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지역정체성을 확립하자21세기를 맞는 경기도의 가장 큰 과제를 꼽는다면 단연 ‘지역정체성 확립’을 들 수 있다.
경기도는 서울이란 대규모 소비·서비스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지리적 여건때문에 독자적인 개발보다는 정부에 의한 대규모 개발이 이뤄져 왔다.
신도시, 국가공단 등 대규모 개발은 자연적으로 경기도를 서울의 배드타운으로 전락시켰고 원주민보다는 외지인들이 모여들면서 경기도의 제색깔은 점차 희석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경기도는‘이것이 경기도의 특성이다’라고 내세울 것이 없는 게 경기도의 현주소다.
더욱이 아파트 벽으로 막힌 주민들의 이기주의가 개인주의로 전락하면서 소지역단위의 이기주의가 점차 뿌리내려가고 있는 것 또한 경기도의 자화상이다.
지난 92년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5대 신도시가 건립되면서 이같은 소지역 이기주의, 도 색깔의 희석화 등의 심화를 우려한 경기도민들로부터 주창되기 시작한 것이‘지역정체성(Local Identity)’확립.
이 때부터 경기도지사들은 도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지역의 정체성을 확랍하겠다고 확약했고 지난 95년 민선시대의 개막과 함께 민선 도지사들은 ‘지역 정체성 확립’을 제일의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그러나 8도 도민들이 모여든 경기지역의 정체성을 찾는데는 모두 실패했다.
기껏해야 지역내에서 주민들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한 휴식공간조성 등만 추진해 왔고 지역 주민들의 화합을 이끌고 애향심을 높이기 위해 지역문화 활성화에 주력해 왔지만 모두 형식적이고 단편적인 행사위주에 그치는데 불과했다.
그간에도 지역이기주의는 더욱 팽배해져 님비현상까지 나타났고 민선시대 개막으로 지역주민들간의 반목이 더욱 심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경기도를 대변할 만한 인물, 즉 ‘맹주’가 없는 탓에 경기도는 정치권의 보호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정치인들의 입지를 굳히는 데 활용만 당한채 내팽겨치는 결과만 낳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경기도의 역사적 태동지인 강화군과 김포 검단면의 인천시 편입이다.
정부는 지난 94년 9월 민선시대 출범을 앞두고 광역행정을 펼친다는 미명아래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했다.
강화군과 김포 검단면도 이때 인천시로 편입이 거론됐고 대리기표 등 편법적인 주민의견조사를 거쳐 지난 95년 3월 1일 인천시로 편입됐다.
그러나 이같은 행정구역개편은 정부의 압력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이 당시 강화군수의 증언을 통해 밝혀지면서 강화군과 김포 검단면 지역 주민들이 경기도로 환원을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해 11월 5일 편입 당시 강화군수였던 양인석 경기도 문화재단 사무총장은 본지와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당시 임경호 경기도지사가 ‘정부의 정책이다. 찬성쪽으로 일을 추진하라’고 지시해 어쩔 수 없이 찬성쪽으로 유도했다”고 밝혔다.
양 총장은 또 “임 전지사도 처음에는 강화군의 인천시 편입을 반대했던 것이 확실했는데 언젠가 모르게 돌변했다”고 밝혀 강화군의 인천시 편입이 상층부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양 총장은 “임 전지사의 지시로 주민의견조사 3일전 도에서 당시 이상윤 내무국장을 반장으로 200여명의 공무원들이 파견나와 여론주도층인 이· 면장, 새마을지도자, 공무원 등을 상대로 인천시로 편입의 당위성을 홍보했고 인천시에서도 강화군에 연고지가 있는 공무원들이 투입됐었다”고 말했다.
임 전지사도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행정구역 개편과 관련, 정부의 압력이 있었고 경기지사로써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강화군을 인천시에 편입시켜 주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결국 이 때문에 강화군은 주민의견조사에게 찬성 68.7%로 인천시로 편입됐다.
이 과정에서 당시 민자당 국회의원들도 편입쪽으로 유도하도록 한 몫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기지역 정치인들과 행정가들은 자신들의 땅을 인천시에 빼앗기면서 해당지역 주민들의 의견수렴도 없이 갖가지 편법마저 동원해 놓고도 ‘광역행정’, ‘경기도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대의를 위한 편입이었더라도 애향심이 있는 정치인, 행정가였다면 주민들과 사전 논의를 거쳐 정당하게 주민의견조사를 통해 행정구역을 조정했어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경기도의회 주도로 강화군·김포 검단면 도 환원 범도민추진위원회가 구성돼 편입의 부당성, 환원의 당위성, 불합리한 선거구 개편 등을 주장하는 등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아 나가고 있다.
강화군·김포 검단면의 도 환원을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애향심을 고취시키는 등 지역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계기로 만들겠다는 것이 범도민추진위의 또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다.
이제는 도내 정치인, 행정가들도 이에 동참해야 한다.
자신들의 과오를 뉘우치고 경기지역의 역사를 바로잡으며 주민들에게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 나도 경기지역 주민이라는 의식을 심어주는데 먼저 앞장서야 하는 것이다.
이와함께 최근 성남시 분당구 주민들을 시작으로 벽허물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막혔던 마음들을 풀고 이웃으로서, 지역주민으로서 제 역할을 해 나가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또 정치권에서, 행정권에서 나몰라라고 팽겨친 지역정체성 확립을 주민들이 직접 찾겠다는 의미도 담겨져 있다.
이제는 정치권, 행정권에서도 나서야 한다.
강화군과 김포 검단면을 찾아오는 것도 중요하고 투명한 정치·행정을 통해 주민들과 지역의 문제를 같이 논의하고 풀어나가면서 지역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줘 경기지역 나름대로의 색깔을 찾아야 할 때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21세기 경기지역이 동북아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기는 요원할 것이다./유재명기자 jmyoo@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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