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문화현장을 가다/대진공연예술원 ‘연오세오’

설화에 비춰…‘오늘의 연극’ 꼬집어

설화는 몽상의 세계에 갇혀 있었으며 현실적 비애는 토막토막 끊어진 채 온전하지 못했다. 무대 위 시·공간은 그렇게 흘러 버렸다.

대진공연예술원(대표 윤우영)이 경기문화재단 창작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7월 3일과 4일 포천 대진대학교 예술관 공연장에서 상연한 ‘연오세오’(조광화 作). 삼국유사의 ‘연오랑세오녀’(延烏郞細烏女) 설화가 바탕이 된 작품의 의미를 찾자면 지역에서 진행된 순수예술의 창작적 열정이었다.

일단 작품은 기대 이하였다. 이는 어쩌면 너무도 큰 설레임으로 인한 반사적 실망일 수도 있다. ‘남자충동’이란 작품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넓힌 조광화의 초기 희곡이란 점은 호기심을 작동시키기 충분했고 설화를 오늘날 연극계의 문제점과 결부시킨 작품의도 또한 흥미로웠지만, 13년전 작가가 연극계에 처음 뛰어들 무렵에 쓴 이야기를 별다른 수정없이 선보이기엔 무리인듯 보였다.

해와 달의 정령 연오와 세오가 왜국으로 끌려갈 무렵 연오역을 맡은 승철은 심난하다. 공연일정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건만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다. 여기에 장맛비로 더욱 우중충해진 지하 소극장은 암담하기만 할뿐. 게다가 CF섭외가 들어와 출연을 결심했지만 연출가는 막이 오르기 전 작품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며 만류한다. 결국 고성이 오가는 싸움이 벌어지고 배우가 떠난 소극장은 갑작스레 무너져 버린다.

설화와 현실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풀어가는 스토리는 꼭 액자소설 형식을 띠었다. 하지만 액자는 작품을 품지 못했고, 작품은 액자와 어울리지 않았다. 액자와 작품은 필연적 혹은 우연적 관계에 놓여있지 않았으며 다만 암시적 상징성만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상연내내 작품은 제자리만 빙빙 돌았다.

작품은 애초부터 작금의 연극계 상황에 짜증낼 준비를 하고 있는 듯 했다. 배우들의 고성과 갑작스런 분노, 이후 감싸도는 적막감, 이를 매듭짓지 못한 채 이어지는 장면전환 등은 어린아이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며 보채는 것과 같았다. 부조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긴장감을 유발시킬 만한 극적 전개도 없었으며, 대안 또는 이상향을 제시한 것도 아니었다. 객석과 10여m의 거리도 채 안되는 무대에서 보여준 배우들의 커다란 몸동작이 버거워 보일 뿐이었다.

다시한번 상기하지만 이는 작가 조광화와 대진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영상학과 교수 윤우영이 엮어낸 작품이라는, 이름값에 반추된 아쉬움이 큰 것 같다.

반면에 이번 작품을 통해 확인한 지역 연극 인프라 구축의 모색은 수확이라 할 수 있다. 경기북부 지역에도 연극 활성화의 움직임이 자생적으로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비록 4일 오후2시 공연에는 20여명만이 객석을 채워 관객 확보란 과제를 낳긴 했지만 ‘포천’이라는 향토를 떠올렸을땐 그리 절망적이진 않았다. 땅은 넓고 인구밀도는 낮은 지역에서 관객의 숫자에 의미를 두기는 일렀다.

윤우영 대표도 “대학로 또한 불황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이제 막 붐이 형성되려는 지역에서 모든 것이 다 갖춰지길 기대하긴 어렵다. 어쩌면 ‘불모지’라 할 수 있는 곳에서 기반을 다지는 중”이라며 이러한 현실을 인식했다.

윤 대표는 대진공연예술원을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 시스템으로 운영할 것이라 밝혔다. 프리프로덕션이란 공연단체가 자체적 혹은 지자체 및 기관의 후원을 받아 지역민들에게 무료로 작품을 제공하고 일정 시즌이 끝나면 검증 단계를 거쳐 중앙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주의가 필요하다. 자칫 지역은 주인이 아닌 중앙을 위한 시험무대가 될 수 있으며 좀 더 철저한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작품은 생산과 동시에 사라지는 다작에 이를 수 있다.

일련의 제고될 점을 보완한다면 프리프로덕션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이는 장치가 될 수 있으며 지역과 중앙이 공존하는 바람직한 모델로 보인다.

포천은 올해 9월 시립극단을 창단할 계획이다. 또 설립 10여년에 불과한 대진대학교에 6년여된 예술대학원의 번듯한 공연장이 생겼다. 여기에 전문공연 집단 대진공연예술원이 날개를 펴고 지역을 향한 연극열정을 퍼뜨리기 위해 이륙중이다. 포천뿐 아니라 양주 등 경기북부에 순수예술의 꽃이 활짝 필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길 기대한다.

/박노훈기자 nhpar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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