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만점 MP3’ 세계시장서 러브콜
세계 MP3 플레이어, 디지털·PC카메라 시장을 ‘메이드인 코리아’로 물들이고 있는 ㈜씨엠테크(대표 서성준). 이 회사는 지난 1999년 자본금 1억원으로 창업한지 불과 4년만에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을 공략하며 2002년 100만불 수출탑을 거머쥐었다.
지난해에는 500만불 수출탑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내며 새로운 벤처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서 사장을 주축으로 60명에 남짓한 직원들이 오직 품질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연구실 형광등을 밤낮가리지 않고 노력을 기울였기에 가능했다.
‘운이 좋았겠지…’라는 경쟁사들의 시기심어린 질투와 달리 기술력과 신용, 젊은 패기로 온갖 고통을 참으며 성공을 일군 씨엠테크 임직원들은 단순히 운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6년을 마치 6일처럼 일하며 차별화된 제품과 기술력으로 세계인을 매혹시고 있는 씨엠테크를 말 그대로 작지만 강한 기업의 전형을 보여주는 회사다.
씨엠테크의 서성준 사장은 창업 초기 사업 실패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MP3플레이어를 자사 브랜드로 출시하기 보다는 개발 용역 및 타 회사와의 공동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인지도도 없고 자금도 부족한 씨엠테크가 승부를 낼 수 있는 것은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제품의 개발뿐이었습니다. 초기 시장 진입에 실패하면 점점 도퇴되기 마련이니까요.”
유행에 민감한 소형 포터블 제품의 경우 사업 성패가 디자인과 가격이라고 판단한 서 사장은 제품 디자인을 10년 이상 경력의 디자이너에게 외주로 넘기고 생산도 아웃소싱하며 철저하게 연구개발에만 전념했다.
이러한 기술개발 노력으로 다양한 디자인 컨셉을 살려 고급화에 주력, 후발 주자의 불리한 여건을 시장에서 오직 기술력과 품질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여기에 고질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어 타사에서 적용을 회피하는 칩을 저가에 공급받아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 기술로 보완, 저가에 시장 진입을 이룰 수 있었다.
서 사장의 창업 초기 최소 마진으로 시장에 진입해 유통과정에서 씨엠테크 얼굴 알리기를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서 사장의 아이디어는 대성공을 거뒀다.
시장에 진입한 2001년 28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이중 120만달러어치의 제품을 수출했다.
한번 불붙기 시작한 씨엠테크의 성승세는 멈출 줄 몰랐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중국 등 30개국 바이어들의 주문이 쏟아졌다.
매출액의 상승세 역시 가파르다. 2001년 28억원에 불과하던 것이 2002년 118억원, 지난해에는 150억원에 육박했다. 올해도 질주는 계속되고 있다. 상반기에만 200억원을 돌파하는 등 사상 최대의 실적을 이어가고 있어 올해 60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수출도 500만달러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서 사장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1999년 6월의 일이었다.
이전에는 전형적인 엔지니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삼성전자에서 9년간 캠코더 등 디지털제품을 설계, 개발했다.
“입사때부터 언젠가는 사업을 하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내 모습이 불만족스럽다면 언제든지 떠나자는 생각이었지요.”
최초 사업 아이템은 핸드폰카메라 모듈개발이었지만 MP3플레이어로 아이템이 이어갔다. 뜻이 맞는 동료 13명과 의기투합했다. 먼저 삼성전자를 퇴사한 2명이 10여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이미 맡아놓은 프로젝트가 있어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기 때문에 나머지 동료들은 퇴근 후 밤을 지새우며 일을 진행했다.
씨엠테크가 국내 MP3플레이어 시장에 진입할 당시는 거대 공룡인 삼성전자와 아이리버가 절대적인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즈음 중국은 IT산업에 주력하면서 카세트테이프가 MP3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 등으로 전이되고 있었다.
서 사장은 내수보다 수출시장에 눈을 돌렸다. 이미 선발주자들이 주력하고 있었지만 구주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고 바이어마다 공급원을 찾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성공을 가장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하면 각자의 분야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만하고 1등이 아닌 분야는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방법이지요.”
씨엠테크는 창업 당시 마케팅 인력이 고작 한명이었다. 이 인력으로는 국내 한 대리점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인원이다.
따라서 서 사장은 국내 시장진출을 위해 한 거래선을 선정, 판매와 광고, 판촉 등의 모든 마케팅 활동을 일임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씨엠테크는 판매를 위한 물량공급과 대금결제만을 담당하면 됐다.
A/S 부문도 유통전문업체에서 1차 담당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해외 영업의 경우에는 불필요한 출장을 줄이고 CES, COMDX, 홍콩전자전에만 꾸준히 출품해 거래선을 확보했다. 대형 거래선과의 거래로 인한 출혈매출보다는 작고 안정적인 공급선 확보에 중점을 두기 위해서였다. 또 거래선을 관리하기 위해 한 지역에 두개 이상의 거래선을 두지 않도록 했다.
자칫 당사 제품을 취급하는 거래선끼리의 가격 경쟁으로 시장을 잃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네고를 할 경우에는 물량 확보에 눈이 어두워 대형 자금 압박에 시달리지 않도록 철저한 전신송금(T/T)거래 방식을 지향했다. 그리고 몇 년간의 신뢰가 이루어진 바이어에 대해서만 서서히 공급 물양을 늘이며 성장 보다는 안정에 무게를 두었다.
서 사장은 2000년 12월 무리한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수출에 너무 목이 말라있던 시기였습니다. 의욕만 앞섰지요. 생산라인에서 제품을 생산할 수 없어 수작업으로 조립했어요, 직원모두가 1주일간 개발실에서 밤낮을 꼬박 새웠습니다.”
첫 거래선이었던 중국 바이어에게 2억원어치의 디지털카메라를 수출했다. 그런데 제품에 하자가 발생했다. 전량 회수해 모두 폐기처분할 수 밖에 없었다.
“품질에 대한 타협은 절대 있을 수 없는 법입니다. 당장 매출에 급급해 품질을 생각하지 않았던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잘 된 일이었어요, 품질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니까요. 나중에 다량의 수출제품에서 발생했다면 회사문을 닫을 수도 있었을 거에요.”
서 사장은 품질관리시스템의 도입을 뼈져리게 느꼈다. 곧바로 품질관리책임전담시스템을 도입했다. 제품개발 단계를 4단계로 나누고 책임담당제를 시도했다.
제품관리를 기본적인 동작테스트와 초기 시제품, 개선샘플, 양산샘플으로 나눠 분야별 책임자의 O.K 승인이 이었야 다음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는 사장의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담당자가 일을 처리한다.
디지털카메라로 사업분야를 주력했을 때인데 첫 거래선이었던 중국 바이어에게 제품을 보내주고 대금까지 받았었지요. 본사를 필두로 유통업체에 A/S센터를 두고 사후관리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이종철기자 jclee@kgib.co.kr
■인터뷰/서성준 사장
“고객 목소리 담아… 차별화로 승부수”
씨엠테크는 모재벌 그룹의 일화처럼 전설적인 에피소드가 있지는 않다. 하지만 무리하게 욕심부리지 않고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묵묵히 노력했다.
㈜씨엠테크의 서성준 사장(42)은 화려한 기교보다는 묵묵히 땀흘리며 성실한 것이 낫다고 강조한다.
서 사장은 “조금씩 남과 차별화된, 조금씩 남보다 품질 좋은, 조금씩 남보다 싼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공급한 것”이 씨엠테크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조심스러운 행보로 인해 어쩌면 내가 알지 못했던 좋은 기회가 지나갔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향후 다시 이런 사업을 하게 되더라도 지금과 같이 조심스러운 경영을 하지 않을까 싶다. 탑을 쌓기는 어려우나 허물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서 사장은 “매일 쏟아지는 정보, 급변하는 사회처럼 디지털 제품은 매우 다양하고 하루에도 수많은 제품들이 양산되고 있다”며 “여타제품과 차별화된 제품으로 고객에게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쌔엠테크는 고객의 목소리에 성장의 원동력이 있다”면서 고객의 충고와 질타에 항상 귀기울며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제품으로 차별화된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 사장은 “누구나 갖고 싶은 제품, 갖고 있어 자랑스러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며 “오늘도 씨엠테크의 기술개발에 대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철기자 jclee@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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