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못해 사는 것이 더 괴로운 노인들 어찌하면 좋으리까’
예부터 전해오는 ‘효’사상은 어디로 갔는지 ‘웃어른’의 위상이 바닥에 떨어져 ‘짐’ 취급을 받는 노인이 갈수록 늘고 있다.
7년전 술과 노름에 찌들어 살던 할아버지를 잃고 차남 부부와 함께 살고 있는 이모씨(68·화성 봉담읍)는 집안에 있는 것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며느리는 초등학교 4·6학년 두 손녀딸에게 이씨가 말을 건네는 것 조차 싫어하고 같이 밥 먹는 것도 거부한다. 손녀딸들도 며느리 탓인지 이씨가 눈에 보여도 없는 사람 취급한다. 아들은 술 취해 들어오는 날에 이씨만 보면 ‘저 늙은이는 죽지도 않는다’며 구박한다.
이씨는 “평생 고생해 자식들 다 키워놓으니 쓸모없는 늙은이가 짐만 된다고 한다”며 심한 충격으로 냉가슴 앓이를 하고 있다.
혹한이 지난 11일 수원 팔달산 계단 아래에는 소주를 기울이는 4명의 할아버지들이 있다. “날이 추워 못나온 날에는 죽은듯이 집에 업드려 있었다”며 황혼의 거지(?)같은 인생을 한탄하는 그들은 가족들의 눈치에 집을 나와있는 것이 더 편하다고 말한다. 김모씨(76·수원 교동)는 “돈도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늙은이가 집안에 있으면 자식들한테 싫은 소리 듣기 일쑤”라며 “자식들한테 따돌림 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집 지키는 사람 취급하는 것도 싫고 해서 밖으로 나온다”고 말한다.
평생 모은 재산을 가로챈 세자식이 부모 부양을 거부하고 팔순노인을 결국 택시에 태워 내버리는가 하면 하면 치매 시어머니를 연탄창고에 가둬 숨지게 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고 부모를 두들겨패 온몸에 멍을 새겨놓는 아들과 며느리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99년 전국 65세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학대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노인의 8.2%인 29만3천560명이 학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들과 며느리(가해자의 87.3%)로부터 ‘거의매일’ 학대를 받는 노인이 42.7%나 됐고 경제적인 여유(39.5%)와 건강이 없는 노인들은 무차별적인 가족들의 공격에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유일의 노인학대 전문상담센터인 ‘까리따스노인학대상담센터’에는 하루 평균 80여건의 정신적·신체적·재정적·언어적·방임(방치) 등의 학대를 받는 노인들의 불행한 소식이 접수된다.
상담센터의 손옥경 복지사는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사회풍토상 노인학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노인들 스스로도 학대를 받아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특성상 실제 노인학대는 상담소 등에 도움을 요청하는 수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특히,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해가 될까 우려해 학대를 받고 있어도 끝까지 참고(학대노인의 70.2%) 굳게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노인학대 문제를 현재‘가정폭력 방지법’에 의거, 미약하게나마 대응하고 있지만 정작 경기경찰청 여성청소년계에는‘가정폭력 방지법’이 제정된 98년 이후 노인학대에 대한 신고건수가 단 1건도 없다.
이렇게 학대를 받고 있는 노인들의 76.6%가 자신에 대한 실망, 자아상실, 우울감, 자살충돌 등 정서적 피해증상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이로인해 노인의 자살율도 95년 614명으로 전체 자살자수 4천840명의 12.7%를 차지했던 것이 98년에는 1천159명(36.1%)으로 3년 사이 2배 가까이 급증했다.
하루 평균 3명꼴로 불행한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이 있지만 아직 우리사회는 노인학대에 대한 실태파악조차 되고 있지 않다.
2002년 노인인구는 전체 인구의 7.4%인 377만 명을 넘어섰다.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매년 급속한 속도로 인구가 급증해 2019년에는 고령사회가 된다. 출산율 저하와 국민평균수명 연장으로 늘어가는 노인들을 위해 정부차원의 복지대책과 개인의 노후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노인들이 학대받는 숫자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수원과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해영 교수는 “노인학대는 노인문제와 직결되는 것으로, 고령화 사회 속에서 점차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노인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동시에 근본적인 복지대책의 초점을 잃어버리는 오류를 가져올 수 있다”고 충고한다.
/박현정기자 hjpark@kgib.co.kr
- 노인학대 예방선진국 사례
사회보장제도가 일찍 발전한 미국은 노인학대의 근간이 되는 사회보장법과 노인복지법을 일찍 마련해 놓고 다양한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약 450만달러의 노인학대 방지 예산과 노인과 가해자를 위한 장기보호옴브즈먼 프로그램이 있다.
영국에는 노인학대에 대응하는 유일한 국가조직인 AEA(Action on Elder Abuse)가 있다. AEA는 무료위기전화상담을 운영해 노인들을 돕고 학술사업 등 출판사업을 통해 노인학대에 예방·대응한다. 노인학대 관련법도 공공보건법 등의 예방법과 국가원조법, 가정폭력법 등의 보호법이 있다. 노인학대 원조 자원과 프로그램 등도 마련돼 있다.
일본의 경우 학대 중심 법적·제도적 지원체계, 프로그램 및 서비스는 명확치 않으나 민법, 노인복지법이 근간이 되고 노인복지원조 시스템이 존재한다. 자식이 부모를 학대한 경우에는 부모가 재판을 통해 자식에게 재산을 주지 않아도 되는 ‘추정상속인 폐제’제도가 있다.
- 전문가 진단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윤찬중 교수는 효 사상, 가족윤리의 체면을 중시하는 등의 문화적인 요인에 기인해 노인학대는 노출이 어려워 그 문제가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우 전무하다시피한 노인학대의 특성과 원인, 그 실태 등을 파악·연구해 정책개발 등을 통해 적절한 복지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고령사회를 앞둔 노인복지의 과제라고 주장한다.
윤 교수는 “돈과 건강을 지킬 수 없는 노인들이 전적으로 자식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 노인복지제도가 노인학대를 키우고 있다”며 “학대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부양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인학대 가족을 위한 가족지원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또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더라도 육체·정신적 노화로 인한 와상노인의 출현은 고령사회에서 급속히 늘어날 것”이라며 “고령화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생활 케어 중심의 연구와 가족의 수발을 보충 지원할수 있는 캐어 서비스체계 마련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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