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한일합작 ‘순애보’

 

 

일상의 작은 우연들을 하나하나 꿰맞추면 어떻게될까.‘정사’의 이재용 감독의 신작 ‘순애보’는 “도시에 사는 외로운 사람들의 모습과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느끼게 되는 우연과 인연에 관한 이야기”다.

 

 

‘우연’이 ‘인연’으로 그리고 다시 ‘운명’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사실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감독은 데뷔작 ‘정사’에서 보여준 그의 장기인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영상과 세밀한 연출력을 또다시 십분 발휘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굳힌 것처럼 보인다.

 

 

알려진 대로 본격적인 한일합작영화다. 한국의 쿠앤필름과 일본의 쇼치쿠영화사가 제작비를 반반씩 댔고, 촬영도 일본과 한국에서 각국의 스태프들에 의해 반반씩 진행됐다. 주연배우도 한국의 이정재(27)와 일본 여배우 다치바나 미사토(19)다.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사이좋게 잘 나뉘어진 이 영화는 한편의 잘 짜여진 그림 조각 퍼즐을 떠올리게 한다.

 

 

동사무소 직원인 ‘우인’(이정재)의 삶은 문틈에 끼여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통증조차 느낄 수 없는 그의 새끼손가락 마냥 무기력하기만 하다.

 

 

밤마다 인터넷 음란사이트를 뒤적거리거나 화장실 벽에 걸려 있는 달력 사진 속의 ‘알래스카’ 설원 풍경을 보며 공상에 잠기는 게 그의 유일한 낙. 집도 있는데다 생활도 넉넉한 그에게 동사무소 일은 ‘심심풀이 땅콩’쯤으로 비쳐지는 게 동료들의 시선이다. 어느 날 그는 아무렇게나 자신을 내팽개친 듯한 반항적 외모의 빨간 머리 소녀 ‘미야’(김민희)를 보고 첫눈에 반하지만 그녀는 코방귀조차 뀌지 않는다.

 

 

비슷한 시간의 일본. 도쿄에 사는 중산층 가정의 ‘아야’(다치바나 미사토)는 입시학원에 다니는 재수생. 삶에 별 미련이 없는 그녀는 사람들이 어제 죽었는지 오늘 죽었는지 헷갈려 할 날짜변경선에서 숨을 참고 자살해야겠다는 ‘황당한’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알래스카로 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인터넷 음란사이트에서 ‘구두 신은 아사꼬’라는 이름으로 모델 일을 시작한다.

 

 

같은 비행기를 탄 두 남녀가 그 사실을 모른 채 앉아있는 마지막 장면은 ‘정사’의 그것과 겹쳐진다. 불륜을 넘어 본능을 찾아 떠난 ‘정사’의 주인공들의 목적지가 ‘브라질’이었다면, 무기력한 일상으로 부터 탈출을 꿈꾸는 ‘순애보’의 두 남녀의 비행기행은 ‘알래스카’인 셈.

 

 

보는 이도 힘이 쭉쭉 빠질 정도로 리얼리티를 살려낸 일상 속에 가끔씩 튀어나오는 유머스런 장면이 극의 긴장 수위를 조절해 준다.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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