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체인징 레인스

29일 개봉될 ‘체인징 레인스(Changing Lanes)’(배급 UIP)는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인생의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게 하는 묵직한 영화.

서로 다른 길을 달리고 있던 두 사람의 삶이 우연히 살짝 맞부딪친다. 사소하게만 보였던 이 접촉사고는 시간이 갈수록 궤도에서 점점 벗어나게 만든다.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두 사람은 삶을 정해진 궤도에 맞추는 것을 포기하고 처음부터 인생설계를 다시 하기에 이른다.

젊고 전도유망한 백인 변호사 게빈 베넥(벤 애플랙)은 수백만 달러가 걸려 있는 소송에 증거서류를 제출하느라 서둘러 차를 몰다가 알코올 중독자이자 보험 외판원인 중년 흑인 도일 깁슨(새뮤얼 잭슨)의 차와 가벼운 충돌을 일으킨다. 도일은 아이들의 양육권 재판에 출두하기 위해 법원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이 사고는 하루 만에 두 사람의 운명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다. 도로상에서 거만하고 무성의한 게빈과 잘잘못을 가리다가 20분이나 늦게 도착한 도일은 판사로부터 양육권을 박탈한다는 선고를 받는다.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빼앗긴 도일은 게빈이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며 원망한다. 그순간 게빈이 중요한 서류를 사고현장에 두고 왔다며 돌려달라고 연락해온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주고받는 복수극이 시작된다. 도일이 돌려줄 것을 거부하자 게빈은 그를 신용불량자로 몰아 협박하고, 도일은 이에 뒤질세라 게빈의 자동차 사고를 유발한다.

‘체인징 레이스’는 흑백과 빈부의 도식적인 대결구도에 다소 과장된 듯한 설정을 담고 있으면서도 우연과 필연의 연결고리와 선과 악의 경계를 해체하며 인생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던져준다. 인과응보와 연기설이라는 불교적 세계관과 ‘칼로 일어난 자는 칼로 망한다’는 기독교적 진리가 멀지 않게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노팅 힐’로 일약 스타감독의 반열에 오른 로저 미첼은 휴먼 드라마적인 분위기에 스릴러적인 장치를 가미해 한시도 눈을 뗄수 없는 긴박감을 안겨준다. 한층 성숙한 벤 애플렉의 매력과 새뮤얼 잭슨의 관록연기도 믿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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