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의 표상’ 김자수의 삶 조명
여말선초 충효정신을 몸소 실천했던 경주 김씨 상촌 김자수(1351~1413)를 집중조명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상촌사상연구회(회장 김경재)와 경기사학회(회장 최홍규·경기대 교수) 공동주최로 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2004 추계 상촌사상학술회의’에서는 상촌의 업적과 그 정신을 이어받은 후세들의 활동상 등이 조명됐다.
최홍규 교수는 ‘상촌 선생의 충효사상’이란 주제로 상촌의 성리학 이념과 예론, 개혁적 시무론 그리고 절의 정신 등을 주요사건과 결합해 풀어냈다.
최 교수는 “상촌은 성리학 도입 초기, 학문적·사상적 체계 정착과정에서 유학의 기본이념인 효행과 배불론, 그리고 순절로 최후를 마감한 의리지학과 충의대절을 실천한 인물”이라고 전제했다.
최 교수는 또 16세기 이후 사림파 학자와 정치가들이 의리지학으로 성리학적 특성을 강조했을 당시 상촌의 후손들이 절의정신과 학풍을 가학(家學)으로 계승발전시킨 점에 주목했다.
상촌은 이집·권근·황희 등과 함께 고려말 ‘사촌’의 한 사람으로 이색과 정몽주, 이숭인 등 고려 ‘삼은’과 함께 한국적 성리학의 학문적 연원과 충의명절이라는 측면에서 지식인의 사표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유교의 예법이 전파·정착되기 시작한 고려말, 상촌은 모친상을 당하고 3년간 시묘살이를 했으며, 그 효행은 17세기 초반 편찬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그림과 함께 국문·한문으로 각각 기록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주자가례’가 보급되던 시기에 상촌의 극진한 효행은 ‘동국통감’ ‘해동야승’ ‘연려실기술’ 등에 나타나고 상촌의 고향인 안동읍내에 효자비가 전해온다”며 “불교적 의례가 주류를 이루던 고려시대에 주자가례를 솔선수범한 상촌은 이후 주자학의 성립기반과 주자가례의 확산이란 측면에서 큰 획을 그었다”고 평했다.
이후 상촌은 정치개혁안 등을 상소했으며, 유교적 합리주의에 입각한 ‘시무 5조’ 등을 통해 배불론을 주장하고 왕정의 잘못을 지적했다.
온건개혁론자였던 상촌은 이성계를 위시한 개혁론자들에 의해 새 왕조가 개창되자 갖은 회의와 협박을 받았다. 이때 상촌은 ‘충신불사이군’이란 유교윤리의 기본을 지키고자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절의를 지켰다.
상촌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며 농사와 독서, 유교경전에 힘쓰던 중 조선 태종은 세 차례 신하를 보내 관직에 오를 것을 종요했으며, 거절할 경우 엄벌에 처할 것이라 위협했다. 이에 상촌은 광주 추령(현재 광주시 오포면 신현리)에서 절명시를 남기고 음독자결하고 충절을 지켰다.
상촌의 정신은 후손에 이어져 5대손 김세필과 그의 아들 김저는 도학에 입각한 왕도정신을 추구했으며, 8대손 김홍욱은 17세기 언관과 간관으로 활동하며 민생 위주의 개혁적 사상을 전개했다.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십청헌 선생의 개혁사상’(이상태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실장)과 ‘민족영웅 석정 김동식 장군의 독립사상’(서정기 동양문화연구소장) 등의 주제발표도 열렸으며, 국사편찬위원회 이영춘·이민원 박사와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 김문식 박사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형복기자 bo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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