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가 세계를 지배한다.

21세기 창조적이고 두뇌집단적인 산업으로 우리나라가 세계시장에서 승부를 걸만한 업종중에 하나가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산업이다.

애니메이션은 언어나 인종차별을 쉽게 뛰어 넘을 수 있는 장점이 있고 TV 및 극장용, 비디오, 캐릭터, 전자오락, 팬시, 음반, 광고, 테마파크 등 엄청난 부가가치가 높은 파생상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선진국에서는 4차산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디즈니가 지난 95년 개봉한 만화영화 ‘토이스토리’는 전세계에서 3억5천만달러의 흥행수입을 거둬들였다.

장난감들의 모험과 우정을 다룬 이 한편으로 디즈니는 제작비 3천만달러의 10배가 넘는 수익을 벌어들였다.

캐릭터사업권 판매와 비디오, 게임 제작권까지 포함하면 디즈니의 수입곡선은 한없이 올라간다.

영화 주인공 우디와 버즈를 본딴 장난감이 불티나게 팔리고 스토리를 응용한 게임이 만들어지는 등 ‘토이스토리’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그야말로 애니메이션 산업의 특성을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에니메이션의 국내여건

우리나라도 이렇게 달콤한 애니메이션 열매를 따 먹을 수 있을까.

관련업계에서는 우리 창작물이 제대로 만들어 지도록 뒷받침해 줄 주변산업만 성숙해 진다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외형적으로 보면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의 실적은 화려하다.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만화영화 생산국으로 연간 매출액이 1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머리는 없고 손만 있다’는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고질적 병폐가 애니메이션에서도 되풀이 되고 있다.

우리가 기획해서 만든 애니메이션은 거의 없고 미국·유럽·일본 등지서 주문을 받아 그려낸 이른바 OEM(주문자 상표부착 제작방식)수출이 8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월트디즈니사가 제작해 폭발적인 인기를 끈 만화영화 ‘미녀와 야수’의 애니메이션 밑그림도 한국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의 애니메이션 제작기술은 마치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정작 가장 중요한 기획부분(시나리오 작성, 캐릭터 디자인, 배경설정)과 후반부 녹음작업 등의 경험은 거의 없으며 미국·일본 등 발주업체들이 지정해준 연출안대로 원화(Key Drawing)와 동화(In between drawing)를 그리는 단순 수작업만 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동안 미국과 일본의 기형적인 하청제작 구조에 길들여져 만화영화 구성작가나 감독 등 전문인력 양성을 소홀히 한데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문제는 창작을 위한 기반조성이다.

국내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은 우리 만화영화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만화영화산업에 대한 준제조업 수준의 지원 ▲국내 TV방송사 등 대기업과의 적극연계 ▲극영화와 똑같은 영화진흥기금 활용 및 각종 영화제 출품기회 부여 ▲외국과의 합작강화 등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주)아메코 엔터테인먼트는 월트 디즈니의 자회사인 DIC엔터테인먼트사와 1천200만달러 규모의 TV애니메이션 시리즈 ‘슈퍼 두퍼 스모’를 공동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30분짜리 3D애니메이션인 이 작품은 최근 미국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스모를 편당 23만5천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해 총 52편을 제작, 2000년 9월부터 월트 디즈니 유통망을 통해 세계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이번 계약은 세계시장 배급시 한국제작사의 로고를 사용하고 선제작과 후제작 과정에 국내업체가 참여하는 등 공동제작사로서의 위상을 제고, 향후 국내 애니메이션업계가 나아갈 방향을 정확히 꿰뚫었다는 점에서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캐릭터 시장여건

만화영화의 성공은 곧 높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캐릭터 시장으로 이어져 애니메이션 시장보다 10배에 달하는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황금시장’이다.

세계 캐릭터 시장규모는 1천억달러 수준으로 이중 미국이 450억달러로 문화산업 왕국답게 단연 선두를 고수하고 있으며 그 뒤를 일본이 180억달러로 추격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97년 국내 캐릭터 시장규모는 5천억원 정도였지만 2000년에는 그 10배에 달하는 5조원의 거대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국내 캐릭터 시장의 70%를 디즈니가 장악하고 그 뒤를 일본이 쫓고 있는 등 순수 국산 캐릭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시장의 5%수준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미키마우스’‘도날드 덕’‘백설공주’‘알라딘’ 등의 캐릭터를 소유하고 있는 월트 디즈니사가 지난 97년 이들 캐릭터로 벌어들인 수입은 76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국내 자동차를 100만대 수출한 액수와 맞먹는 규모다.

우리나라도 최근들어 김수정씨의 ‘아기공룡 둘리’캐릭터가 지난 98년 15억원의 로열티를 벌어들이는 등 국내 캐릭터업체들도 전면에 나서고 있어 가능성을 밝게 해주고 있다.

둘리캐릭터의 경우 태어난지 16년만에 연 2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현재 40여개 업체에서 완구 팬시용품 등 400여품목에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초에는 독일에 둘리 애니메이션과 음반 비디오를 25만달러에 수출, 국내 첫 애니메이션 수출을 이룬 것을 시작으로 유럽지역으로도 캐릭터 수출을 추진중에 있다.

국내 팬시문화를 개척한 선구자인 바른손은 ‘떠버기’‘헬로디노’등 다양한 캐릭터를 개발해 국내에서 인기를 얻은 것은 물론 대만과 이탈리아에 로열티를 받고 수출하기도 했으며 삼성에버랜드가 개발한 ‘킹코와 콜비’‘리리와 밍밍’은 캐릭터매장에서 디즈니와 산리오 퓨로랜드 등 유명스타들의 판매에 뒤지지 않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과제

미국 일본 등 애니메이션 선진국들은 단순히 극장 관람료나 TV방송으로 광고수익을 얻기위해 만화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애니메이션의 후방시장 즉, 장난감이나 팬시용품 등에 만화의 등장인물들을 새겨넣는 식의 캐릭터산업이나 게임 등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기 위해 제작 전단계부터 치밀한 작전을 세운다.

이제 캐릭터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의 주인공들을 활용해 단순히 아이들 장난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활 곳곳에 파고들어 돈을 벌어들이는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이에 우리도 무한한 세계시장에서 승부를 걸때가 된것이다.

아메코 엔터테인먼트 김창조대표(37)는 “지금까지 OEM을 통해 충분한 기술력도 쌓았고 이제는 세계시장에 도전해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크리에이티브를 가진 고급인력의 양성과 함께 문화산업도 국내 시장기반이 없으면 수출이 힘든 만큼 TV의 국산만화 의무상영제나 판권을 담보로 제작비를 융자해 주는 공익자금 조성 등을 통해 국내 업체의 창작기회를 최대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관식기자 kslee@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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