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탄핵 가늠자’일 줄 알았더니…미궁 빠지게 한 한덕수 ‘기각’

헌재, 기각 5명·인용1명·각하 2명... 계엄 정당성 내란 등은 판단 안 해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심판을 선고하는 24일 오전 헌법재판관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홍기웅기자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심판을 선고하는 24일 오전 헌법재판관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홍기웅기자

 

헌법재판소가 24일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안을 기각했다. 87일 만에 나온 이번 결정은 당초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관련 결과를 예측해 볼 가늠자가 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헌재가 비상계엄의 정당성 등을 결정문에 담지 않으면서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는 미궁으로 빠지게 됐다.

 

헌재는 이날 8명의 재판관 중 기각 5명, 인용 1명, 각하 2명으로 기각 결정을 했다. 헌재는 한 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의결정족수를 충족한 적법 절차라고 판단하면서도 다수 의견으로 헌법 및 법률 위반을 판단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우선 기각 결정을 한 5인의 재판관(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김복형)은 윤 대통령 내란 행위에 대한 공모·묵인·방조, 내란 상설 특검 임명 회피, 김건희·해병대원 특검법 거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의 ‘공동 국정운영’ 시도 등 네 가지 쟁점에 대해 헌법 및 법률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

 

쟁점 사항 중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거부에 대해서는 김복형 재판관만 헌법 및 법률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나머지 4인의 재판관은 모두 헌법 및 법률 위반으로 보면서도 파면을 정할 정도의 사유는 아니라고 봤다.

 

이날 헌재의 판단을 앞두고 법조계에서는 결정문 속 비상계엄 선포 및 내란행위에 대한 판단이 곧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결과를 예측할 근거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이 같은 예상과 달리 헌재는 40페이지 분량의 결정문 속에 관련 내용은 단 한 페이지만 할애했고, 이마저도 비상계엄 자체에 대한 정당성 및 내란의 해당 여부 판단을 하지 않은 채 한 총리가 사전에 비상계엄 선포 사실을 인지했다거나 비상계엄 선포 건의, 이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 부여를 위한 적극적 행위를 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판단만 내놨다.

 

게다가 당초 한 총리의 탄핵 심판에서 재판관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할 것이며,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역시 동일한 의견을 내기 위해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는 예측이 나오던 상황과 달리 한 총리의 탄핵심판이 크게 네 갈래로 나눠지면서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 역시 미궁에 빠지게 됐다는 반응이 나온다.

 

법조계 역시 같은 반응을 내놨다. 한 총리와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은 엄밀히 쟁점이 다른 만큼 이번 판결이 곧 윤 대통령의 탄핵 기각 등의 청신호라 해석하긴 어렵다는 분석이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역임한 황도수 건국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한 총리에 대한 탄핵심판은 비상계엄에 관여했느냐, 아니냐를 쟁점으로 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기각 결정이 난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가늠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덕수 탄핵 기각 이끈 쟁점은…헌법재판관 미임명, 특검 재의 ‘위헌 중대성’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를 기각한 배경에는 한 총리의 헌법 재판관 임명 거부가 위헌이지만, 공직에서 파면할 만큼의 중대한 잘못은 아니라는 판단이 다수를 차지한 게 주효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헌재가 공개한 한 총리 탄핵심판 사건 결정문에 따르면 한 총리 탄핵 기각을 결정한 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 재판관과 인용을 결정한 정계선 재판관 등 5인은 한 총리가 헌법 66조와 111조 등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헌법 111조는 ‘헌법재판관 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헌법 66조는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무를 명시했다.

 

5인의 재판관은 한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일 당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국회가 선출한 조한창·정계선·마은혁 후보자 임명을 보류한 점을 문제 삼았다. 후보자에 하자가 없는 이상 권한대행이 반드시 임명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사안이 ‘헌법 위반이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경우’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정계선 재판관을 제외한 4명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관 4인은 “한 총리에게 헌재 무력화 의사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당시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에 논란도 있어 헌법·법률 위반이 파면을 정당화할 수준은 아니다”라며 기각 의견을 냈다.

 

정계선 재판관은 “헌재의 역할과 기능마저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만드는 헌법적 위기 상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나머지 3인 중 김복형 재판관은 헌법 재판관 임명 거부가 헌법·법률 위반이 아니라고 봤고,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국무총리 기준 의결 정족수(151석)를 적용한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 자체가 부적법하다며 각하 의견을 냈다.

 

또 탄핵소추 각하를 결정한 재판관 2인을 제외한 6인은 한 총리가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공동 국정 운영 체제’를 꾸리려 했다는 탄핵소추 사유도 “대통령제 정부형태를 몰각하려는 의도까지 있었다 볼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이어 한 총리가 ‘채상병·김여사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는 소추 사유에는 “(한 총리가)대통령 고유 권한인 재의요구권 행사에 실질적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다만 ‘내란 특검 후보자 추천 지연’ 소추 사유에 대해서는 정계선 재판관을 제외한 5인이 “추천 의뢰의 적절성 및 그 영향을 검토할 시간이 필요했던 사정이 엿보인다”며 위헌·위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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