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2만불 시대로/(주)칸나

"‘名品 앨범’… 세계인의 추억을 담는다

㈜칸나(대표 이상배)는 국내 문구류 시장에서 가장 손꼽히는 기업이다.

이 회사는 21세기 정보통신 그늘에 가려진 국내 제조업체 가운데 문구류의 자존심을 지키며 세계시장에 ‘코리아’와 ‘칸나’를 알리고 있다.

앨범시장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칸나는 최근들어 다양성을 요구하는 시대 변화에 부응하고 글로벌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인이 함께 쓰는 문구를 만들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25년간 한길을 걸어온 칸나의 가족들. 이들은 일류 제품만을 유혹하는 세계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오늘도 제품

개발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1.문구류 업계와 첫인연

칸나의 이상배 사장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풀뿌리로 배를 채우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지난 78년 무작정 서울로의 상경을 결심한다.

“배고픔을 겪지 못한 사람은 배고픔을 모르죠. 그래서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 친척집에 신세를 졌죠. 아무래도 서울이 기회가 많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문구류 제조업체인 이화산업에 입사를 하게 됐다.

“너는 이 일을 해야한다는 신의 뜻인지…. 열심히 하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무조건 노력했어요.”

그것이 그가 문구류업체와 맺은 첫 인연이었다.

몇년간 열심히 돈을 모았고 틈틈이 공부도 해 야간대학에 입학했다.

“새벽 5시에 아침밥을 먹고 자정에 귀가해 저녁을 먹었죠. 낮에는 배가 얼마나 고프던지 당시 120원이던 자장면 냄새가 가장 참기 힘들었어요. 잠도 하루 4~5시간으로 줄였어요.”

이 사장은 열심히 일해 사업밑천을 만들었고 취직한지 10개월후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문구류 유통업을 시작했다.

#2.’98년 우여곡절 끝 칸나 인수

이 사장은 지난 98년 1월17일 계몽사 계열사인 영문고의 부도로 98년 5월1일 우여곡절 끝에 칸나를 인수했다. 당시 문구업체들은 IMF환란의 여파로 줄도산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유통업과 제조업 사이에서 갈등했다.

“과연 제조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업종을 전환해서 망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교차되더군요.”

이 사장은 1차산업이 없으면 한국경제는 살 수 없다는 믿음과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로 칸나 재건을 결심했다.

칸나 인수를 결정한 이 사장은 절차에 따르지 않았다. 칸나 가족들이 온갖 노력을 기울여 일궈낸 브랜드 이기에 역사속에 사라지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지만 칸나의 명맥을 유지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기존 조직이 그대로 경영을 맡고 자금을 투자하는 형식으로 회사를 인수했어요.”

하지만 부도가 나자 기존 바이어들이 모두 등을 돌렸다.

“모든 거래처를 찾아 다녔어요. 부도난 회사가 제품이나 만들 수 있냐는 핀잔도 많이 들었죠.”

당연히 일이 생길리 없었다.

이 사장은 일단 물건을 주고 돈은 나중에 받기로하는 등 거래처의 조건에 따랐다. 위험한 거래방식이지만 어쩔 수 없이 외상거래를 했다.

그리고 항상 약속을 지켰다.

그렇게 몇번 거래가 생기는 과정에서 기존의 단골 거래처와의 거래는 물론 신규 거래처도 생겼다.

#3.사면초가 위기속 새 도전

이 사장은 회사를 인수한 이듬해인 99년 8월 홍수로 재산피해를 입었다. 2002년 1월에는 불의의 화재사고로 25억원의 재산피해를 입었고 같은해 태풍 루사까지 겹쳤다.

특히 2002년 FIFA와 스포츠 마케팅에 대한 라이센싱을 체결하고 월드컵 상품화 사업을 추진했지만 제품이 팔리지 않았다.

붉은 악마 열풍 뒤에서 로열티지급, 제품제고, 기술신보의 10억대출 압박 등으로 연매출의 40%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던 것.

말그대로 사면초가에 몰렸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투자를 결심하고 대대적인 회사 시스템 개편작업을 벌였다.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도 정부의 보조를 받아 총 1억원을 투입해 구축했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어디서 클레임이 걸리는지 체계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어요. 어차피 회사시스템을 새로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과감하게 투자하기로 생각했죠.”

재난과 화재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칸나는 15% 이상의 생산원가 절감효과는 물론 물류비,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었다.

#4.시장 선두주자 비결은…

첫째, 프로정신을 가져야 한다.

한눈팔지 않고 자기 분야에서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면 길은 보인다. 칸나하면 앨범을 떠올리는 것은 25년간 한 길을 걸어왔기에 가능했다.

둘째, 노력하라

한번 마음먹은 꿈은 꼭 이루겠다는 신념으로 미루거나 포기하면 안된다.

셋째, 신용을 지켜라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항상 약속장소에 10~20분전에 나가 준비했다. 나와 알고 지내는 바이어들은 계약서나 차용증 없이도 돈을 빌려줄 뿐 아니라 외상거래도 해준다.”

넷째, 저가 공략보다는 품질이 우선

바이어들은 최고의 제품이 아니면 외면한다. 또 중국 등 개도국의 저가공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력이 겸비된 최고의 제품으로 승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품질관리는 철저히

품질관리는 기업의 미래를 좌우한다. 품질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타 업체보다 경쟁우위에 있을 수 있다.

/이종철기자 jclee@kgib.co.kr

사진/원지영기자 jywon@kgib.co.kr

■인터뷰/이상배 사장

“연매출 70억원… 신용으로 키웠어요”

“차용증을 쓰지 않아도 돈을 빌려주는 곳이 있어요”

㈜칸나의 이상배 사장(48)은 98년 화재, 태풍, 월드컵 마케팅 실패 등 봇물처럼 쏟아지는 연이은 악재로 고사위기에 처해졌지만 납품기일을 연기해 주고 반품을 받아주는 거래처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말그대로 신용이 칸나를 연매출 70억원 이상을 올리는 알짜 기업으로 키운 숨은 공신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일류상품을 만들기 위한 기술력의 향상도 중요하다고 이 사장은 덧붙였다.

“자기 분야에 최고가 되려면 남들보다 한발 앞서 노력해야 하죠. 그래서 우리도 디지털 대중화 바람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품개발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어요.”

그는 세계인이 쓰는 일류 상품을 만들기 위해 “회사 매출액의 8%정도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다”면서 “지난 2002년부터 온-오프라인을 공존하기 위해 미국, 일본과 함께 디지털 앨범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와 PC의 보급으로 앨범과 문구류 시장이 주춤하고 있다고 전제한 이 사장은 “어렵다고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신기술을 도입해 대체 분야를 개발하기에 우리의 미래는 밝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미래를 위해선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며 “온-오프라인의 브랜드 마케팅을 통해 고객에게 좀 더 친근히 다가가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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