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사랑의 문화나눔 음악회'를 보고

출발은 좋았는데 결국 도랑으로 빠지고 말았다. 지난 2일 저녁 경기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있었던 ‘사랑의 문화나눔 음악회-2003 마음과 마음’이 그랬다.

신세대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이루마를 초청, 당초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무료공연으로 꾸밀 예정이었던 이 음악회가 수원시내 인근 중학생과 이루마의 개인 팬들을 위한 공짜 콘서트로 전락해 버렸다.

기획과 홍보를 담당했던 회관측은 “‘어려운’ 학생들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꺼려해 어쩔 수 없는 방편”이었다고 변명을 했지만, 기말고사가 끝난 수원시내 여러 중학교에 1천장이 넘는 초대권을 배부해 객석을 채운 것은 애초 취지를 무색케 했다는 평이다.

이루마의 손 끝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 중저음의 목소리로 직접 곡 해설을 맡은 친절함, 애니메이션 ‘강아지 똥’과 드라마 ‘겨울연가’ 등을 배경으로 한 스크린, 실루엣처럼 흐르는 분위기 있는 조명, 현악 연주자들과의 호흡을 맞춘 협주…. 공연 자체는 ‘이루마’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공연 내내 예전에 광고계에서 있었던 한 일화가 연상됐다.

몇 년전 ‘피로야 가라!’라는 카피문구를 들고나와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에게 피로회복제의 필요성을 인식시킨 모 제약회사의 광고. 하지만 이 광고가 나간 뒤 정작 많이 팔려나간 피로회복제는 경쟁사의 ‘B’ 드링크 제품이었다. 한마디로 죽쒀서 X를 준 것.

지난달부터 본격 시작한 도문예회관의 문화나눔운동인 ‘사랑의 문화회원제도’는 문화소외계층으로 분류되는 불우청소년들에게 문화향수 기회를 제공하는데 있다. 이 날의 공연도 그 취지에서 비롯됐다. 즉, 타깃은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 청소년들이었다. 하지만 이 제도가 ‘가진 자’들의 생색내기로 귀결 된다면 어렵고 소외된 학생들을 더욱더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연주회가 끝난 뒤 한 주부관객은 “자선공연인줄 알고 왔는데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 의아했다”며 “좋은 공연을 보고 되레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하며 회관을 빠져나갔다.

/박노훈기자 nhpar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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