삼익청도 현지법인을 설립해 레저용 활 양산에 들어갔다.
코트라(KOTRA)와 경기도, 중소기업청이 선정한 유망 중소기업이기도 한 삼익의 매출 성장세는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7억원이었으며 올 상반기에만 이미 22억원을 넘어섰다. 중국 공장이 자리잡게 되는 2005년 이후엔 연 50억원 이상의 매출이 기대된다.
/이종철기자 jclee@kgib.co.kr
■인터뷰/삼익스포츠-이봉재사장
“선수마다 맞춤형 제작…세계시장 타깃 ‘정조준’”
“활은 민감한 장비다. 선수들에게 최대한 꼭 맞는 활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삼익스포츠의 이봉재 사장(52)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만들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 활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 실업팀 선수들의 경우 소재의 차이를 느낄 정도로 활에 대해선 전문가나 마찬가지”라면서 “선수들이 취향에 따라 요구하는 것을 일일이 반영해 활을 만들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9년 은퇴했다가 재기를 노리던 김수녕 선수와 삼익스포츠 양궁팀을 창단했다. 당시 김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자 삼익 활에 대한 입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이후 시드니 올림픽에서 여자대표팀 김수녕·김남순, 남자대표팀 장용호·김정태가 삼익의 활을 사용해 금메달을 따내면서 삼익 활의 우수성이 알려지게 됐다”
‘양궁사랑’이 남다른 이 사장의 앞으로 계획은 한차원 높은 고품질의 활을 만들어 양궁을 레저스포츠로 널리 보급하는 것이다.
이 사장은 “우리 궁사들이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국위를 선양하는 만큼 삼익의 제품도 세계 최강자로 군림할 수 있도록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종철기자 jclee@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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