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말, 핏줄을 더듬어 온 한 사내가 황해도 해주 땅의 관아에 속산 기방을 찾는다. 그를 맞은 늙은 헐차비 양수는 사내 앞에 어느 여인의 빛바랜 무지기 치마를 내놓는다. 그가 펼쳐든 치마폭에는 애절한 정한을 담은 한시가 적혀있다…
진원은 기생의 피를 물려받고 각기 다른 내력으로 교방에 들어온 명옥, 청랑 등과 두터운 교분을 쌓는다. 그러던 어느 날, 청국으로 향하던 연행사 일행 중 몇몇 젊은 사신들이 따로 길을 내어 예정에 없던 해주 땅을 밟게 되고 진원을 비롯한 여러 어린 기녀들은 머리를 올리게 된다.
사신 일행 가운데 부사인 종업과 진원은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열어 보이지도 못한 채 헤어지고 얼마 후 다시 쌓은 애절한 재회의 정은 뜻하지 않은 사내아이를 낳게 하는데….
역관의 신분으로 이제 아버지가 지나간 길을 그대로 밟아 청국으로 향하려는 사내, 그의 앞에는 이미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진원의 어미 양수가 있다. 핏줄에 대한 본능적인 향수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마음 속에는 그리움만 가득할 뿐이다.
‘창 밖의 앵두꽃은 몇 번이나 피었는고’(作/연출·조태준)는 조선시대 기녀와 선비의 이룰 수 없는 가슴아픈 사랑을 담았다.
한국적인 미와 정서를 한 껏 드러낸 창작극으로 경기도립극단이 제48회 정기공연으로 선택했으며 8, 9일 양일간 경기도문화의전당 소공연장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도립극단은 이 작품으로 첫 해외 무대를 밟는데 16일 오후 키리키츠탄 공화국의 수도 비쉬켁에 위치한 국립오페라 하우스를 찾는다. 현지 한국의 날 기념공연으로 초청돼 한인을 비롯, 외국인들에게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를 전할 전망.
과거 생활상을 재현해야 하는 극의 특성상 단원들은 국악단으로부터 정가와 민요, 거문고 등을, 무용단으로부터 검무와 살풀이 등을 지도받아 익혀왔다. 완성도를 위한 열정을 단면적으로 보여준 셈.
여기에 당시 실존했던 기생들로부터 모티브를 두루 취합했고 하후상박(下厚上薄;아랫사람에게 후하고 윗사람에게 박함)의 복식미를 비롯해 가체와 전모 같은 외모, 그리고 예·악·가무·음률 등 표현 기법의 사실성을 살려 생생한 현실감을 더한다.
정운봉 예술감독 대행은 “소재에서부터 스토리, 상황 설정 등 모든 요소들이 장년층들에게 문화적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 충분하다”며 “뿐만 아니라 젊은층에게도 어필할 수 있도록 고루함을 탈피,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담았다”고 말했다. 문의 230-3278
/박노훈기자 nhpar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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