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재단-‘크즐오르다’대학 학술회의

카레이스키에 ‘한국’ 심는다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구 소련권에 살고있는 고려인들의 3~5% 정도만 우리말을 알고 있죠”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연해주(원동)로 이주했던 18만 조선인들이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박해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다. 이후 이주 1세대인 70, 80대의 고령자와 2, 3세대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다.

이들 카레이스키(고려인)는 130여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중앙아시아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며 타민족과의 결혼 등에 따라 민족 고유의 전통 또한 사라져 가는 추세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에 퍼져 있는 고려인들은 타고난 근면성과 성실함으로 대법관 및 헌법재판소장, 기업가, 국회의원, 공훈예술가 등 사회 각층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며 교육수준도 높아 ‘아시아의 유태인’으로 불린다.

경기문화재단(대표이사 송태호)은 지난 1999년부터 러시아어로 제작된 한국어문법 교재를 구 소련권에 제공, 고려인은 물론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러시아 등에 지원하고 있다.

이에 지난 17일에는 콜크다타 크즐오르다 국립대학(Korkyt Ata Kyzylorda State University·싸이을바예프 총장)이 주최한 ‘다민족 국가에서 민족문화 보존과 교류의 의미-한국어 보급과 전망’ 학술회의를 열고 양국간 활발한 문화교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경기문화재단은 지난 1999년부터 크즐오르다 대학을 거점으로 구 소련지역에 현대한국문법책을 지속적으로 보급, 한국어 확산에 일익을 담당했다.

이날 학술회의에서 송태호 대표이사는 경기문화재단 설립 배경 및 주요 사업내용을 소개하고 러시아권 한국어 보급과 해외문화교류 등 국제문화사업을 중점 설명했다.

송 대표는 “재단은 한국어에 높은 관심을 갖고있는 구 소련권의 호응에 부응코자 1999년부터 매년 ‘러시아 한국어구문 문법책’ 1천500여권을 보급했다”며 “우리말을 잊어가는 고려인들은 물론 한국어를 배우려는 카자흐스탄 국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송 대표는 한국학 차원의 청사진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경기도와 카자흐스탄의 공연예술단 상호교류, 국내작가의 카자흐스탄 체류 후 집필 등 양국간 문화교류를 장기적으로 추진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어 김예프(홍범도재단 대표)는 연해주에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의 역사적 과정을 조명했으며, 무장투쟁의 선봉장으로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1868~1943)의 활약과 현대적 과제를 진단했다.

김예프는 “홍범도 장군은 무장투쟁은 물론 소련혁명에도 적극 참여했으며, 레닌이 이끈 국민회의의 대표로도 활약했다”며 “우리 재단도 민족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글학자이자 역사가인 계봉우 선생(1880~1959)의 아들인 계학림 옹(78)은 “아버지 계봉우는 한국에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로프스크 등지에서 한글을 가르쳤고 ‘이두집해’, ‘북방민족어’, ‘조선문법’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겨 민족말 보존에 앞장섰다”고 말했다.

특히 그의 자서전인 ‘꿈속의 꿈’은 1900년대 초반 당시 시대적 상황을 상세히 담고 있어 높은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크즐오르다에는 홍범도 장군과 계봉우 선생의 기념비가 있으며, 1996년 국가보훈처에서 설립한 통일문이 설치돼 있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에 참여한 김필영 교수(파리 국립동방어문학대학교)는 “재외동포를 위한 국가차원의 우리말 보급이 절실한 가운데 경기문화재단의 러시아권 한국어구문법 제작·보급은 한민족의 정체성 확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이형복기자 bok@kgib.co.kr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크즐오르다는 카자흐스탄의 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1925~1929년 동안 공화국의 수도였다. 1937년 원동에서 강제 이주 당한 고려인이 우쉬토베에 이어 두번째로 거주한 곳이다. 고려인들은 이곳에 크즐오르다 국립대학의 전신인 ‘원동 고려사범대학’을 설립하고, 순한글신문인 레닌기치와 고려극장을 운영했다. 또 독립투사 홍범도 장군의 무덤과 기념비는 물론 홍범도 장군의 이름을 붙인 거리(홍범도 울리짜)가 있으며, 고려인들은 이곳에 카자흐스탄 최고 품질의 벼농사를 짓고 당근·토마토 등의 작물을 재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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