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은 한국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태초의 임금, 개국신으로 단군조선을 건국하였다고 전해져오고 있는데 10월 3일은 BC 2333년 단군이 왕검성에 도읍하고 나라를 세웠다는 날이다. 남한에서는 1948년 이후 매년 10월 3일에 민족의 축일을 기리는 기념식과 대제 등의 행사를 치러왔다.
그러나 북한은 정권수립 이후 지난 94년 이전까지만해도 개천절이란 표현조차 사용하지 않았고 일체의 기념식행사도 치르지 않아 왔다. 단군과 관련된 내용을 신화로만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지난 93년 10월 2일 북한사회과학원이 ‘단군릉 발굴보고’를 통해 단군릉과 단군부부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굴했다고 발표한 후 단군을 실존인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유물사관을 제치고 단군을 인정했다는 것은 계급사관으로부터 민족사관으로 회귀한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기에 커다란 태도 변화를 보여준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단군에 대해 집착하게 된 이유는 기본적으로 평양지역이 한민족의 발상지임을 재삼 부각시키는 동시에 북한정권이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민족사적 정통성을 가진 정권임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뒤늦게나마 북한이 단군릉 발굴을 계기로 개천절이라는 용어를 다시 사용하고 단군제를 개최했다는 사실은 민족통일의 공통분모를 찾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단군제에서는 국조 단군을 기리기 보다는 단군과 관련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비서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데 보다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단군을 ‘원시조’로 부르면서 김일성 주석을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로 추대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단군은 있다> 고 기록한 일본 조선총독부중추원 발행 ‘조선사료’ 3권이 공개돼 단기 4332년 개천절을 더욱 뜻깊게 하고 있다. 단군은>
그러나 일부 학교에 세워진 단군동상이 우상이라고 하여 또 파괴될 우려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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